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최선주의자일 뿐이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최선주의자일 뿐이다."

[뉴스메이커] 배창호 감독 인터뷰

배창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착각을 해도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배창호 감독이 '한 시절 잘나갔던 옛날' 감독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한 이후 2004년 <길>에 이르기 까지 그는 2~3년에 한편씩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온, 철저히 '현재진행형' 감독이다. 그가 지금껏 쌓아 온 17편의 공든 탑은 임권택 감독을 제외하고 배창호가 중견감독 가운데 계속해서 현실과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가는 거의 유일한 작가임을 보여준다. 다만 그가 일부 젊은 관객들에게 '옛날' 감독으로 인식되고 있는 건 1990년대 중반 이후 그가 발표하는 작품들이 독립영화 방식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가장 젊고 진보적인 영화만들기를 해온 중견감독이 오히려 그때문에 젊은 관객들과 거리가 생기게 됐던 셈이다. 이건 배창호 감독의 탓인가, 아니면 관객들의 탓인가. 그 둘다가 아니면 잘못된 시대의 탓인가. 배창호의 영화 17편 전편이 상영되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배창호 특별전'에서 그를 만났다.
배창호 감독 ⓒ프레시안무비
- 자신의 작품 17편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이한 경험을 하시게 됐다. "그렇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내 작품들이지만 한꺼번에 다시 보는 건 나도 처음이다. 이 특별전 얘기는 지난 해부터 나왔던 것이다. 처음엔 반대했었다." - 왜? "글쎄? 회고전 느낌도 나고...뒤를 돌아보는 얘기는 아직 할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 17편 가운데 대표작은 뭐냐고 묻는 질문이 많았겠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런 질문을 받았다. 모두가 다 대표작이다. 어느 것 하나만을 꼬집어 내기가 어렵다. 그건 감독이라면 누구나 같은 심정일 것이다." - 가장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라면? "그것도 모두 다. 작품마다 아 저때는 저게 모자랐구나, 왜 내가 저때 저런 생각밖에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다 다시 찍고 싶다.(웃음) 예전에, 고 신상옥 감독님께서는 영상자료원에서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걸 보다가 영사실에 뛰어올라가 필름을 뚝뚝 잘라버리곤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영화란, 당시에 감독이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모든 영화가 제각각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생각 같아서야 다 다시 찍고싶은 건 그때문인데 알다시피 영화란 그럴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최선주의자다. 그 당시에 나는 최선을 다해서 찍었고, 그걸로 된 거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 작품 연보를 보고 있으면 감독의 영화인생이 중간중간 다른 방향으로 턴을 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예컨대 <황진이>를 보고 있으면 아 이때부터 배창호 감독이 바뀌기 시작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 직전에 만든 <고래사냥 2>때문이다. 솔직히 그 작품은 시스템과 돈에 밀려서 만든 작품이다. 딱히 예술적 영감이나 욕심이 있는 상태에서 만든 게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기획영화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이게 아닌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영화를 계속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새로운 걸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다. 영화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결과가 <황진이>였다. - 17편의 작품을 단락으로 나눈다면? "내 영화들들 시기별로 나눈다면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부터 <고래사냥2>까지, <황진이>부터 <천국의 계단까지>, 그리고 <젊은 남자> 이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아까 얘기한 대로 <황진이>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 영화에 기독교적 영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고 평가들을 하지만 기독교적 세계관은 그 이전부터 반복해서 일관되게 쓰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김보연은 자신도 어렵고 돈이 필요한데도 가게를 판 돈을 자기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자기 남편이 상처를 준 여자에게 모두 주는 식이다. 다만 <황진이> 이전 영화들에서는 기독교적 사랑이 영화적으로 정제되지 못한 채 드러난 것 같다." - <안녕하세요 하나님>과 <기쁜 우리 젊은 날>부터 세상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순화시키려는 종교적 열망을 강하게 보이는 것 같다. "오히려 <젊은 남자> 이후 일상에 더 밀착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보기에 따라 그 작품들을 그렇게 볼 수 있겠다. 결혼 이후 내가 일상을 잘 알게 돼서이다. <기쁜 우리 젊은 날>도 내 경험이 일부 반영된 건 사실이지만 한계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나님>은 일종의 성인동화로 사랑을 리얼리티가 아닌 비유로써 이야기한 것이다. <황진이>도 관념적인 부분이 좀 강했고. 당신의 얘기에 맞는 영화는 오히려 <정>과 <길>이다. 진짜 삶으로부터 나온 영화라고 할까 아무튼 그렇다."
