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김태균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 나이를 잊었다"고들 한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패션스타일과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의 첫 인상도 그렇지만 <화산고>와 <늑대의 유혹>, <백만장자의 첫사랑>으로 이어가는 필모그래피에서 중견감독의 감수성을 가늠할 수 있을까. <백만장자의 첫사랑>의 개봉을 이틀 앞두고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의 스타일은 여전했다. 아니 조금 더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촬영에 들어가면 머리를 깎지 않고 어깨까지 기르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짧게 커트하곤 했는데 이번엔 펑크 스타일이다. '더 재미있게 살려고'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줘봤다는 40대 중반의 중견감독 김태균은 재미있게 살기 위해 영화를 만들고 작품의 수가 늘어갈 수록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기쁨이 즐거운 사람이다.
 | |
|
김태균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
1996년 <박봉곤 가출사건>으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감독생활만 10년째.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러 또래 감독들의 활동은 뜸해졌지만 그의 움직임은 여전하다. 그는 "재미있게 사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영화계에 적금을 들어놓은 것도 한 가지 이유다. 난 50이 넘어도 여전히 감독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일찌감치 영화계에 들어놓은 적금은 스타들과의 인연이다. 지금은 한류스타의 선봉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우히메 최지우가 <키스할까요>(1998)로 스타덤에 올랐고 일본에 수출돼 화제가 된 <화산고>(2001)에선 권상우가 이름을 알렸다. 그뿐인가 <늑대의 유혹>(2004)은 이청아라는 스타를 탄생시켰고 <백만장자의 첫사랑>은 개봉 전부터 여주인공 이연희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스타들과의 인연이 그가 추구하는 '재미있는 삶'에 활력소가 되어주는 것. 물론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쓴소리 단소리를 주저하지 않는 아내와 두 아들의 응원도 한몫 한다. 미국에서 유학중인 가족들과 6년째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을 마무리하면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테입을 보내 평가를 듣는다. 이번엔 연말에 잠시 짬을 내 미국으로 날아가 직접 평을 들었다는 김 감독은 그래서 더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올해가 감독데뷔 10년째인데... 글쎄. 감회가 남다를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별로…. 다른 때와 다르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개봉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다 보니 조금은 긴장되고 인터넷의 반응들을 한번 더 클릭해보고 있다.
-<화산고>부터 <늑대의 유혹>, <백만장자의 첫사랑>까지 10대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감독의 의도인가? 그래서 '빠순이' 감독이라고 하던데(웃음). 일단 젊은 층과 작업하는 게 좋다. 의도적인 건 아니고 나야 뭐 하느님을 믿으니까 그분이 보내시는 거지(웃음). 하고 싶은 작품이 엎어져서 그런 이유도 있다. <조선의 주먹>이란 작품을 준비하는데 잘 안 돼서 <늑대의 유혹>을 하게 됐고 다시 반년 이상 그 영활 준비하다가 캐스팅이 막혀서 <백만장자의 첫사랑>을 하게 됐다.
-빠순이 감독? 네티즌들의 댓글일 텐데. 그들의 반응에 민감한 편인가. 안 그럴 수가 없지. <늑대의 유혹>을 하면서 그 말을 알게 됐는데 처음에는 상처도 많이 받았다(웃음). 하지만 때때로 무식과 강성이 이기는 네티즌의 문화에 믿음이 가진 않는다. <역도산> 때도 봤고 <청연> 때도 봤지 않은가. 요즘 스크린쿼터에 동조하는 네티즌들의 모습도 그렇고.
 |
|
백만장자의 첫사랑 ⓒ프레시안무비 |
-10대의 감수성을 유지하려면 인터넷이 필수일 텐데. 큰 아들이 18살이다. 영화의 여주인공 이연희하고 동갑이다. 아들이랑 재미있게 사는 게 전부다. 만화책 같이 보고 음악도 같이 듣다 보면 저절로 아이들 세계를 알게 되는 거지. 가끔 아이들 블로그에 돌아다니다 보면 너무 재미있다. 내 또래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보다 친구들 아들, 딸과 얘기하는 게 더 즐겁다.
-<백만장자의 첫사랑>은 제목이 굉장히 정직하다. <파리의 연인>과 <프라하의 연인>을 쓴 김은숙 작가가 정한 제목인데 사실 부담스럽긴 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정직한 제목은 없었다. 요즘 감각으로 보면 거꾸로 가는 제목이지.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비주얼이 나오면 달라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어떤 면을 확신할 수 없는 것인가. 어떤 분들은 제목을 보고 갖게 되는 느낌이 영화가 갖고 있는 톤과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제목 보고 좌충우돌식 로맨틱 코미디를 예상하는 거지. 하지만 영화를 보곤 '아 순정멜로였네' 하는 반응. 그런 걸 보면 아직 마케팅 부분이 부족한 것 같다. 아마도 마음의 껍질이 단단한 분들에게는 맞지 않는 영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을 시작하는 세대에겐 기대감을 안겨줄 것이고 이미 사랑에 무뎌진 세대에겐 이런 감성이 있었는데 왜 잊고 지냈을까. 맞다 사랑을 해야 하는 데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스토리 라인상 새드무비 같지만 해피엔딩으로 만들고 싶었다. 저런 사랑이 있을까 하는.
 |
|
백만장자의 첫사랑 ⓒ프레시안무비 |
-여주인공 이연희에 대한 반응이 개봉 전부터 심상치 않다. 현빈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여주인공이 문제였다. 수없이 많은 배우를 만났는데 제 짝을 못 만났다. 김태희가 어울릴까 하는 얘기에 다들 기성배우들의 스케줄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난 신인을 쓰고 싶었고 나름대로 오디션을 진행했다. 제일 근접한 배우가 고아라였는데 촬영을 보름 앞두고 연희가 나타났다. 한번 더 오디션을 진행했지. 가을이 배경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는데 결국 촬영 열흘 전에 캐스팅을 결정했다. 참 잘하는 배우다.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예쁜 척을 하지 않아서 더 많은 사랑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이 못 생겼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노출하거든.
-후배 감독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물론 할리우드 진출은 생각하고 있다. <화산고> 이후에 구체적인 제안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영…(웃음). 언젠가는 그곳에서 영화를 만들겠지. 전혀 조급하진 않다. 난 50, 아니 60이 넘어도 여전히 영화감독 생활을 하고 있을 테니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