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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개인들의 낭만적 저항과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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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개인들의 낭만적 저항과 종말

[김이석의 올드앤뉴] <대통령을 죽여라!>와 <택시 드라이버>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현대적 비극 속의 인물들은 "제각기 고독에서 나와서, 극복할 길 없는 고독을 가지고 고독한 다른 사람들 한가운데서 자기 혼자만의 궁극적인 비극의 고독을 향해 달려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극복할 길 없는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비극적 고독 속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어디 비극 속의 인물 뿐이겠는가? 산업사회의 등장과 대도시의 등장은 평범한 세일즈맨, 별 볼일 없는 퇴역군인들마저도 비극 속의 인물로 만들어 버린다. <대통령을 죽여라 The Assassination Of Richard Nixon>(2004)의 주인공 샘은 사무 가구 세일즈맨이다. 그는 비록 소심하고 무능력하기는 하지만 순수하고 정직한 심성을 가진 소시민이다. 그의 바램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 별거 중인 아내로부터 인정을 받아 흩어진 가정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당한 거짓말과 적당한 술수가 필요한 세일즈맨의 세계에 안착하기에는 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희망은 은행 대출을 받아 흑인 친구와 함께 정직한 장사를 하는 것이지만 세상은 그의 바램을 들어주지 않는다. 대출은 거절 당하고, 별거 중인 아내로부터는 이혼 통보를 받고, 형으로부터는 의절을 당한다. 그가 속내를 털어놓곤 했던 친구 버니마저도 샘의 지나친 결벽증을 이해하지 못한다. 궁지에 몰린 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자신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끊임없이 거짓말로 세상을 속이는 닉슨 대통령을 암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1976)의 주인공 트래비스는 월남전 퇴역군인이다.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야간 택시 운전을 시작한다. 밤샘 운전을 하고도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포르노 상영관에 들러 시간을 때운다. 하지만 이런 육체적 혹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잠들지 못한다. 불면에 시달리는 그의 눈에 비친 도시는 거대한 쓰레기통이다. 이 도시에서 트래비스는 아이리스와 베씨라는 두 명의 여자를 알게 된다. 열두 살짜리 창녀 아이리스는 이 도시의 타락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말해주는 존재다. 반면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일하는 베씨는 트래비스에게는 이 현대판 소돔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희망이다. 트래비스는 이 우아하고 고상한 여인에게서 생의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한다. 하지만 트래비스의 베아트리체는 "당신과 나는 어울리지 않아요"란 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를 떠나간다. 이제 마지막 희망은 사라진 것을 깨달은 트래비스는 스스로 이 쓰레기더미 도시를 정화하기로 결심한다.
대통령을 죽여라! ⓒ프레시안무비
<대통령을 죽여라>와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들은 혈혈단신으로 사회와 맞설 정도로 무모한 인물들이지만 처음부터 이들이 전사였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중되는 모순과 부조리는 이 소심하고 무기력한 인간들을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몬다. 남을 속이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는 샘의 소박한 소망은 존중 받기는커녕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사회 속으로 편입하려고 노력할수록 그는 세상과 더 멀어진다. 마침내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튕겨 나가버린 것을 깨닫는 순간 샘은 총을 든다. 그럼으로써 그는 조롱 당한 자기의 신념을 지키려 한다. 트래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소망은 남들처럼 편히 잠들고 남들처럼 사랑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쳐 돌아가는 도시는 그를 잠들게 하지 않는다. 아이리스를 처음 만난 날, 아이리스의 포주 매튜가 그에게 던진 꼬깃꼬깃한 1달러짜리 지폐는 이 도시 속에서 트래비스가 어떤 존재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형편없이 구겨진 탓에 다른 돈들과 결코 섞일 수 없는 그 지폐를 들고 트래비스는 매음굴로 들어간다. 열두 살짜리 소녀에게 매춘을 강요하는 인간쓰레기는 거리낌 없이 그 지폐를 받아든다. 그 수치심 모르는 손을 트래비스는 권총으로 날려 버린다. 그럼으로써 모욕 당한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샘과 트래비스 누구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비행기를 납치해서 백악관에 충돌하려던 계획을 세웠던 샘은 비행기 탈취에는 성공하지만 이륙도 하지 못한 채 공항에서 저격수들의 총탄 세례를 받고 숨을 거두고 만다. 베씨가 몸 담고 있던 선거 캠프의 후보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트래비스 역시 치밀한 사전 준비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장에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도망치고 만다. 애초의 계획이 실패하자 트래비스는 아이리스가 몸 담고 있는 사창가로 달려가 포주들과 총격전을 벌인다. 살아남은 그는 어린 창녀를 구출한 영웅으로 대접 받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트래비스는 그가 피 묻은 손가락을 자기 머리에 겨누고 빈 방아쇠를 당기던 그 순간에 이미 목숨을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다.
택시 드라이버 ⓒ프레시안무비
권총 한 자루를 들고 대통령 혹은 대통령 후보가 상징하는 시스템의 심장부를 향해 달려가는 샘과 트래비스는 돈 키호테적인 인물들이다. 샘과 트래비스의 행동이 더욱 비극적인 것은 풍차를 향한 돈 키호테의 돌진이 자신의 내적 확실성에 기초한 능동적인 모험이었던 반면 샘과 트래비스의 결정은 외적 환경에 의해 강제된 일종의 분열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기 앞에서 거대한 날개를 휘젓고 있는 저 존재가 거인이라는 확신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영혼의 내적 균열을 견디지 못한 샘과 트래비스는 자신의 삶을 무로 붕괴시켜 버릴 행위를 선택한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완전히 연소시킨 그들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여전히 완고하고 오만한 태도로 세상은 우리에게 '거절할 수 없는 요구'를 던진다. 시스템에 복종할 것인가 혹은 무로 사라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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