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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백의 짜릿함, 아드보카트號가 보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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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백의 짜릿함, 아드보카트號가 보여주길"

[기고] 한국 포백 수비의 어제와 오늘

딕 아드보카트 축구 대표팀 감독은 올해 1월부터 6주 간 계속된 해외 전지훈련과 평가전을 통해 대표팀을 변모시켰다. 그 가운데 가장 뚜렷한 변화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됐던 포백 수비를 구사하는 것이다. '포백 수비 신봉자'로 불리는 박성화 전 청소년 대표팀 감독이 포백 수비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과 아드보카트호의 포백 수비에 대한 의견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13년 전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유공 감독으로 있던 1993년 나는 선수들과 함께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그곳에서 유공은 J리그 팀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경기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생전 처음 보는 히로시마의 수비 전술에 우리 팀은 속수무책이었다. 감독인 내가 전반전이 끝난 뒤 선수들에게 해결책을 줘야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당시 산프레체의 감독은 잉글랜드 출신의 스튜어트 박스터였다. 박스터가 팀에게 주입시킨 것은 다름아닌 포백 수비. 경기가 끝난 뒤 한국의 기자들은 산프레체의 일본인 총감독 이마니시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이마니시 총감독은 포백 수비를 설명하며 "이제 3-5-2(스리백) 시대는 갔다"는 말을 남겼다. 다행히도 산프레체에 노정윤이 뛰었기 때문에 나는 정윤이를 붙잡고 포백 수비의 훈련 프로그램과 자료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내게 전율감마저 느끼게 해준 수비 전술을 꼭 마스터해야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였다.

포백에 관한 자료도 모으고, 스페인에 갔을 때 현지에서 활동 중인 감독들에게 귀동냥을 해서 나는 포백 수비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자연스레 유공 선수들에게도 포백 수비를 가르쳤다. 1994년 유공은 국내에서는 매우 생소했던 포백 수비 전술을 통해 아디다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전기리그에서도 준우승에 올랐다. 스타군단으로 불리던 포항은 같은 해 우리 팀을 단 한 차례도 이기지 못했다. 포항의 황선홍(현 전남 코치)은 "유공만 만나면 경기가 유난히 힘들다"고 했을 정도다.

유공은 1994년 준우승을 차지했다. 준우승의 원동력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게 포백 수비였다. 사실 1994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 나는 유공의 포백 수비에 대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내게 포백 수비를 가르쳐 준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유공은 승리를 거뒀다. 상대의 포백 수비를 우리 선수들이 무너뜨렸고, 우리 팀은 촘촘한 포백 수비 전술로 산프레체 공격수들을 묶었다. 경기 뒤 산프레체 팀의 관계자는 "우리는 포백을 4년 동안 준비했는데 당신은 작년에 포백을 처음 알게 됐지 않나요?" '청출어람'의 심정이랄까? 부러움 섞인 이 한마디에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백 수비는 우리나라에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일화가 K리그 3연패를 차지할 때도 포백 수비를 썼고, 김호 감독이 이끌던 삼성이 우승을 했을 때도 수비의 기본 전술은 포백 수비였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일자 라인 형태를 띠고 있는 포백 수비가 상대의 역습 한 방에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그 뒤 국내축구계에서는 포백 수비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졌다. 포백 수비는 마치 한국 축구와 접목될 수 없는 전술이 되어버리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 그리고 바통을 이어 받은 코엘류 감독과 본프레레 감독은 모두 처음에 대표팀을 포백 수비로 바꾸려 했지만 중간에 포기했다. 맨투맨 수비에 익숙했던 수비수들이 지역방어의 성격이 강한 포백 수비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다. 히딩크 감독의 경우에는 포백 수비로 2002년 월드컵을 치르기에는 무리수가 많이 따랐을 것으로 본다. 시행착오를 하기에는 한국에서 펼쳐지는 월드컵이라는 짐이 너무 무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 뒤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감독들이 왜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포백 수비에 대한 실험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축구 전술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떤 시스템이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진 축구의 시스템 중 하나인 포백 수비를 분석하고 빨리 받아들여 다양한 전술운용 능력을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변화는 시행착오가 있게 마련이고, 실패가 뒤따라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한다면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카리스마와 함께 집념이 얼굴 표정에서 묻어나는 아드보카트 감독은 다행히도 한국 대표팀에 포백 수비를 정착시켰다. 이런 성공적인 변화는 '포백은 안 돼'라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구사하는 포백 수비는 아직 100%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김남일과 이호를 '더블 볼란테'로 사용하며 허리를 단단하게 한 조치는 포백 수비를 안정화 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대표팀의 포백 수비가 성공한 배경에는 그동안 K리그나 유럽에서 뛰며 포백 수비를 직접 경험한 선수들이 많아졌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나도 청소년 대표팀 감독 시절에 주로 포백을 썼기 때문에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지금은 국가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김진규 선수 등도 포백에 익숙하다.

포백 수비는 언뜻 보면 스리백보다 수비 숫자가 많기 때문에 수비적인 전술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좌우 측면 수비수의 활용 여부에 따라 공격전술로 강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 대표팀에서 이 역할을 이영표, 조원희, 김동진 등이 맡고 있다.

또한 상대 팀의 여러 전술적인 움직임에 카멜레온처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상대 팀의 공격수가 원톱, 투톱, 스리톱이냐에 관계 없이 기본적인 포백 전술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서 팀의 전술적 혼란을 줄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포백 수비의 대표적 장점인 이 두 가지는 대표팀에서 잘 보여진다. 하지만 아직까지 조금 아쉬운 부분은 중앙 수비수들의 간격 유지와 상호 커버 플레이가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포백 수비는 수비수들이 늘어선 형태가 거의 일직선으로 되기 때문에 수비수들이 서로 도울 수 있는 절대거리를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여기서부터 수비 조직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최전방부터 중원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압박이 좋다고 해도 포백 수비 라인의 간격 유지가 깨지면 상대 팀의 의표를 찌르는 패스 한 방에 당하기 일쑤다. 대표팀의 포백 수비가 어떻게 짜여질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 부분은 반드시 해결해야 프랑스, 스위스 같은 팀들과 좋은 승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해 세계 청소년축구 대회에서도 대부분의 팀들이 포백 시스템을 사용했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이 시스템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드보카트호도 포백 수비를 중심축으로 삼고 특정 경기에서는 스리백을 겸용할 것으로 본다. 아직 국가대표팀의 포백 수비는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매우 크다. 13년 전 포백 수비를 쓰던 일본 프로 팀과의 경기에서 느꼈던 전율감을 독일 월드컵에 출항하는 아드보카트호를 보며 다시 느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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