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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시민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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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시민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고민했다"

<답글>비판글에 100% 동의…"일부 언론이 왜곡 보도"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활동가는 지난 7일 <프레시안>에 안진걸 성공회대 'NGO와 사회운동' 강사(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가 쓴 '소통과 연대 넘치는 집회·시위를 위하여'라는 글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시민단체들의 집회·시위가 국민들에게 감동이 아니라 짜증을 주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안 강사의 주장에 대해 박진 활동가는 "교통 불편보다 정말 참기 힘든 불편은 한 달 일하고 80만 원도 못 받는 가난한 삶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는 사실"이라면서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으로서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강조했다.

박진 활동가의 글에 안진걸 강사가 답급을 보내왔다. 박진 활동가의 주장에 "100% 동의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 이 글은 재반론 성격의 글이 아니라 자신이 왜 그런 글을 쓰게 됐는지 경위를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해명성 글이다. 안 강사는 이 글에서 대다수의 언론이 자신의 주장을 왜곡시켜 불필요한 오해를 낳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애초 논란이 촉발된 안 강사의
글 전문은 시민단체연대회의 사이트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편집자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께서 제가 참여사회연구소의 학술지 <시민과 세계>에 기고한 '소통과 연대 넘치는 집회·시위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사회운동의 집회·시위에 대한 내부적 성찰' 글에 대한 절절한 비판을 최근 <프레시안>에 올렸습니다.

제가 쓴 글에 대한 비판이니 가슴 뜨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박진 활동가의 주장에 100% 동의합니다. 동의해놓고는 꼭 단서를 달아 사실상 반박하는 경우들도 있는데, 정말 100% 동의합니다. 박진 활동가의 주장은 민주사회에서 집회·시위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겐 얼마나 소중한 권리인지를, 그래서 우리 사회가 왜 집회·시위와 집회·시위로 인한 불편과 비용까지도 보장해야 하는지를 훌륭하게 기술했습니다. 또한 '교통체증으로 인한 불편의 무게'와 '길을 막고서라도 생존과 불의와 고통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그 깊고 깊은 절박함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지적도 가슴에 무척이나 와 닿았습니다.

저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글에도 나온 것처럼, 집회·시위는 민주사회의 절대적 기본권 중의 하나로 억울하고 부당하고 답답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회적 수단입니다. 그래서 집회·시위에겐 절대 자유가 필요하며, 박진 활동가의 주장처럼 사실 집회·시위의 권리는 원래 신고도 필요 없는 자연적 권리인데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 '신고 안하면 처벌 한다'고 규정해놓은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도로상의 집회와 행진의 경우에만 일정한 사전 고지와 현장 보호 절차를 거치면 되겠죠.) 현재 집회·시위를 하려고 하는 경우, 그 법률상의 신고제 하에서도 경찰이 임의로 신고를 수리하지 않고,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집회에 대한 허가제'로 사실상 운영하고 있으니 이는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또 집회·시위의 자유에는 집회·시위를 개최할 자유뿐만 아니라 '집회·시위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의 자유'까지 포함되는 것이기에 원칙적으로 어떻게 집회·시위를 하든 그것은 민주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보장해야할 권리이고, 여기에 다소 불편과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시민의 이해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길을 막고서라도 절박하게 뭔가를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을 보장하지 않거나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큰 비용과 고통, 극단적 선택을 불러오게 마련입니다. 또 사실 도로 행진 같은 경우도 대부분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박진 활동가의 글이 한 포털사이트에 떴더니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많은 '악플'이 달렸습니다. 그 악플을 단 네티즌들에게 호소합니다. 몇몇 언론에 보도된 집회·시위의 모습으로 부정적 인식을 바로 가질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네티즌들이 생각하는 짜증스러운 그 집회·시위가 사실은 그들에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야기해야 하는 절박함 그 자체였던 점도 헤아려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길을 막고서라도 집회를 해야 할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다른 이들의 집회·시위를 비난하지만, 자신들도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집회·시위를 합니다. 거기에 또 다른 이의 비난이 쏟아진다면, 그것은 연대의 증진과 국민주권 발현의 선순환이 아니라 고립과 권력지배의 악순환이 반복될 뿐입니다.

민주사회에서 때로는 '시끄럽고' '불편한' 집회·시위를 적극 보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행위를 통해 민주사회의 절대원칙인 '국민주권'이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대의제는 절대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시민들의 직접 행동을 보장함으로써 한 사회의 균형 잡힌 공론 형성을 보장하는 것이죠. 더욱이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공론을 제대로 형성해주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나 소수자, 엄청난 권력을 지닌 정부나 재벌의 특정 정책을 반대하는 이들의 경우, '집회·시위'가 아니면, 그것도 때로는 '격하게'하지 않으면, 그들의 주장을 전달할 길이 거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제 박진 활동가의 글에 100% 동의하는데, 어떻게 모순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 제 글이 나왔는지 해명하겠습니다. 박진 활동가는 '서 있는 위치를 점검하라'는 중요한 충고를 해주셨는데, 그 충고는 충고대로 접수하면서 다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서 있는 위치가 서로 다른 점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현장의 치열한 활동가이고 인권운동가이지만 저는 그렇지 못한 면이 있으니까 글의 관점과 정서가 충분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 제가 왜 그런 글을 썼느냐? 감히 '위치' 때문에 글이 달라진 게 아니고 글을 쓴 '목적' 때문에 달라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전 객관자도, 비평자도 아닙니다만, 그러나 이 글을 쓸 때만큼은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은 사실입니다. 애초 이 글을 청탁받을 때부터 "보통의 시민들이 사회운동의 집회·시위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점을 정리해보고, 거기에 대해 범 사회운동 영역 차원에서 깊이 성찰해보는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 글을 쓰게 됐는지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원래 이 글은 반 FTA 집회 현장에 나갔다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관계자를 만나면서 시작하게 된 글입니다. <시민과 세계>에서 건국대 한상희 교수에게는 '집회·시위의 본질적 자유'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청탁을 하고, 그 글에 짝을 맞춰 '소통과 연대 넘치는 집회·시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써달라고 청탁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일종의 '비평자 역'을 맡게 된 측면이 있었씁니다.