기쁜 우리 젊은 날
-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배 감독의 영화는 대중적 흥행과는 조금씩 멀어졌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 그 이후 발표한 <기쁜 우리 젊은 날>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천국의 계단>도 흥행에 실패했다는 둥 얘기가 나왔지만 당시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올랐을 정도다. 어쩌면 <황진이> 이후,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화와 대중영화 사이를 오갔던 것 같다. 감독은 그런 것이니까. 자기가 하고싶은 영화만을 찍을 수도 없고 찍어서도 안된다." - <러브 스토리>와 <정><길>같은 철저한 인디영화 사이에 <흑수선>이 있는 것은 그때문인가. "맞다. 앞의 두 작품을 하고 나니 대중영화를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마치 독립영화감독이 된 것처럼 규정받는 것도 싫었고.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내 영화인생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 한 영화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대중적으로는 실패한다. 아이러니다. "깊이의 문제다. 영화와 같은 대중예술은 너무 깊어서도 너무 얕아서도 안된다. 한발작 앞서는 것보다 반발짝 앞서는 게 중요하다. 근데 그게 어렵다." - 1980년대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였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흥행감독으로 회자됐지만 사실은 당시의 한국영화계에 뉴웨이브를 이끈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옳다. "1980년대에는 새로운 영화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강햇다. 호스테스 영화, 문예영화 등등만이 넘쳐나던 때였으니까. 내 영화가 그런 대중의 욕구와 잘 맞아떨어졌던 셈이다. 운도 좋았고." - <흑수선> 이후 <길>을 만들기까지 2000년대 들어서는 공백 기간이 다소 길게 느껴진다. "실제로 공백은 <정>을 만든 이후 <흑수선>을 만들기까지의 사이가 가장 길었다. 영화를 직접 배급한다고 뛰어 다녔고 우디네이 영화제 등에 초청되는 등 영화 외적인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글쎄? 공백이라...나는 그냥, 꾸준히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 교수직을 지난 해 그만둔 것으로 안다. 현장 체질이라 가르치는 일이 답답했던 건가? "물론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다. 고민도 많이 했지만, 그냥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르치는 일이 답답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그것도 서로 의사소통하는 것 아닌가. 젊은 아이들이 요즘 영화를 보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있고, 내 영화를 다시 편집해 보면서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볼 수도 있었으니까. 그냥 내 성격이 그런 것같다." - 지금 특별전에서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꿈>이나 <황진이> 같은 경우 예전에도 이런 깊이있는 영화가 있었구나, 라고 반응하는 것 같다. 인간의 깊이있고 독특한 세계를 다루는 영화가 당시에는 별로 없었으니까. <고래사냥>이나 <깊고푸른 밤>의 경우는 예전 영화들도 재미있고 힘이 있구나, 라고 반응하는 듯하다."
깊고 푸른 밤
- <깊고 푸른 밤>에서 안성기가 너무나 섹시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젊은 남자>와 <흑수선>에서도 이정재는 무척 섹시하다. 여배우들뿐만 아니라 남자배우들도 그토록 매력을 최대한 끌어내 화면에 구현해내는 비결은 대체 무엇인가? 이정재도 직접 발굴했지 않나? "<깊고 푸른 밤>의 안성기는, 나도 잊고 있었던 모습이 있더라. 맞다, 저 때 그랬지 싶더라. 비결이라고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고, 호흡이 잘 맞는 배우들이어서 그렇다. 일단 배우 선택을 잘 한 뒤에 의사소통을 잘 하고 편한 자리를 깔아주면 된다. 의상, 분장 같은 걸 잘 하고, 캐릭터만 잘 생각해주면 되는 거다. 이정재는 내가 발굴했다기보다 그 당시에 이미 그가 그런 매력을 갖고 있었다. <젊은 남자>에서도 일일이 지도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나부터가 이정재가 걷고 뛰는 모습을 좋아한다. 매우 역동적이고, 말이 뛰는 것 같은 힘찬 느낌이 있지 않는가? 안성기의 경우도 그가 걷는 모습, 그 고독한 모습을 내가 좋아한다. <깊고 푸른 밤>도 그렇고 <꼬방동네 사람들>에서도 그렇고, 그가 말없이 걷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도시적인 우수와 고독감이 좋다." - 17편이나 작품을 만들어온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작품 하나하나를 고를 때마다 아주 신중하게 선택했다. 영화감독은 자신의 삶이 영화로 대변되는 것이니까. 잘못된 선택도 있었지만, 그 선택을 할 때만큼은 신중을 기했다. <꼬방동네 사람들>을 끝내고 <철인들>을 하기 전, 경제적으로 힘들 때였지만 모든 제안을 다 거절했다. <철인들>을 선택한 건 흥행의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인들>까지 성공하고 대종상도 받고 하자 당시 한국에 있던 영화제작사 20군데 모두한테서 연출 제안이 왔다. 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적도의 꽃> 하나에만 매달렸다. <고래사냥 2>를 제외하고는 당장 돈이 필요하건 말건 모든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집사람이 증인이다. 빨리 계약해서 살림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건만 저러기도 참 쉽지 않지, 싶었을 거다." - 연기도 점점 느시는 것 같다. <길>에서의 연기는 <러브스토리>와는 또 다르던데. "연기자로는 안 봐줬으면 좋겠는걸. 자기 영화의 진정성 때문에 나왔다고 봐주면 좋을 뿐, 연기자 배창호라고 나올 때는 그리 반갑지는 않다. 앞으로 별로 할 마음도 없고 내 본업도 아니다. 대학 때 연기를 한 경험이 있고 한때 연기자에 대한 호기심도 있긴 했지만 일찍 접었다. 연기는 앞으로도 전혀 생각이 없다. 지금은 연기 잘 하는 젊은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길>은 캐스팅하기로 했던 배우가 막판에 스케줄이 어긋나면서 대타를 찾던 중에 아무래도 그 캐릭터를 내가 가장 깊이있게 이해하니까 싶어서 출연했던 거다. 그게 대중적인 상업영화로 보이지도 않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연기를 가지고 자꾸 칭찬을 들으면 민망하다. 그만하자.(웃음)"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