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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뱀파이어를 좋아해!

[띠동갑 여자둘의 난상수다]<3>우리를 유혹하는 마성의 뱀파이어들

제목만큼이나 얼굴 빨개지는 <트와일라잇>


▲ 여성 취향의 판타지와 뱀파이어물이 만났다, <트와일라잇>

N : 으악, 닭살! 으악, 민망! 이 영화 진짜 민망하게 웃기네요.

S : 너무 뿜겨서 죽는 줄 알았어요. 아악, 민망해.

N : 이건 뭐, 완전히 순정만화나 하이틴 로맨스의 클리셰란 클리셰는 다 모아놨더군요. 전 일단 그 나쁜 남자 클리셰 같은 대사부터 너무 웃겼어요. "난 너와 가까이 할 수 없어"래. 푸하하

S : 에드워드가 처음 벨라와 접촉하는 장면에서 에드워드 등 뒤로 천사처럼 흰 날개를 배치해놓은 거 보셨죠? 저 그거 보고 쓰러졌는데 나중에 태양빛에 반사된 피부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지경까지 가니 아... 저는 그냥 항복을 외쳤어요.

N : 그 장면에서 웃은 게 우리들뿐이 아니더라구요. 다 웃던데? 감독이 아주 대놓고 노린 티가 나는 게. 근데 영화가 되게 섹시했어요. 벨라랑 에드워드를 훓는 카메라의 시선이 무척 비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키스씬에서 카메라가 흔들리는 건 마치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주잖아요.

S : 감독이 여자죠? 그럴 것 같더라. 무슨 키스신이 할리퀸 소설의 베드씬쯤 되던데요. 그 '너를 사랑하지만 난 자제하지 못할 것 같아'라는 설정부터가 이미. 아 저 잠깐 초성체로 좀 웃을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걸 너무 오랜만에 봤더니.

2008년의 뱀파이어들, 무엇이 달라졌나?

N : 뱀파이어 붐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요즘 부쩍 뱀파이어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지 않아요?

S : 그러게요. <렛미인>도 그렇고, 최근 1시즌을 종영한 HBO의 <트루 블러드>도 있지요.

N : <트루 블러드>가 샬레인 해리스의 소설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를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지요? <렛미인>은 그렇다치고 <트루 블러드>와 <트와일라잇>은 묘하게 유사성이 많은 것 같아요.

S: 시골에서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도 그렇고, 뱀파이어 남자와 인간 여자의 로맨스라는 점도 비슷하죠. 또 <트루 블러드>의 수키 스택하우스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반면 뱀파이어 빌의 마음만은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데, <트와일라잇>은 반대로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에드워드가 벨라의 마음만은 읽을 수 없다고 설정돼 있어요. 신기하게 맞물리죠. 결국 사랑에 빠지려면 속을 모르는 게 좋다 이건가?

▲ 북유럽에서 날아와 조용한 돌풍을 일으킨 <렛 미 인>.

N : 시골이 배경인 뱀파이어물이라니, 이것도 흥미로워요. 보통 뱀파이어는 도시의 생명체라는 인상이 강하잖아요. 밤의 불야성과 어두운 골목에 군림하면서 연고 없는 사람들을 물어죽이죠. 누가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르는 곳이 도시잖아요. 시골이라면 누구네 집 숫갇락이 몇 개인지 다 알고 지내는데, 사람이 죽으면 당장 소문 나고요. 낮 생활을 안하기도 그렇고.

S : 그러고보니 <트와일라잇>이 대부분의 뱀파이어 클리셰들을 답습하고 있긴 한데 특이한 점도 몇 가지 눈에 띄어요. 이를테면 뱀파이어는 대체로 햇빛을 받으면 소멸하거나 약해지는데 여기 나오는 뱀파이어는 아예 오색찬란하게 빛이 나잖아요. 뱀파이어를 기존의 저주스런 존재가 아니라 무슨 성스럽기까지 한 생명체로 묘사하고 있어요.

N : 또 재미있는 게 보통의 뱀파이어물에서는 뱀파이어 남자가 인간 소녀를 유혹하고 여자는 끌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트와일라잇>은 반대란 말이죠.

S : 여자애는 아예 작정하고 네가 뱀파이어라도 좋다고 그러고, 오히려 뱀파이어 쪽이 주춤하면서 "가까이 오지 마!" 이러죠. 어떻게 보면 사랑하는 여인의 순결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순수한 소년 같아요. 여성향 판타지라 그런가.

N : 늑대인간과 뱀파이어의 대립 구도는 <언더월드>랑 비슷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나오는 뱀파이어 영화는 또 처음인 것 같아요. 벨라에게 관심 보이는 남학생만 해도 흑인, 황인, 백인, 인디언, 뱀파이어...

S : 그리고 벨라는 뱀파이어를 선택하죠. 얼굴은 전형적인 아리안계 미남이지만. 웃기는 게 <렛미인>의 이엘리는 금발 벽안을 가진 북유럽인들 사이에서 튀는 동유럽계잖아요? 유럽에서는 뱀파이어가 동유럽인인데 미국에서는 또 북유럽인처럼 생긴 애를 데려다놓고 뱀파이어라니.

