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은 승점 4점을 얻었지만 16강에 오르지는 못했다.
전체적으로 한국은 경기 내용에 비해 경기 결과가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미드필드 플레이가 이뤄지지 않아 단조로운 경기 운영을 했지만 선수들의 투혼과 집중력으로 어느 정도 이를 만회했을 뿐이다.
중원에서 상대의 강한 압박을 풀 수 있는 것은 결국 선수들의 기본기다. 상대를 따돌리는 방향전환, 빠른 정교한 패싱 게임이 필요하다. 한국은 안타깝게도 너무 느린 패싱 게임으로 상대가 협력수비를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한 번의 부정확하고 느린 패스들이 쌓이고 쌓여, 전체 경기 템포를 죽였다. 이런 기술은 사실 대표팀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5세가 되기 전에 습득돼야 할 부분이다.
청소년 대표팀 감독 시절에도 선수들에게 빠른 패싱 게임을 주문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은 볼 트래핑과 패싱의 정교함에서 축구 선진국 선수들에 비해 턱 없이 떨어졌다. 본인들도 이를 답답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 현상은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던 아드보카트호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상대 수비를 효과적으로 깰 수 있는 속공은 나오기 힘들었고, 미드필드가 생략된 롱 패스에 의존한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월드컵이 끝난 뒤 "K리그가 유럽 수준으로 발전돼야 한다"고 말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물론 아드보카트 감독의 변명섞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그냥 지나칠 말이 아니다.
2주 간의 6대6 미니게임으로 선수들의 '예리함'을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니게임이 선수들의 반응 속도와 좁은 공간에서 플레이를 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클럽에서도 미니게임 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선수들의 기본기를 바꿀 수는 없다.
빨리 한국 축구가 '기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2002 한일 월드컵의 영광을 재연하는 데에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뜻이다. 유소년 축구 팀에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할 경우에는 사실상 한국 축구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와 독일 월드컵에서 같은 조에 속해 있던 프랑스나 스위스의 예를 보면 좀 더 명확해 진다.
월드컵을 만든 쥘리메의 조국인 프랑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추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프랑스 클럽들은 1970년대 초 까지 유소년 선수들에 대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1969~73년에 프랑스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조르주 불로뉴의 유소년 축구 육성정책으로 프랑스 축구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기술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인 현재 프랑스 대표팀의 근간도 이런 과정을 통해 완성됐다. 적어도 30년 앞을 내다 본 프랑스 축구계의 '혜안'이었던 셈이다.
1954년 자국에서 펼쳐진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했지만 그 뒤로는 늘 유럽 축구의 변방으로 남아 있던 스위스의 경우도 비슷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위스 축구의 토대를 탄탄하게 하겠다는 자세가 지금의 스위스 대표팀을 만들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과 독일 월드컵에서의 아드보카트 감독은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달랐다는 태생적 차이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의 심리까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렇지 못했다. 효과적인 선수 기용과 용인술이라는 측면에서 히딩크가 아드보카트보다 앞설 수 있었던 이유다.
히딩크 감독은 유상철을 중원의 꼭지점으로 사용해 공격진과 유기적인 호흡을 하게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은 상대 공격수들을 막아내는 1차 저지선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반면 아드보카트 감독은 스타일이 비슷한 김남일, 이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세웠지만 공격으로의 패스 연결이 원활하지 못했다. 한국이 독일 월드컵에서 중원과 공격 라인 간의 가장 좋은 호흡이 맞았을 때는 4-2-3-1 전형을 사용했던 때였다. 박지성, 안정환, 이천수 등이 원톱 조재진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을 때였다.
하지만 단순히 두 감독의 전술상의 차이점을 지적하는 것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기본기를 키우는 것이다. 히딩크를 '족집게 강사' 또는 '마법사'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의 개인기술까지 향상시킬 수는 없다. 단지 선수들의 투지를 자극하고, 그렇게 무장된 선수들을 잘 조합하는 일이다.
당장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대표팀의 뿌리를 튼실히 하는 게 현재 한국 축구에는 절실하다.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리더라도 세계 수준에 근접한 축구를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서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한 때인 것같다. 한국 선수들의 자질은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중, 고교 시절부터 성적에 얽매이는 축구를 하다 보니 기본기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주 작은 부분인 것 같지만 볼 트래핑 하나가 중요한 경기에서 흐름을 바꾸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는 어릴 적부터 몸에 밴 기본기 훈련에서 나오는 것이지, 순간적인 선수들의 재치에 의해 나타나지는 않는다.
언제까지 한국 축구가 2002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10년 이상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 프로젝트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축구협회와 선수들은 물론 축구 팬들과 언론도 되도록 눈 앞의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계에서 제 색깔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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