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명함을 교환한 뒤 상대방에게 한자 이름을 묻자마자 명함에 곧바로 쓰는 모습이 신선해 보인다. "이렇게 한자 이름을 알고 나면 그 사람이 저절로 머리에 입력됩니다. 고향이 어딘지 군대는 어느 부대를 나왔는지 알고 나면 몇 십 년이 지나도 기억할 수 있어요." 정종화(63) 씨.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메모 한 장 보지 않고 국내외 영화사를 술술 풀어내는 사람. 영화 포스터를 비롯해 각종 영화관련 자료를 2만여 점 이상 수집한 영화연구가. 아니나 다를까 기자의 생년월일을 묻자마자 그 해에 아카데미상에 어떤 작품이 선정됐는지 뒷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정종화 씨는 충무로에서 '걸어 다니는 영화박물관'으로 통한다. 50여 년 전,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영화사랑은 한국영화 5500여 편, 외국영화 4만여 편의 자료를 모았을 만큼 방대하다. 물론 주변으로부터 늘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한다"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현재 그가 소장하고 있는 포스터 콜렉션은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 |
|
영화자료수집가 정종화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
최근 출간한 그의 저서 <영화에 미친 남자>에는 빛바랜 포스터에 투영된 그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총 805편의 국내외 작품이 나열된 이 책에는 1950~60년대 영화 포스터와 명장면 스틸이 이어지며 왜 그가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의 사연이 담겨 있다.
- 영화관련 자료수집이 박물관 수준을 넘어섰다. 영화에 대한 것이라면 개똥이 묻은 것도 모두 모았을 정도다(웃음). 어떤 사람은 포스터 수집가라고 하는데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포스터는 동대문에서 고서점 하는 분들이 더 많이 모았겠지. 난 영화 포스터와 팜플렛, 영화전문잡지, 지금은 사라진 극장들의 영화표 등을 모두 다 수집한다. 지금은 약 2만여 점 쯤 된다.
- 수집한 자료를 분류하는 것도 쉽지 않겠다. 기억력이 대단하다. 연도별로 꼼꼼하게 분류한다. 그리고 주로 머릿속에 집어넣는다(웃음). 손이 많이 가는 자료들은 지금 사는 집에 있고 나머지는 동생 집에 따로 분류해뒀다. 어릴 때부터 기록과 통계를 좋아했다. 비상한 머리가 아니면 못하는 거지(웃음). 외국 사람을 만나도 영화 속에 등장한 배경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고향 이야기라며 더 친해질 때가 있다.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극장 5곳, 영화사 7곳, 영화잡지사 5곳에서 근무했다. 그게 즐겁다. 지금 60이 훌쩍 넘었는데 영화를 보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 자체가 너무 즐겁다.
- 직접 영화를 보고 자료를 수집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영화사나 극장에서 근무했었지만 한국영화는 지금도 개봉 첫날 극장에서 표를 사서 본다. 그래야 표를 모을 수 있으니까(웃음). 1953년 이후에 개봉된 한국영화는 지금까지 90% 이상 본 것 같다. 물론 가족들이 생계를 걱정할 만큼 무능력한 건 아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뭔가를 쓰고 사니까.
- 가족들의 지원도 한몫 했겠다. 그랬을 거라 생각하는데 집에는 그 흔한 포스터 하나 걸어놓지 않았다(웃음). 이건 그냥 내 취미이지 가족들 모두가 하는 가업이 아니니까. 젊었을 때부터 내 직업과 수집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려고 했는데 지금 와이프가 그랬다. 태창 영화사에서 기획부장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단돈 5만 원으로 살림을 시작했었다(웃음). 지금은 모 대학에서 내 자료로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 이제는 좀 편안하고 느긋해진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영화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역사적 통계다. 역사를 정확히 짚어내고 싶다. 우선 올 가을에 배우 안성기에 대한 책이 나온다. 인터넷의 자료가 아무리 방대하다고 해도 국민배우 안성기가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지 자료가 불분명하다. 정확히 64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내년이면 <황혼열차>로 데뷔한 지 50주년이다. 이런 역사들을 하나씩 되새기고 싶다. 배우 엄앵란이 올해로 데뷔 50주년이라는 것, 장미희가 30주년이라는 것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렇게 잊혀져가는 역사를 제대로 쓰고 싶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