"영화는 마치 어린 시절 친구 여럿이 함께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열심히 성을 쌓고 나서 쉬다 보면 파도가 밀려와 그 성을 쓸어버린다.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모래사장을 뒤로한 채 내일 다시 모래성을 쌓기로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반 할리우드적 영화의 기수인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말이다. 이미 팔순을 넘긴 그는 지금까지 영화와 TV를 오가며 무려 85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여기에 프로듀서와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크레딧까지 합치면 거의 2백 편에 육박한다. 이처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알트먼이지만, 한때 할리우드로부터 외면당하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본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던 그는 1980년대 뉴욕과 영국을 오가며, 저예산 영화와 TV물들을 만들며 시간을 흘러 보냈다. 진보적 비평가들에 의해 '올바른 정신의 아웃사이더'로 평가되는 알트먼은 1992년 영화 <플레이어>로 화려하게 재기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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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 컷 ⓒ프레시안무비 |
"나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할리우드의 사업가와 변호사, 그리고 에이전트들을 경멸한다. 그리고 난 내 영화가 큰 흥행을 기록하는 것도 싫다. 왜냐하면 너무 큰 성공은 더 큰 기대를 낳고, 그 기대는 자유를 속박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장삿속만 가득한 자들과 타협하지 않고, 그들처럼 부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위대한 작가 레이몬드 카버의 8개 단편소설과 시를 바탕으로 <숏 컷>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알트먼은 1975년작 <내쉬빌>과 흡사한 스타일로 다수의 캐릭터와 이야기가 등장하는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카버의 미망인으로 시인인 테스 갤리거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키도 했던 이 영화는 로스 엔젤레스 교외에 사는 경찰관과 첼로 연주자, 재즈 보컬리스트, 의사, 웨이트리스, 낚시꾼, 리무진 운전사, 분장사 등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극적인 코미디 형태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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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 컷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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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영화보다 출연료가 훨씬 적지만 많은 배우들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며 알트먼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한다. 알트먼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이 영화에도 훌륭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내쉬빌>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릴리 타믈린과 가 수 탐 웨이츠가 알코올 중독자 부부로, 그리고 가수 겸 배우인 애니로스와 첼리스트 출신의 로리 싱어가 모녀로 등장한다. 이 외에도 앤 아처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매들린 스토우와 브루스 데이비슨, 팀 로빈스, 앤디 맥도웰, 줄리안 무어, 제니퍼 제이슨 리, 잭 레몬, 피터 갤리거, 매튜 모딘, 크리스토퍼 펜, 프란시스 맥도맨 드, 릴리 테일러, 그리고 가수인 라일 로벳과 휴이 루이스 등이 출연했다. 영화 <숏 컷> 사운드트랙에는 영화만큼이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 힘을 보탰다. 사운드트랙을 총지휘한 할 윌너는 데이비드 샌본과 개빈 프라이데이 등의 앨범과 재즈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의 추모앨범 등을 프로듀싱한 바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로스가 노래를, 그리고 싱어가 첼로 연주를 들려주고, 1970년대 펑크록의 전설 이기 팝과 그룹 R.E.M.의 보컬리스트 마이클 스타이프 등이 알트먼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기꺼이 참여했다. 지난 1950-60년대 활동한 삼인조 보컬그룹 램버트, 헨드릭스와 로스의 멤버로 듀크 엘링턴 밴드에도 잠시 몸담았던 로스는 뮤지컬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공연한 바 있고, 영화 <슈퍼맨 3>와 <볼륨을 높여라>, <플레이어> 등에 출연한 바 있다. 지난 1984년 영화 <풋루스>의 히로인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싱어는 이후 <워락>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며 첼리스트로의 활동까지 병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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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 컷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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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소음으로 시작되는 <숏 컷>의 사운드트랙은 로스의 보컬이 포함된 로우 노트 5인조(the Low Note Quintet)의 연주와 트라웃 쿼텟(the Trout Quartet)과 함께 하는 싱어의 첼로 연주가 압권이다. 로스의 보컬이 담긴 곡들 중에서 'Conversation on a Barstool'은 그룹 U2의 보노와 디 에지가 작곡한 노래로, 원래는 마리안느 페이스풀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곡은 주정뱅이 운전수 얼(탐 웨이츠 분)이 싸움에 말려드는 상황을 배경으로 들려진다. 이 외에도 엘비스 코스텔로가 로스를 위해 선물한 'Nothing Can Stop Me Now'와 이기 팝과 스타이프의 보컬이 담긴 'Evil California'와 'Full Moon', 그리고 싱어가 연주한 드보르작의 'Cello Concerto in B Minor'와 빅토르 허버트 의 곡 'Cello Concerto #2' 등도 꼭 귀를 기울여야 할 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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