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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그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기고]허세욱 열사 1주기를 맞아

오는 15일은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를 외치며 분신한 택시 운전사 허세욱 열사의 1주기이다. 그 사이 계절이 네 차례 지났고 정권이 바뀌었다. 그런데 서로를 향해 '다르다'고 강조한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를 놓고는 똑같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망국적인 한미 FTA를 폐지하라"던 그의 마지막 외침에도 한미 FTA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 한국 사회에 무슨 말을 던질까? 오는 15일 오후 12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는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추도식이 열린다. 같은 날 오후 6시 그의 일터였던 한독운수 안에는 그의 기념관이 개소식을 갖는다.

1년이 흐른 오늘, 그의 외침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생전에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성찬 전 관악청년회 회장이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 오는 15일은 한미 FTA 저지를 외치며 분신한 허세욱 열사의 1주기다. 1년이 흐른 오늘, 그의 외침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프레시안

언제 그를 처음 만났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내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그에 대한 기억은 어느 날 밤 11시, 그가 소주와 간단한 안주를 손에 들고 청년회 사무실 문을 두드린 순간이다. 그이의 사업장이던 한독운수와 관악청년회 사무실은 길 하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교대를 해준 뒤 불 켜진 청년회 사무실을 찾아온 것이다.

하필이면 그 날 사무실에는 그이를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그날 내 손에 소주와 안주만을 전해주곤 다시 돌아섰었다. 그 후 많은 투쟁과 일상 속에서 소주한잔 하자고 권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그렇게 한스러운 것은 소주를 내려놓고 가시던 그날의 모습이 잊혀 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름은 허세욱 열사다.

그가 분신하시기 이틀 전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총궐기 투쟁이 열리던 경복궁역 앞.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날, 청년회 회원들에게 손수 구입하신 우비를 건네던 모습. 오늘은 뒤풀이 같이하자고 권했을 때 농성장에 볼일이 있다고 광화문 열린공원으로 총총히 걸어가시던 그 마지막 모습이 못내 아쉽다. 그 모습이 그이를 본 마지막 모습니다.

청년회에서는 그이를 '세욱이 형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를 한독운수 통일부장님이라고 호칭했다. 내가 그를 그렇게 부르게 된 사연은 2005년으로 돌아간다. 6.15공동선언실천 공동위원회라는 이름의 남북해외 단체가 마들어질 때, 내가 있는 지역에서도 지역위원회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나는 6.15관악본부 집행위원장이었다. 그 직함을 무기 삼아 한독운수에 찾아가서 "집행위원을 한 분 추천해 달라"고 노조 위원장님께 요청했었다. 위원장님이 흔쾌히 추천한 이가 바로 그이였다. 그때부터 그이는 '한독운수 통일부장'이 됐다.

자신이 정말 사랑하고 오히려 존경하는 듯 느껴졌던 노조에서 '통일부장'이라는 역할을 맡은 후 그이는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사실 택시 운전하면서 회의에 참석하기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이는 언제나 제시간에 맞춰서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 내용은 잘 갈무리해서 한독운수에 전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을 아껴야 했고, 비운 시간을 메우기 위해 더 열심히 악셀을 밟아야 했으리라.

그이는 언제나 묵묵히 부지런했다. 행사 포스터를 챙겨가 새벽에 혼자 붙이기도 했고, '현수막이 이렇게 한 곳에 몰려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다'며 혼자서 현수막을 옮겨 달기도 했다. 평택에서도 그를 볼 수 있었고, 국방부 앞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었으며, 미대사관 앞에서도 어느새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런데 벌써 1년이라고 했다. 그의 전화번호는 아직도 내 휴대폰 안에 남아 있다. 혹시나 잊혀 질까 지우지 못한 것이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지금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혹 망각의 달콤함에 유혹돼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목소리가 그립다.

'세욱이 형님, 오늘 1년 만에 찾아간 모란공원에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더군요. 형님을 기억하는 관악의 사회단체 사람들이 도착하니 흐린 날씨가 게이고 햇살이 내리 쬐이는 게 형님이 반기시는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이승에서 못한 술 한 잔 따라 드리니 닿을 수 없는 곳이지만,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함께 해주세요. 편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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