N : 뱀파이어는 어쨌든 '이질적인 존재'여야 하니까요. 동유럽은 서유럽이나 북유럽에선 거의 다른 세계죠. 그리고 원래 뱀파이어의 고향은 트란실바니아잖아요. 그런데 <트와일라잇>은 근래 보기 드물게 다양한 인종들이 등장하는 반면, 어쩐지 그들이 모두 컬렌가의 뱀파이어들의 우월함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기 위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 같아서 묘하게 기분나쁜 구석도 있어요. 미국 내 계급과 인종이 확 드러난달까.

S : 벨라의 친구들이 무슨 초등학생들처럼 놀고 있는 것도 그런 데에 일조하는 것 같네요. 뱀이나 지렁이 가지고 여자애들 놀라게 하면서 놀잖아요.

뱀파이어, 그 거부할 수 없는 이름

N : 애초에 우리가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끊임없이 매혹되는 이유는 뭘까요?

S : 야해서.

N : 하하하. 야하죠. 코폴라가 만든 브람 스토커 원작의 <드라큘라>도 섹스와 에이즈에 대한 은유로 해석되기도 하니까요. 소녀의 첫 경험을 상징하기도 하고, 죽음의 에로티시즘을 드러내기도 하죠.

S : 그렇네요. 영생과 죽음의 이중적인 이미지가 있잖아요. 피를 빨리는 순간 역시 죽음의 공포와 환희의 절정이라는 양면적인 속성이 공존하고 있고.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오르가즘의 순간과 비슷하죠. 그래서인지 보통 뱀파이어는 유혹자의 이미지잖아요. 거기에 인간 여자가 낚여서 파닥대죠. 이것도 브람 스토커가 만든 전통인걸요.

▲ 브람스토커의 원전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은 프란시스 코폴라 버전의 <드라큘라>.
N
: <트와일라잇>은 본격적으로 그 유혹의 이미지를 내세웠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일단 시점부터가 여자주인공의 1인칭 시점이잖아요. 원작도 그렇죠?

S : 소설도 벨라 시점에서의 노골적인 묘사가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했어요. 영화도 그대로 시점을 가져가더군요. 앤 라이스 원작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나 브람 스토커 원작의 <드라큘라>나 모두 제 3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뱀파이어의 이야기죠. 그래서 행간에 흐르는 '은근한' 유혹의 맛이 있고요. 근데 <트와일라잇>은 아예 여자주인공과 작가가 합심해서 "이래도 안 멋져? 이래도 안 반할 재간 있어?"하고 요란하게 깃발을 흔들어대는 느낌이에요. 대놓고 뱀파이어 찬양을 하죠.

N : 사실 뱀파이어는 조금 기피되고 경원시되는 대상에 가깝잖아요. 인간과 짐승의 중간지대에 위치해 있는 것 같은. 그게 또 뱀파이어를 향한 금지된 이끌림이라는 자극적인 감정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도 하고요. 근데 <트와일라잇>의 컬렌 집안은 아예 무슨 고고한 귀족 집안 이미지 아녜요? 노마드 뱀파이어들은 기존의 이미지와 비슷하긴 하지만.

S : 온 가족이 너무 잘생기고 예의도 바르고 채식주의자(!)고.... 학교에서도 경원시된다기보다는 거의 선망하는 듯한 시선을 받고 있죠. 근데 사실 뱀파이어가 한편으로는 귀족적인 이미지도 있긴 하잖아요? 설정상 봉건 시대에 탄생한 개체들도 많고요. <렛미인>의 이엘리에게도 조금 동유럽 귀족 같은 분위기가 나죠.

십대들의 청춘과 뱀파이어의 기묘한 만남

N : 틴에이저물과 뱀파이어물의 결합이라는 점도 흥미롭지 않나요? 사실 <트와일라잇>이 이 결합을 시도한 첫 작품은 아니죠. <미녀와 뱀파이어> 시리즈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무척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트와일라잇>의 벨라 말이예요, 얜 아예 처음부터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오히려 자신이 죽음을 향해 한발짝 다가가려고 들더군요.

S : 처음 장면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어도 괜찮다고 한 것 아니었어요? 전 그 대사 자체는 소녀적인 로맨티시즘이라고 받아들였는데.

▲ 틴에이저 소녀물과 뱀파이어와 액션의 만남으로 인기를 끌었던 TV시리즈 <미녀와 뱀파이어>

N : 영화 내내, 심지어 끝까지 삶에 대해 별 집착이나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차에 치일 뻔했을 때도 더없이 쿨했을 뿐 아니라, 엄마를 구하러 가겠다고 혼자 나서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요. 가면 죽을 게 뻔한데. 뭐랄까, 죽고 싶었는데 그럴 듯한 명분이 생겨서 잘 됐다는 식으로 보이기까지 해요. 마지막에는 아예 뱀파이어가 되고 싶다고까지 하고. 보통 뱀파이어물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은 생명력이 넘치는 이미지로 뱀파이어와 대비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벨라는 뱀파이어보다 더 뱀파이어스러운 거예요.

