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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戰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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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戰場)에서 온 편지

[김이석의 올드앤뉴] <아버지의 깃발> Vs <씬 레드 라인>

올해로 일흔 일곱이 된 노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노감독이라는 관습적인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하고 있다. 70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그의 작품 발표속도는 예전에 비해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감독이 발표하는 영화들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최고 작품은 늘 그가 다음에 만들 작품이라고 말했는데, <용서받지 못한 자>, <미스틱 리버>를 거쳐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리고 지난 해 연출한 <아버지의 깃발>을 보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배우로서 또 감독으로서 착실하게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성실한 창작자라면 테렌스 말릭은 은둔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973년도 영화 <황무지>로 데뷔한 이래 이제까지 그가 연출한 영화는 총 4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가 연출한 영화들은 평범한 과작 감독들이 결코 넘볼 수 없는 무게를 가지고 있다. 달변가가 유난히 많은 서양영화계에서 테렌스 말릭은 드물게 침묵의 가치를 아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깃발 ⓒ프레시안무비

2차대전 중 미군과 일본군간에 대량의 희생자를 낸 이오지마 전투를 소재로 한 <아버지의 깃발>은 전쟁에 관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전쟁영화는 아니다. 지금까지 이 감독이 연출한 대부분의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깃발>에서도 감독은 장르적인 관습을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영화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끌고 가는 노련함을 과시한다. 치열한 전장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미국 본토로 옮겨오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런 노련하면서도 신중한 행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가진 강력한 대중적 흡인력의 원인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가진 매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스트우드는 다만 조금 천천히 걷는다. 천천히 걸으며 장르가 버리고 갈 만한 순간들을 짐짓 무심하게 프레임에 담는다. (중략) 그러다 불현듯 멈춰 선다. 멈춰 서는 순간, 카메라는 무기력에 빠지고 피사체들은 체념하며 이야기는 장르의 쾌락을 넘어 운명의 심연과 기적처럼 마주한다."(씨네 21 N˚590) 이런 설명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웅이 되었다가 효용이 다한 후에 폐기처분 되어버린 인간들의 아이러니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인 <아버지의 깃발>에 더없이 적합한 설명이다. 그런데 허문영의 이런 설명은 테렌스 말릭의 전쟁영화 <씬 레드 라인>에 대한 비평이기도 하다.
씬 레드 라인 ⓒ프레시안무비

<씬 레드 라인>은 테렌스 말릭이 1979년 칸느영화제 감독상 수상작품인 <천국의 나날들 Days of Heaven> 이후 20년만에 발표한 영화다. 할리우드의 철학자로 불리는 테렌스 말릭은 태평양전쟁 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진 과달카날 전투를 그린 이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랬던 것처럼 일반적인 전쟁영화의 관습을 슬쩍 비껴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야기의 중심을 전장(戰場)에서 미국 본토로 옮겨버림으로써 평범한 전쟁영화가 되기를 거부했다면, <씬 레드 라인>은 전장에 좀더 오래 머무르는 대신 영화의 초점을 전장에 서있는 병사들의 심리묘사에 할애함으로써 장르적 관습을 비껴가고 있다. <씬 레드 라인>은 전쟁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웅적인 주인공이나 스펙터클한 전투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중심이 되는 줄거리마저도 없다. 테렌스 말릭은 전쟁에 대한 객관적 서술자가 되기보다는 사선에서 총을 들고 적과 대치하고 있는 개별 병사들의 입장에서 전쟁을 그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랬던 것처럼 테렌스 말릭의 카메라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멈춰선다. 치열한 전투의 순간에 감독은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대신 자기 곁에 서 있는 병사의 얼굴을 향해 돌아선다. 그리고 적의 기관총이 난사되는 고지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이 무성한 풀잎을 뉘었다가 병사들의 곁을 스쳐갈 때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본능적인 공포와 절망을 포착한다. 테렌스 말릭의 영화가 마치 죽은 병사의 전투복 윗주머니에서 찾아낸 일기를 읽는 것 같은 생생함을 주는 것은 이렇게 문득 멈춰서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는 감독의 사려깊은 시선 덕분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테렌스 말릭. 이 두 감독은 화려한 스펙터클로 대변되는 할리우드 영화에 정신적 깊이를 더해주는 감독들이다. 모더니즘의 산물인 고급 예술에 대한 강박증에서 자유롭지 못한 유럽의 예술영화와는 달리 이 두 감독의 영화는 대중예술로서 영화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삶으로부터 길어낸 성찰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약간 쉰 듯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목소리가 그렇듯이, 긴 침묵을 반복하는 테렌스 말릭의 사색적 태도가 그렇듯이 이 두 감독의 영화에 담긴 목소리는 결코 강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을 드러냄에 있어서 망설이거나 주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의 영화는 더 이상 단호할 수 없는 신념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각각 칠십 대와 육십 대에 접어든 이 두 성찰자가 솔직함과 단호함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염려다. 이오지마와 과달카날은 본토에서 떨어진 섬이지만,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은 결코 본토에 살고 있는 자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아버지의 깃발>과 <씬 레드 라인>은 본토인들의 삶을 염려하는 노감독들의 근심어린 편지이자 기록이다.
덧붙임: 잘 알려진 것처럼 <아버지의 깃발>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라는 또 한편의 영화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아버지의 깃발>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완전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절반의 영화만으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개봉되어 이 불완전한 이야기가 완결될 수 있기를 나 역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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