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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안중에 없는 '장애인 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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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안중에 없는 '장애인 체전'

[지방의회돋보기]그 축제는 누구를 위한 축제였을까?

전국 장애인 체전이 9월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일정으로 울산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전국체전, 올 6월 소년체전에 이어 체전 행사의 마무리인 셈이다. 이 기간에 맞춰 체전 참가자들과 시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참여를 높인다는 의미에서 부대행사들도 한창이다.
  
  울산시민의 날 행사와 처용문화제가 같은 기간에 배치됐고, 가을이면 열리는 기초단체들의 축제와 체육단체 체육대회들이 한꺼번에 열리는 등 그야말로 울산은 지금 축제의 기간이다.
  
  이미 지난 7월부터 의회도 장애인체전 시설과 행사 준비로 북적북적했었다. "인정 많고 잘사는 울산을 전국의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업무보고도 있었다.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들여다봤더니 '역시나'였다. 담당국장은 "사람이 모이지 않는 행사는 의미가 없다"며 유명가수들을 잔뜩 초청자 리스트에 올려놨다. "울산 문화수준을 한껏 높이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에 "지역문화는 어떤 계기로 만들고 키워나갈 것이냐"고 맞섰던 일도 있었다.
  
  문화, 체육 분야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비슷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고 조언을 듣게 됐다. 누군가 "현장을 직접 가 보라"고 했다. 자체적인 노력 보다는 자원봉사자들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관례적으로 되풀이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결정 난 시 예산을 쓰는 일만 남아 있다면 현장에서 진행되는 내용을 모니터하고 그것을 기초로 평가와 대안을 제시하는 쪽이 낫겠다는 결심이 섰다. 모든 행사에 다 가볼 수는 없으니 초점은 장애인 체전 준비에 두기로 했다.
  
  '장애인 체전'이라는 말 속에는 체전이라는 행사를 통해 그 지역의 장애인 시설의 확대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매년 각 지역을 돌며 체전이 열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필자 나름대로 설정한 현장 모니터의 컨셉은 과연 이것이 우리 울산에서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가였다.
  
  이를 위해 올해 행정사무감사 집중 분야를 문화체육국으로 정하고 상임위원장을 찾아가 체전 시설점검을 의회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동료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줬다. 의원들과 함께 시설 점검을 위해 세 곳을 다녀봤더니 생각보다 심각했다.
  
  전국체전을 준비하면서 지은 시설들이 거의 그대로였다. 장애인 체전이라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등 기본시설 몇 개를 추가해 생색을 낸 것이다. 수영장 등에선 경사로 확보 등 장애인 이동권이 불충분했고,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출입문이 좁아 장애인들이 실질적으로 이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장애인용이 아닌 내빈용 시설에 가까웠다.
  
  또한 통상적으로 체전 때는 학교 체육시설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교 담당자들도 민망해할 정도로 장애시설 확충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학교시설은 장애인 체전이라는 행사가 아니어도 우선적으로 지원돼야 할 곳이 아닌가?
  
  어이없는 일은 이뿐이 아니었다. 체전 개막 일주일 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장애위원회가 체전시설 모니터 결과를 발표한 것을 시 측이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모니터 결과의 요지는 경사로의 각도나 주차장 수, 화장실, 시설 출입구, 장애인 편의시설 등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직접 돌아본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는 "시설을 보완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모니터 결과를 발표하는 게 어디 있느냐"고 항변했다. 기가 막혔다. 마치 당 장애위원회가 체전에 재를 뿌릴 의도로 좋지 않은 결과를 공개한다는 투였다. 당 장애위원회는 해마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시설 실태조사를 해 왔고, 체전 시설 점검도 그 일환에서 해 온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더욱 심한 것은 다른 장애인단체들의 입장을 대조시켜 마치 장애인들끼리의 갈등처럼 몰아가기도 했다. 장애인총연합회 등이 발표한 내용은 경기장, 숙박시설 등 실태조사를 해 본 결과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지역신문에는 양측이 전혀 다른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는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정말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건 아니잖아'였다.
  
  필자는 장애인총연합회 등의 실태조사가 잘못됐다고 따질 생각은 없다. 문제는 어느 쪽에서건 시설확충의 불충분이 지적되면 개선하려는 의지를 먼저 보이는 것이 상식일 텐데, 체전 일주일 전에 발표됐다는 것을 꼬투리 잡아 볼멘소리부터 내고 있다는 것이다.
  
  12일 저녁 울산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빗속에서도 개막식이 열린 종합운동장을 선수단과 가족들, 시민들이 가득 메워 박수갈채를 보냈다. 많은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 특히 수화봉사자들이 비를 그대로 맞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윗사람'들에게 겪은 상식 이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돌아오는 길에 장애인부모회 부스에 들렀다. 추위에 떨다 차 한 잔 얻어 마시러 온 공무원들을 만났다. 자신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선수단 숙소, 식당 안내와 개막식 장소 정리로 언제 퇴근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고생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 "고생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고날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지요." 마음 한켠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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