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활동의 꽃'이라 일컫는 행정사무감사는 그 해의 마지막 달에 열린다. 한 해 지방정부가 해 온 일들을 평가하는 자리다. 당연히 의원들도 긴장하게 되고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라 난감했다. TV를 통해 중계되는 다른 상임위의 국정감사를 곁눈질로 참고하는 정도였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당에서 파견한 지원단과 상임위별 관련 단체 담당자들과 함께 밤을 새며 준비했다. 아침에는 개인별 주요감사내용을 기자실에 발표하고 지원단은 감사 과정을 모니터한 후 보완하는 과정을 진행했다. 선거 때보다 더 긴장되고 잠자는 시간도 적다고들 하면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신나게 임했다. 지난해 감사는 강도가 예년보다 높고 너무 열심히들 한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특히 초선의원들이 후한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맥이 빠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질의를 할 때 잘못한 일은 시정을, 건의할 것은 검토를 요청한다. 그런데 대부분 해마다 지적되는 문제들의 되풀이다. 선배의원들은 "행감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고들 했다. 그래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나씩이라도 시정이 되겠지'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행정사무감사는 하루만 야단맞으면 되는 날"이란 얘기는 올해도 어김없이 필자의 귀에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울산시의회는 총 7일간 행감을 진행했는데 한 부서에 주어진 시간은 하루다. 규모가 작은 부서는 하루에 세 부서씩도 한다. 업무보고, 속기사를 위한 정회시간, 점심시간 등을 빼고 나면 주어진 시간은 길어봐야 4시간 전후다. 결국 그 시간만 넘기면 된다는 얘기다. 밤늦게까지 할 수도 있지만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의원들 간의 동의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어서 질의시간을 가지고 속상한 일이 많았다.
시간이 짧다보니 답변하는 모습도 생각보다 시원시원했었다. 문제의 소지가 많은 부서 책임자는 무조건 '동의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로 답변해서 오히려 질의한 의원이 할 말이 없어 간단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행감이 끝나자마자 바로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심의는 바로 전 감사와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행감 때도 "잘 부탁합니다", "짧게 해주세요"라며 부탁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농담처럼 얘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횟수는 미미했다. 그런데 예산심의에 들어가자 만나는 공무원마다 하급자든 상급자든 모두들 "잘 부탁합니다"며 거의 애원하듯 한다. 의원 기간 중 가장 큰소리 칠 수 있는 기간이 예산심의 기간이라는 농담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말이 '심의'이지 지방의원들에게 주어진 예산 심의의 권한은 하반기에 예산부서가 준비한 안을 의회가 삭감할 권한만 가지고 있어 정책적으로 조율을 한다든가 증액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행감무용론'의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 다 만들어놓은 예산안에 대한 심의가 행감이 있은 직후 바로 진행되니 행감에서 제기된 문제점이 예산에 반영되지 못한다. 이렇게 반복되니 행감 따로 예산 따로가 해마다 되풀이되면서 행감에서 야단치더라도 예산은 통과시켜달라는 부탁만 남는 것이었다.
막상 상임위 예산 심의에 들어가 보니 증삭감하는 것조차 만만치가 않았다. 이러저리 사람관계가 다 걸리고 꼭 필요한 일이라는 말에 마음 약해지고 어떤 예산을 어떤 의원이 삭감했는지 눈치봐야 하는 상황, 표를 얻어 올라온 의원들은 마음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필자는 상임위 예산안 계수조정을 하고 이틀 동안 몸살을 앓았다. 뻔히 보면서 혼자 우기다 삭감 못한 돈 때문이기도 했지만, 감사 때는 '잘 한다, 더 하라'며 응원을 보내주던 동료의원들이 예산 심의 때는 삭감할 게 어디 있느냐며 호통을 치는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감사 때 문제점이 지적했던 사안에 대해 예산이 더 증액돼서 넘어가는 것이 허탈하기도 했다. 온몸에 맥이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을 맛보았다.
그 다음으로 과정도 문제였다. 상임위별 예산심의 후 예결위원회를 통해 한 단계 더 심의를 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예결위는 상임위에서 삭감된 예산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난리였다. 눈꼽만큼씩 삭감한 예산에도 책임자가 있고 담당자가 있으며 관련 단체가 있었고 대상자가 있었다.
그 부서 책임자들이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찾아와서 "내 일이 없어진다"며 읍소하는 경우도 있었고 관련 단체 책임자들이 찾아와서 다시금 취지를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시도 때도 없는 협박성 전화와 방문 때문에 나중에는 전화도 받지 않고 방문도 잠궈 놓는 웃지 못 할 상황까지 발생했다.
그렇게 전쟁을 치르듯 예산심의 일정까지 마쳤다. 하지만 삭감된 예산을 다시 추경에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럼,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속을 썩였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불필요한 예산을 간신히 한 푼 두 푼 깎아 놓아도 이렇게 되살아나는데 말이다.
의원 개인의 노력 자체를 조롱하는 거대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건 어느 때는 관행이라는 이름을 달기도 하고 어느 때는 제도로 다가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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