S : 하긴, 다른 틴에이저 영화들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브링 잇 온> 스타일의 여자주인공이 자주 나오는 데 말이죠. 근데 전 벨라의 그런 면이 그렇게 생경하지는 않았어요. 미국 틴에이저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라는 점이 의외이긴 했는데 그게 사실 일본문화에서는 판타지 소설 주인공으로 그렇게 드물지는 않은 성격이거든요. '중2병'이라는 단어, 혹시 아세요?

N : 아니요. 그게 뭔데요?

S : 2ch이라고 일본의 DC같은 사이트에서 탄생한 용어인데, 주로 중학교 2학년생이 앓는다고 해서 중2병이라고 해요. 대체로 자신과 세계와의 강한 단절을 느끼는 거예요. 부모도 친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자기는 평범한 인간들과는 달리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믿는 사춘기적인 감성이죠. 죽음이나 피, 어둠 따위의 키워드에 집착하는 경우도 많고요. 근데 꼭 중학생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성인들도 자조적으로 자기들이 중2병이라는 걸 인정하거나 중2병스러운 컨텐츠 - 소설, 만화, 게임 - 들을 생산하거나 하거든요. 제가 보기엔 벨라가 딱 중2병이던데. 보면서 아니, 미국에도 중2병 감성이 이렇게 보편적인가? 하고 좀 놀랐어요. 기본적으로 세대와 세대간의 극심한 단절이 배태한 아시아권 특유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N : 그렇군요. 벨라는 정말 특이하죠. 보통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프람(댄스파티)에도 안 가겠다고 하고 드레스에도 관심이 없고. 영화 내내 청바지만 입고 나오죠. 친구들과 드레스 고르려고 가서 무성의하질 않나, 그렇게 친구들 사이에서 겉돌아요. 재미있는 건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미움을 받진 않는단 말이죠.

S : 딱 왕따당하기 좋게 행동하는데도 전혀 왕따가 아니죠. 오히려 여자애들의 연애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신뢰를 받아요.

N : 게다가 과거 틴에이저 영화들에선 주인공들의 고민과 불만이 부모가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주지 않는다는 데에서 기인했다면, 벨라의 엄마와 아빠는 모두 딸에게 지극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데 오히려 벨라가 그걸 귀찮게 여기는 것처럼도 보여요. 이런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과 영화가 이렇게 인기가 있다는 건 많은 소녀들이 벨라에게 이입한다는 뜻이잖아요? <브링 잇 온>이나 <클루리스> 같은 틴에이지 소녀물들을 퍽 좋아하는 편인데, 벨라가 보이는 이런 특징은 별로 긍정적으로 보이지가 않아요. 오히려 퇴행적인 현상인 것 같고요. <렛미인>에서도 아이들의 세계가 어른들의 세계와 명확하게 단절되어 있는데다 아이들은 아이들만큼 너무나 힘겹게 견디고 있는 것 같아서 슬펐는데.

S : 근데 또 어찌 보면 전형적인 틴에이저 영화의 엔딩이기도 하지 않아요? 전 그것도 좀 재밌던데. 일반적인 소녀들의 세계를 경멸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그 세계에서 로망을 완성하잖아요? 틴에이저물 특유의 학교 계급도 뱀파이어-인간이라는 형태로 구현되고 있고. 어쨌거나 대놓고 뱀파이어 찬양을 하는 영화를 보니까 눈보신은 되네요. 마성의 게이보다 쎈 마성의 뱀파이어였어요. 전 칼라일 컬렌 파 할래요.

N : 근데 그렇게 예쁘던 세드릭의 로버트 패틴슨이 그런 외모가 된 건 너무 속상해요. 아니, 웬 턱이 그렇게나 커졌답니까? 거기에 입술은 얇고 시뻘겋고 얼굴은 허옇게 회칠을 해놓으니 너무 웃겨서. 홍보 스틸들이 얼짱각도로만 나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S : 으하하. 서양의 아역배우들은 다 자라고나서 얼굴이 뜻밖으로 변하는 경우가 꽤 있잖아요. 벨라를 업고 날아다닐 때 힘좋은 삼돌이 비주얼이 쫙 나와주셔서 좋더만요 뭘.

N : 그러게, 귀족 이미지다 했더니 힘좋은 머슴으로 밝혀졌어요. 하여간 민망하고 닭살스러워서 웃으면서도 뭐랄까, 키치적인 즐거움 같은 게 있었어요. 극장에서 개봉하면 아마 또 보러갈걸요. 이건 마치 노출도 없고 섹스씬도 없는 포르노를 보는 기분이니까요.

S : 전 제정신으로 두 번 볼 자신이 없어요. 그냥 이쯤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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