그래서 이왕 쓰는 것, 보통의 시민들이나 제가 자주 만나는 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 또 여러 활동가들이 스스로 비평했던 이야기들을 다 모아서 정리를 한 것이 이번 글입니다. 더 나은 집회와 시위를 위해 국민들의 거리감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좁혀볼 것지 사회운동이 전면적으로 점검·토의해보자는 차원에서 쓴 글입니다. 왜냐면 활동가들이 그렇게 집회·시위를 이해할 것을 주장함에도 현실적으로 이해보다는 비판하는 시민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시민들이 '왜 비판하는지 살펴보고, 우리는 그들의 비판에 어떻게 응답하고 소통하는 것이 좋겠는지'를 주로 '기술적'으로 고민한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몇몇 언론이 제 글을 자극적으로 기사화하면서 일이 좀 커져버렸습니다. 사실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제가 쓰지도 않은 말까지 직접 인용해 소개해 무척이나 곤란했습니다.

박진 활동가는 "몇 가지 좋은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교통체증'문제로 협소화시킨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고, 그 지적은 정말 타당하지만, 역시 이 글은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짜증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검토하는 글이라서, 그렇다면 제일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언론의 잘못된 여론몰이 때문일지라도) '교통체증'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통체증에 대한 시민들의 짜증이 대단한 것도 엄연한 사실인 듯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기초해 대안으로 '원칙적으로는 도로가 아닌 곳에서 집회를 하고, 행진할 때에도 차선을 유연하게 사용하자'는 조금은 과도한 대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집회·시위의 절대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과도하지만, 현재 시민들의 짜증에 우리가 이렇게라도 대답하는 것이 어떤지를 고민했던 것입니다. 진실로 도로 상에서 집회나 행진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다만 사회운동에서 집회·시위를 신고할 때 공원과 도로 둘 다 가능하다면 공원에서 하는 게 지금의 시민들의 반응 하에서는 더 나은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자는 것입니다. 또 교통체증의 상당수는 사실 경찰의 엄청난 장비와 과잉 대응에서 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아예 출동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지적도 덧붙습니다. 집회·시위를 논할 때 '교통체증' 문제가 본질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만, 제 글이 보통의 시민들이 짜증나는 면부터 성찰하기 위한 목적이었기에 그것부터 기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 집회장에서의 발생하는 폭력의 경우에도 대부분은 경찰의 무리한 대응에서 오는 것이 사실이라는 지적과 함께, '핫라인'으로 우발적 폭력을 통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지금도 웬만한 집회는 집회 시작 전, 중간, 후에 이런 '핫라인'을 가동해 무리 없이 집회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평화 집회를 위한 양해각서(MOU) 같은 것은 절대로 맺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우발적 폭력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긴급 연락을 갖추는 게 좋지 않겠냐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뿐입니다.

그 외에도 집회·시위에서 성찰할 점을 여러가지 썼습니다. 제가 글에도 과도하거나 잘못된 지적이나 대안도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민주사회에서 절대적이고도 너무나도 소중한 기본권인 '집회·시위'를 통해 더 많은 시민들과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그런 사회운동의 집회·시위를 만들어가는 데 조그만 계기라도 됐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지금도 있습니다.

이 정도로 제 답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제 글이 제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언론에 보도됐고, 그 과정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해 노력해온 분들에게 실망이 되고 상처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또 경찰의 과잉 대응을 감시해온 인권단체 분들께도 실망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인권활동가들과 최근 FTA 반대 집회를 경찰의 탄압 속에서도 힘겹게 진행한 분들께 정말 미안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확대하고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신장시켜나가는 데 동참하는 것으로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10일 서울 시청 앞 6.10항쟁 계승대회에 참여했던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적은 수의 시민들이 참여했더군요. 제가 최근 월간 <참여사회>에 기고한 글의 주장처럼 "6월 항쟁이 제대로 계승되지 않고 있다"는 것의 실증인 것 같아 좀 서늘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이 6월 항쟁을 70% 정도가 제대로 모른다는 설문조사까지 보니 마음이 더 아파왔습니다. 집회·시위 등 자연법·헌법적 기본권,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 그리고 그를 위한 한국 현대사의 피눈물 나는 집회·시위와 투쟁의 역사가 미래세대에 잘 교육되고 계승됐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 전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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