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에게 유리한 대법원 판결을 받고도 속을 썩이는 노동자들이 있다. 현대미포조선 사내 하청업체인 용인기업 노동자들 얘기다. 업체 폐업으로 2003년 해고된 이후, 6년 가까운 시간을 기다린 끝에 이들은 지난 7월 대법원으로부터 '현대미포조선이 실질적 사용자'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매서운 칼바람 속 1인 시위 등을 벌이고 있다. 회사가 이들을 고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을 받고도 일터로 돌아갈 수 없는 한 노동자가 현대미포조선의 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에게 공개 편지를 썼다. 필자의 요청으로 이름은 가명으로 한다. <편집자> |
정몽준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몽준 의원이 소유하고 있는 현대미포조선에서 25년간 선박기계를 수리해왔던 노동자입니다. 환갑을 눈앞에 둔 늙은 노동자가 멀리 울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언제 의원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벌써 30년 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있던 1979년 5월 1일 저는 스물 넷 젊은 나이에 현대미포조선에 들어갔습니다. 선박엔진 열교환기를 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오바로드에 걸리면 연장에 철야근무까지 해야 했지만 한 푼이라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내와 딸, 아들과 함께 우리 네 식구는 소박하지만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2003년 1월까지는 말입니다.
2003년 2월 1일이 되기 전까지 제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용인기업이라는 사내하청이었지만 정규직과 똑같은 월급, 상여금, 학자금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1월 31일 용인기업은 업체를 폐업했고, 저와 동료 30명은 모두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처음 해고를 당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청춘을 바쳐 25년을 일했던 직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건 경제적 고통이었습니다. 일용직으로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고 해도 신체검사에 떨어지고, 결격사유가 있다고 안 받아주고, 나이가 많다고 쓰질 않았습니다.
| ▲처음 해고를 당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청춘을 바쳐 25년을 일했던 직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건 경제적 고통이었습니다. ⓒ프레시안 |
해고생활 6년은 온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해고 투쟁을 하느라 건강하던 제 몸뚱아리도 엉망이 되었습니다. 앞니가 네 개나 빠졌지만 해 넣을 돈이 없었습니다. 퇴직금은 바닥이 났고, 집도 담보로 잡혔습니다.
허리가 좋지 않았던 아내는 저의 해고생활로 인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 점점 악화됐습니다. 이제는 집안일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애비가 해고를 당한 상태에서 아이들이 나섰습니다. 아들은 학교를 다니다 아빠가 해고를 당하자 군대에 들어갔고, 제대한 후에도 복직하지 못하자 학교를 휴학하고, 일용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태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딸아이입니다. 딸아이는 해고당한 아빠를 대신해 생계를 돕기 위해 일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리를 비롯해 3도 1/3 정도의 화상을 입고 1년 동안 입원치료를 받으면서 무려 여섯 번의 피부이식수술을 했습니다. 치료비만 2억 원이 들었는데 오는 12월에 또 다시 수술을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자책감에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그렇게 지옥 같은 5년 6개월의 세월이 흘렀고, 지난 7월 10일 대법원에서 우리는 용인기업 직원이 아니라 현대미포조선 직원이라는 판결이 났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인간성마저 파탄난 후에 5년 6개월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상식적인 판결인데 말입니다.
저는 그 날로 현대미포조선에서 저희에게 잘못했다고, 회사로 돌아오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현대미포조선은 부산고등법원에서 다시 법정 다툼을 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를 해고해 6년 동안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회사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지난 11월 9일 서울로 올라와 국회와 한나라당, 동작구의 정몽준 의원 사무실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온 종일 시위를 하다 밤 12시 영등포에 있는 금속노조 건물의 차가운 바닥에 늙은 몸뚱이를 뉘이면 돌이키기 싫은 옛일들이 떠오릅니다.
한나라당 최고의원이신 정몽준 의원님, 대통령이 되시겠다는 정몽준 의원님, 이 일은 오래 끌 일이 아닙니다. 대법원도 우리를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라고 했습니다. 정몽준 의원님, 어디에 계십니까?
11월 24일
현대미포조선(용인기업) 해고노동자 김영수 드림
| ▲한나라당 최고의원이신 정몽준 의원님, 대통령이 되시겠다는 정몽준 의원님, 이 일은 오래 끌 일이 아닙니다. 대법원도 우리를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라고 했습니다. 정몽준 의원님, 어디에 계십니까?ⓒ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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