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연일 이랜드, 삼성SDI 하청업체 하이비트, 효정재활병원에서 해고된 여성노동자들이 길거리 농성을 벌이고 있다. 남성중심 도시 울산, 강성노동조합이 버티고 있다는 이 곳, 대기업 제조업 중심도시 이 곳에서 그동안은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이 지금 전면에 떠올랐다.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이 투쟁의 전면에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주축인 삼성SDI에서 외주화된 하이비트 노동자들이 회사의 폐업으로 1000여 명이 일터를 나오게 되자 싸우고 있다. 이들은 6개월째 삼성SDI가 자신들의 문제를 책임져 달라며 회사 앞에서 싸우다 급기야 울산시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삼성과 '투자양해각서'란 것을 쓸 때 고용을 늘리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울산시가 이 문제를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다. 울산시와 경찰은 천막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아 연일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얇은 비닐로 간신히 비를 피한 채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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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에 위치한 홈에버 앞에는 이랜드일반노조 홈에버 울산분회 조합원들이 연일 부분 파업과 집회를 벌이다 매장 입구에 천막을 치고 노숙하고 있다. 30대 후반에서 50대까지의 여성들이 주 구성원이다. 원래 자신들이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길 간절하게 원하며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보낸다.
요구조건에는 '화장실을 개방하라', '사무용품이나 장갑을 지급하라', '모니터링 제도를 없애라'와 같은 이해 못 할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서비스업종이다 보니 늘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손님을 맞아야 하고 자리를 단 몇 분이라도 비울 수가 없고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해서 다리가 퉁퉁 붓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대부분이 주부들이지만 이 중에는 한 달 평균 80만 원 정도를 받아오던 그 월급조차 급한 여성 가장들도 있다.
울산시민의 식수로 쓰이는 울주군의 대곡댐 밑에 있는 '효정재활병원'의 50대 간병사들도 싸우고 있다. 이들은 해고에 맞서 천막농성을 몇달째 벌이다 3명의 조합원이 병원 로비에서 3주째 점거 농성 중에 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이들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법대로 하자던 병원 측은 마지막 한명까지 판결이 나오면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50대의 여성들은 취직하기가 힘들다. 그러다보니 간병사나 청소일들을 주로 하게 된다. 이 재활병원에서는 24시간 교대 근무, 40명의 알콜 중독자, 치매환자, 장애인들을 두 명의 간병사가 맡아 먹이고, 씻기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감정노동까지 해 왔는데 100만 원 남짓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적잖은 국가예산을 가져다 쓰는 이 시설은 작년 행정사무감사에서 몇 가지 심각한 문제들이 지적됐다. 하지만 부산시에 등록되어 있어 실질적인 예산 배분과 결산, 감사, 평가 등 책임은 부산시에 있다.
여성은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노동력?
나는 이들의 투쟁을 함께 하며 우리 여성들의 생애주기를 보는 듯 해 화가 치민다.
그동안 여성계에서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일자리에 주로 있는 우리 여성들을 가장 큰 피해자로 만들 것이란 경고를 해 왔다. 뿐만 아니라 그 피해는 가장 약한 여성들을 넘어 남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란 점도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런데 지금 너무도 빨리 현실 속에 펼쳐져 버렸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비정규직보호법이란 것을 만들기 전에도 늘 제기해 왔었던 문제다.
여성노동은 우리 사회를 성장시키는 중심노동이 아닌 주변적이고 대기인력 정도로 위치지어져 있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자를 수 있고 싼 가격으로 필요할 때만 쓸 수 있다는 의식이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문화로도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인 여성들, 비혼(非婚) 여성들은 힘든 조건에서 일할 수 밖에 없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로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저임금 구조로 성장해 온 우리 사회는 이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이들은 여성 스스로 가졌던 나약함을 딛고 '당당히 일하는 사람, 나도 노동자라는 인식, 이곳에서 일할 수 있는 자신의 권리를 지킨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지방의원으로서 투쟁 현장에서 함께 하며 때론 할 수 있는 게 너무 한정적이어서 속상할 때도 많다. 하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하나 길을 찾으며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 여성노동자들을 보며 나는 혹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쉽게 포기하는 경우는 없었는지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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