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은 하는 일이 많다. 3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조금 심한 표현인지는 몰라도 그때의 영상자료원을 두고 사람들은 '철밥통'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영상자료원 사람들을 일 안하는 '半공무원'처럼 대하지 않는다. 이제는 이를 악물고 진저리를 쳐야만 견딜 수 있는 곳이 바로 영상자료원이라고 생각한다. 일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곳으로! 영상자료원이 지난 3년간 이루려고 한 모토다. 그리고 그 모토의 한 가운데 이효인 원장이 있어 왔다. 영상자료원이 일하는 '공적 기관'이라는 것은 지난 1년 여간 이곳에서 발굴된 초기 한국영화들이 몇 편이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해 2월 영상자료원은 일제시대 때의 한국어 영화 4편을 발굴해 공개했다. <군용열차><지원병><집없는 천사><어화> 등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이와 함께 기록영화인 <해방뉴스> 네 편도 찾아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인 <미몽> 등을 발굴해 대중에 공개했다. 이번에 발굴한 영화는 <미몽>을 포함 <반도의 봄><조선해협> 등 총 세 편이었다. 해방 전 제작됐지만 필름이 사라져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영화들이 영상자료원의 노력으로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 이효인 원장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그뿐만이 아니다. 영상자료원은 고전영화 필름을 발굴, 수집, 복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전영화관을 운영해 오래된 영화들과 대중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 또 이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즘엔 아예 고전영화 DVD까지 제작하고 있다. 그중에서 작년에 제작된 <자유부인> DVD는 1000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그렇다고 한국영상자료원이 과거의 영상 자료만 찾아다니는 건 아니다. '지금'을 위한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지난 3월 6일부터 운영되고 있는 'e- 러닝 KOFA 영화학교'는 관객 1000만 시대를 겨냥하는 일반인 대상의 영화교육 프로그램이다. 거기에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인 KMDB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은 가장 활발한 호흡과 활동력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그 자체다. 그렇게 되기까지 진실로 이효인 원장의 공이 컸다. 문제는 간신히 시작 단계를 넘어서서 결실을 위해 한창 바빠야 할 지금 그의 임기가 고작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단하게 달려온 지난 2년 8개월보다 남은 4개월이 더 고단하게 느껴지는 건 분명 아쉬움 때문이다. 그의 남은 4개월을 미리 엿본다. - 영상자료원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옛날엔 정말…. "이름뿐인 공공기관이었다는 말이겠지? 그 점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상자료원을 명실공히 '일하는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제일 먼저 직제와 팀제를 개편해 조직 개편을 했고, 직원 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각 부서 실장은 책임을 더 떠안게 하고, 각 팀의 팀장은 현장으로 나가 실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 조직 개편에 반발이 만만치 않았겠다. "직원 만족도를 계속 조사하고 경영 컨설팅을 꾸준히 했다. 일을 하고 싶어도 결제만 하다가 끝나는 게 공무원 조직이다. 조직 시스템이 합리적이라면 반발이 있을 까닭이 없다. 원장이 바뀔 때마다 조직이 바뀌는 불상사를 없애기 위해 누가 이 자리에 앉아도 상관없는 합리적인 시스템을 찾으려 노력했다. 비교적 만족에 가까운 조직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자평한다." - 영상자료원의 직원이 되려면 어떤 평가 시험을 치러야 하는가. "영화 상식 시험과 영어 시험 등을 매해 꾸준히 치러야 할 것이다. 이거 상당한 압박이자 부담이다.(웃음) 하지만 난 영상자료원 일이 국가정보원 일에 버금가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둘이 이름도 비슷하고. 어쨌든 한 나라의 문화유산을 책임지는 '영상정보원'이니까.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전문가로 키워 내야 한다. - '일하는 기관'으로 만드는 게 전체적인 그림이었다면 세부그림은 뭐였나? "우선은 전 직원이 동의할 이념이 필요했다. '한국영화는 국가 자본'이라는 생각을 모두 하길 바랐고, 그래서 '한국영화로 한국인을 행복하게' 하자는 걸 캐치프라이즈로 내세웠다. 실제적인 업무에서 가장 중점은 둔 건 디지털 아카이브다. 지금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로 갈수록 디지털 자료들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자료들을 수집, 보존해 디지털화 하는 작업을 가장 중요하게 봤다. 물론 한국 영화사 연구를 위한 허브로서의 역할,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제공자로서의 역할은 영상자료원이 기본으로 해야 할 몫이다. 시네마테크로서 관객과 친근해지는 것도 중요했다." -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KMDB 사업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맞다. 그런데 KMDB에서 가장 중요한 건 컨텐츠의 정확성이다. 이런 작업에서는 무엇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그리고 '일관된 책임성'을 가지고 자료를 검토하고, 정리하고, 또 유지해 나가야 한다. 부끄럽게도 현재 KMDB는 컨텐츠의 정확도 면에서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다. 꾸준히 정비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 영상자료원이 운영하고 있는 고전영화관의 운영상황은 썩 좋아지진 않은 것 같다. "고전영화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은 건 사실이다. 예전엔 주말 내내 관객 1명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주말 관객이 200여 명까지 온 적도 있다. 점점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엔 한국영상자료원이 지금의 예술의 전당에서 벗어나 상암동에 증축된 독립 공간으로 이동한다. 새 청사에는 극장이 3개다. 관객과 만나는 장이 훨씬 넓어질 것이다." - 특별히 모델로 삼은 해외 영상 아카이브가 있었나. "전 세계 아카이브를 돌아다니며 공부했다. 못해도 7~8개 정도는 돌아본 것 같다. 하지만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은 '몰라서 못하는' 단계가 아니다. 좀 더 풍부한 지원과 재원이 공급된다면 앞으로 더욱 훌륭한 아카이브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름 아카이브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디지털 아카이브로서는 다른 어느 곳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디지털 아카이브로서 세계 기준, 표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영상자료원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영상자료원이 지난 3년간 해온 작업들을 보면 이제서야 한국 영화산업이 현대화 돼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카이브야말로 모든 해당 산업의 밑거름이니까. "한국 영화문화, 한국 영화사는 아카이브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박제된 자료 보관소로서의 자료원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와 함께 호흡하는 아카이브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쉬운 부분이 아직은 너무 많다. 채워야 할 것도 많다." - 임기가 4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관료 조직에 대해 미리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일의 진행 과정이 보다 매끄럽고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 더 많은 일을 더 쉽게 할 수 있었겠지.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이러저러한 것들은 일의 순서를 조금 바꿔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살면서 그러지 않는 일이 뭐가 있겠나. 모든 게 다 아쉽다. -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이후의 삶은? 평론가로 복귀하는가? "한동안은 좀 쉬고 싶다. 그리고 아쉬운 대로 1970~80년대 한국 영화사를 한국영화 연구자로서 정리하고 싶다. 그 후엔 문화와 관련된 아카이브 운동을 계속 해나가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여기 있는 동안 많은 것들을 새로 배우고 또 알게 됐다. 그걸 계속 이어가고 싶다." 진행 : 오동진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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