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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준 '봉이 김선달' 면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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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준 '봉이 김선달' 면허증

[지방의회 돋보기]'30년 특혜보장' 민간투자사업의 내막

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옛날에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어마어마한 사기행각을 범죄보다는 풍자와 해학으로 이해한다. 그 사람은 적어도 배고픈 사람들 돈을 갈취하지는 않은, 나름의 기업윤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대판 대동강물 사건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세금 낭비를 바탕으로 하기에 곱게 넘어갈 수가 없다. 그 중 하나가 민간투자사업이다. 최근 행정사무감사 기간 중에 민자유치 사업장 한 곳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마산과 창원을 잇는 마산만 횡단도로 공사 현장이다. 이곳은 H건설과 외국계 B사가 각 50% 지분을 가지고 민간투자를 한 곳이다.
  
  총 사업비 6050억 원 중 본사업인 다리 설치비용은 2648억 원이고, 접속도로 공사비는 3402억 원이다. 민간 사업주는 교각 건설비 가운데 1864억 원만 부담한다. 교각 건설비에 포함되는 재정지원금 634억 원, 토지보상비 120억 원은 물론이고, 접속도로 공사비는 모두 국고로 충당된다.
  
  접속도로 공사는 대안입찰 방식으로 H건설에 넘어 갔다. 대안입찰은 사업희망자가 조사비와 설계비 등을 부담해야 하기에 사실상 내락을 받지 않으면 웬만한 사업희망자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사전 비용이 들어 눈치 없는 사업자가 아니라면 미리 알아서 포기할 수밖에 없기에 수의 계약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투자사업자가 접속도로와 부대시설 공사를 수주할 때 일반화된 방식이다.
  
  이를 대가로 민간투자업체는 30년간 통행료(승용차 2000원, 2001년 기준가)를 징수하는 파격적인 수혜를 얻는다. 이 기간 동안 3조2000억 원의 통행료 수익이 예상된다. 그것도 징수액이 당초 상정한 기준의 80%에 미달하면 그 부족분은 정부에서 재정보전을 해주는 안전장치까지 마련돼 있다. 일반적인 건설사업의 수익에 비해 대단히 안정적인 고수익이다.
  
  결국 사업을 따 낸 민간 사업자는 1864억 원을 부담해 공사를 마치면, 그 때부터 30년 간 3조2000억 원의 수익이 보장된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땅 짚고 헤엄치기'이자 국민 혈세와 통행자들의 주머니 돈을 30년 동안 털어내는 '현대판 대동강물 사기사건'인 셈이다.
  
  현장사무실을 방문하니 민자사업자와 건설사 직원 50여 명 이상이 도열해 있었다. 공사 현장을 둘러보며 콘크리트 기포발생 등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자 담당자들은 변명은커녕 "외국의 특수 공법이며 신기술"이라고 오히려 선전을 했다.
  
  한술 더 떠 도청의 담당자는 "외국회사가 참여하다 보니 공사는 참 정확하게 잘 하는 것 같다"면서 레미콘이 40여 차례 반려된 서류뭉치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이번엔 이 사업 협약체결의 불평등성과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도청 담당자의 대답인즉 "정부자금을 빨리 끌어 오기 위해 불가피하게 민자를 유치했고, 체결 당시만 해도 민자사업이 처음이라 내용도 잘 몰랐다"는 것이었다. 풀이하자면 국민 혈세를 빨리 끌어오기 위해 내용도 잘 모르면서 특혜성 사업 협약을 맺었다는 뜻이다.
  
  또 다른 민간투자사업장을 방문했다. 이 사업장은 지난 여름에 필자가 현장을 다니며 부실시공 현장 40여 곳을 시정시킨 곳이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도착하니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상황에서 느닷없이 우리 앞을 막으며 나타난 사람 왈, "저… 제가 김 의원 학교 선배가 되고 이 곳 현장에 임원으로 오게 됐습니다. 잘 부탁하고… 언제 식사 한 번 하시죠." 그 사람 주변으로는 여러 직원들이 장갑과 음료수를 나른다고 정신이 없었다.
  
  "학교 선배와 감사가 무슨 상관이 있으며, 나한테 신경 쓸 시간 있으면 마을 주민들에게 따뜻한 위로 한마디나 잘하라"고 호통을 쳤다. 마을 코앞에 높이 56m짜리 교각이 놓이게 돼 이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들은 척도 안하던 시공사의 태도가 의원 앞에서는 이렇게 나약해 질 수 있나 싶었다.
  
  민간투자 사업은 경상남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SOC 사업의 대형 관급공사들이 민간투자 사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간투자 사업과 관련해 사업 분석을 통한 정확한 경영진단을 할 만한 전문가들이 공무원들 중에는 많지 않다. 땅 짚고 헤엄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의 논리에 쉽게 빠져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필자는 이 협약의 시정을 촉구했지만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변뿐이었다. 답답하기만 했다. 무사안일과 무지로 인한 '순간의 선택'이 현대판 봉이 김선달에게 30년짜리 특혜를 보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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