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독일 월드컵에서 같은 조에 속한 스위스에 대한 일반 독일인들의 생각이다. 영세 중립국이라 전쟁에 개입할 필요가 없어서 좋은 면도 있지만 그만큼 줏대가 없고 강한 승부근성이 없다는, 스위스에 대한 독일인들의 고정관념을 반영하는 말이다.
사실 스위스가 월드컵 개최국 독일의 '옆 집'이지만 독일 언론들은 스위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같은 조가 아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직 스위스의 축구 수준이 높지 않다는 생각도 깊게 깔려 있다.
하지만 스위스는 분명 독일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킬 주요 '다크호스' 중의 하나다. 특히 필리페 센데로스(아스날), 트랑키요 바르네타(레버쿠젠)같은 선수는 스위스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피'로 평가받는다.
스위스 더 이상 유럽축구의 변방이 아니다
스위스 축구는 지난 수 년간 유럽축구의 변방이었지만 최근 유망주들이 많이 탄생해 이제는 유럽축구의 복병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최근 FIFA 랭킹에서 35위를 차지한 스위스 축구의 역사를 보면, 이렇다 할 만한 발자취를 남기지 못했다. 딱 하나 있다면, 2002년 유럽 17세 이하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올해 바로 그 '젊은 피'들이 이번 독일 월드컵의 주역으로 성장한 것이다.
스위스는 이번 2006년 독일 월드컵을 포함해 총 8번의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최근 마지막으로 진출한 것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이다. 또한, 1934, 1938, 1954년을 제외한 다른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준준결승전 진출 이상의 성적을 거둔 적이 없다. 스위스는 월드컵 본선에서 6승 3무 13패를 기록했다.
스위스 사람들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은 1954년 자국에서 열린 스위스 월드컵에서 오스트리아와의 준준결승전에서 3-0으로 이기고 있던 경기를 7-5로 결국 진 경기였다. 또한, 스위스는 가장 최근에 참가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에게 3-0으로 지며 16강에 머물렀다.
스위스 축구는 사실 '독일 축구의 모방'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조직력과 체력을 강조하고, 공격에서는 머리에 의한 득점을 많이 노리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강한 정신력이 뒷받침 되지 않았던 스위스는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전력면에서는 다소 뒤져도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독일과는 상반되는 경우였다.
젊은 피의 핵, 센데로스와 바르네타
하지만 스위스는 오랫동안 축구협회 차원에서 집중 육성한 유소년 스타들이 대표팀에 다수 포진돼 있고, 신구 세대의 조화를 통한 끈끈한 조직력을 갖췄다. 그 중심에는 '수비의 핵' 센데로스와 창조적인 미드필더 바르네타가 있다.
190cm의 장신 수비수 센데로스는 몸싸움과 제공권 장악 능력이 뛰어나고, 승부근성과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 세트 피스 시의 공격 가담능력도 우수하다는 평가다. 센데로스는 지난 2002년 스위스 17세 이하 대표팀으로 유럽 선수권에 나서 잉글랜드의 '신성' 웨인 루니를 완벽하게 막아냈고, 유럽의 명문 클럽들로부터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결국 센데로스는 스위스 우승을 이끌며 아스날에 입단했다. 이번 독일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도 어린 나이지만 수비라인의 기둥으로 팀의 본선행을 이끌기도 했다. 순간 스피드가 다소 떨어진다는 약점이지만 한국 공격수들에게는 분명 위협적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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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네타 역시 센데로스와 함께 2002년 유럽 17세 이하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끈 주역. 2005 세계 청소년 대회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는 주로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지만 왼발도 잘 써, 좌우 측면 어디서든 제 몫을 다해준다. 크로스의 정확도와 빠르기에 있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르네타는 스위스 리그의 생 갈렌에서 2시즌 동안 12골을 넣었고, 2004/2005 시즌에 분데스리가의 하노버로 임대되어 7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 순도 높은 활약을 보였으며, 2005/2006 시즌에 레버쿠젠에 입단했다.
스위스 중원 사령관은 박지성, 이영표와 에인트호벤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요한 포겔(AC 밀란). 포겔이 안정적인 팀 플레이에 주력한다면 바르네타를 위시한 카바냐스, 기각스 등의 스위스 전사들은 창조적인 공격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쿤 감독 "반드시 8강 진출하겠다"
스위스의 돌풍을 예견하는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야콥 쾨비 쿤 대표팀 감독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선수시절 창조적인 미드필더였던 쾨비 쿤 감독은 청소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다시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발에 꿀을 숨기고 있는 선수'라는 별명처럼 재능이 많았던 쿤은 대표팀 감독이 된 뒤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스위스 축구의 젊은 피를 과감하게 대표팀에 수혈했고, 유기적인 팀을 만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쿤 감독의 조치는 스위스 선수들의 투지에 불을 댕겼고, 선수들은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했다. 쿤 감독이 최근 "반드시 8강에 진출을 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스위스가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여러 개의 언어를 쓰는 나라라서 그런지, 여러 인종들이 현 대표팀에도 포함돼 있다. 위에서 살펴본, 센데로스는 세르비아 출신의 어머니와 스페인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센데로스는 세르비아어, 스페인어뿐 아니라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에도 능통하다. 센데로스뿐 아니라 꽤 많은 스위스 대표팀 선수들은 스위스 혈통이 아니다. 바르네타도 이탈리아계이며 베라미(라치오)는 코소보 이민자의 아들이다. 폰란텐도 콜롬비아 출신의 이민 2세이며 미드필더 카바냐스 (쾰른)도 스페인 핏줄이다. 쾨비 쿤 감독도 어린 시절 이탈리아에서 이민을 온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시작했다.
스위스는 유럽 알프스지방의 골짜기에 불어내리는 국지풍(局地風)인 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푄은 알프스 북쪽의 찬바람과 남쪽의 습기찬 더운 바람이 교차하며 생겨난다. 젊은 선수들과 베테랑 선수들이 가장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스위스 축구와 푄은 이런 점에서 닮았다. 푄이 심한 날이면 사람들이 두통을 호소할 정도로 그 파급효과는 강력하다.
그렇다면 스위스 축구의 돌풍은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얼마나 강하게 불까? 스위스와 16강 진출여부를 놓고 마지막 경기에서 격돌하는 한국이 스위스 축구의 매서운 푄 바람을 뚫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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