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월드컵에서 한국과 같은 조에 편성된 프랑스는 '월드컵의 산파'다. 근대축구의 종가(宗家)가 영국이었다면 프랑스는 근대축구의 조직과 기틀을 마련한 국가다. FIFA(국제축구연맹)도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약자다. 그 이유는 영국이 자신들만의 자부심을 너무 세웠던 탓에 1946년까지 FIFA가입을 거부하고 프랑스를 주축으로 초창기 FIFA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월드컵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6년 프랑스 축구협회회장 쥘 리메와 사무총장 앙리 들로네는 FIFA 총회에서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자유로운 월드컵 대회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이 발언은 지구촌 최대 축제로 자리잡게 된 월드컵 개최를 촉발시켰다.
프랑스, 개개인의 능력만 보면 분명 우승후보
하지만 '월드컵의 산파' 프랑스는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 대회 우승 이후 다소 하락세다. 지단, 마켈렐레, 비에이라, 앙리, 트레제게 등 슈퍼 스타들이 즐비해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우승후보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노장 선수들이 많아 체력적인 문제를 노출할 수도 있다. 한국은 분명 프랑스에 전력상 열세지만 중원에서 강한 압박을 펼칠 경우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에서 첫 우승을 거뒀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은 '아트사커' 군단 프랑스에 명예회복의 기회다. 프랑스는 한 때 FIFA랭킹 1위를 달렸지만 최근 부침을 거듭하다 지금은 5위까지 밀려났다.
프랑스는 이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어려움을 겪던 끝에 그라운드의 사령관 지네딘 지단과 수비형 미드필더 클로드 마켈렐레가 대표팀에 복귀하면서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 선수와 같이 뛰고 있는 미카엘 실베스트르와 잉글랜드 첼시에서 활약하고 있는 갈라 등이 수비를 조율하고 있고, 프랑스 파리 생제르망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도 혈통의 비카시 도라쉬,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지단,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마켈렐레가 허리를 맡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 3명이 포진된 프랑스의 중원은 분명 경계 대상이다. 특히 비에이라, 마켈렐레는 패스 능력, 수비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웬만한 팀들이 상대하기 힘든 선수들이다.
프랑스의 공격은 잉글랜드 리버풀의 지브릴 시세,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의 실뱅 빌토르, 잉글랜드 아스날의 티에리 앙리, 유벤투스의 다비드 트레제게가 이끈다. '킹 앙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티에리 앙리는 육상선수 출신답게 폭발적인 스피드와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때리는 과감한 슛으로 정평이 나 있다. 소속 클럽인 아스날에서는 살아 있는 전설이지만 프랑스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으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앙리가 이번 월드컵에서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팀 케미스트리 문제는 프랑스의 최대 단점
이처럼 강력한 프랑스 축구의 아킬레스 건은 팀 케미스트리(Team Chemistry)와 노장들의 체력. 프랑스 공격의 시발점인 지단은 분명 뛰어난 선수지만 공·수 전환이 예전과 달리 느려졌고, 최근 경기 템포를 다소 지연시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철저하게 중원에서 수비 쪽의 몫은 비에이라와 마켈렐레가 책임져야 한다. 한국이 이 점을 노려 협력수비로 지단의 행동반경을 초반부터 줄여 나가야 한다. 또한 역습 시에는 빠른 패스와 돌파로 프랑스 수비를 흔들어야 한다. 중원에서 세밀한 패스를 계속 연결하기 보다는 오히려 비에이라, 마켈렐레의 힘이 덜 미치는 측면으로 빠른 패스가 많이 이어져야 한다.
여기에다 프랑스의 레이몽 도메네크 감독은 아직 보석 같은 선수들을 하나로 엮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다. 개개인의 실력은 정상급이지만 전체적인 조직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같은 조에 속한 스위스와는 정반대의 경우다. 지단이 최근 "프랑스는 선수들을 같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힘이 부족하다. 단결된 조직으로서 예전에 보여줬던 미덕이 현재 대표팀에는 없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 월드컵에 출전할 최종 엔트리 선발 뒤에도 프랑스에서는 계속 잡음이 불거져 나왔다. 도메네크 감독은 주전 엔트리를 발표하면서 "주전 골키퍼는 바르테즈다"라고 말해, 경쟁자였던 쿠페 골키퍼의 힘을 뺐다. 또한 엔트리에서 제외된 스트라이커 루도비치 지울리는 "만약 부상 선수가 발생해도 나는 팀에 합류할 뜻이 없다"고 말했다. 아넬카도 "나는 코스타리카와 평가전에서 골을 넣었다. 월드컵에 출전할 자격이 있지만 도메네크 감독은 나를 외면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한마디로 프랑스는 계속 삐걱거리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상황은 프랑스가 창조성과 기술적 측면에서는 매우 강하지만 정신적 무장은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이는 마치 프랑스가 1982년, 1986년 월드컵에서 서독에게 일격을 당할 때와 비슷하다. 당시 서독은 전력에서 프랑스에 뒤진 게 사실이지만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해 냈다.
프랑스는 천재 미드필더 미셸 플라티니, 알랭 지레스, 장 티가나 같은 선수들의 힘으로 1980년대 세계적 강팀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역대 최고의 미드필드 진을 보유하고서도 월드컵에서 연속 두 번이나 서독에 무릎을 꿇었다. 창조성에서는 프랑스가 앞섰지만 승리에 대한 강한 열정에서는 독일이 앞섰기 때문이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준결승에서는 프랑스가 3-1로 이기고 있었지만 끝내 독일의 반격을 막지 못하고,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프랑스는 골키퍼 조엘 바츠의 실책에 가까운 플레이로 독일에 무릎을 꿇었다.
'월드컵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프랑스 축구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쓰라린 추억을 뒤로 하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자존심 회복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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