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에서 과거 한국전 참전 용사로 등장하는 월터 코왈스키는 이스트우드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해 온 주인공 남자 캐릭터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들의 깃발> 이후 국가의 테두리 속에서 정치적으로 약간씩 변화하기 시작한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스트우드의 92년작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폭력의 희생자가 된 매춘부를 응징하는 윌리엄 머니는 사람을 처음 죽이고 패닉 상태에 빠진 키드에게 사람을 죽이는 것의 무게를 가르치며, 그 자신 역시 똑같은 결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머니는 마지막까지 손에 피를 묻힘으로써 스스로를 '용서받지 못할 자'로, 종국에는 단죄당할 수밖에 없는 자로 만든다. 갱단에게 상처를 입은 몽족 소녀 수의 복수를 할 것처럼 갱들을 찾아가는 <그랜 토리노>의 월터 코왈스키의 마지막 결단은 그래서 더욱 더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시대의 탓으로 죄를 지었지만 다시 그 죄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했던, 그리고 <아버지들의 깃발>에서처럼 전후 세대에게 좋은 아버지로 남고 싶어했던 남자의 보다 진화된 결론이다. 이때 월터의 죽음은 자신이 전쟁에서 저지른 살인의 죄값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의 희생이자 용서로 승화된다. 그가 간 뒤 남은 문제는 올바른 방향성을 지닌 권력의 힘과 그의 유산을 물려받은 자들의 몫이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멋진 그랜 토리노처럼, 그의 순탄하지만은 않은 인생은 비록 낡은 것이지만 그 마지막 성취로서 보는 사람에게 일종의 감동을 선사하는 보석 같은 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 <그랜 토리노>의 월터 코왈스키는 과거에 저지른 죄를 참회하며 그 죄가 후세로 세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아버지이다. |
<더 리더>에서 한나를 향해 미하엘이 보여주는 감정의 변화는 독일의 전후 세대가 홀로코스트를 외면했거나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그에 동조했던 부모 세대에 대해 갖는 애정과 환멸을 동시에 드러낸다. 미하엘은 유년기에는 맹목적으로 한나에게 애정을 퍼붓다가, 법학 공부를 시작하는 성숙한 나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한나의 죄와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나치당 활동을 하면서 수용소 여자들을 죽도록 방치한 한나의 죄는 한편으로는 엄청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한나가 단순히 자신의 부끄러운 문맹을 감추기 위하여 나치가 되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서도 나치의 일원이 되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있다. 한나가 저지른 행위가 영화 속에서 특별히 변호되거나 더 비난받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한나는 법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지만 사실 그녀는 등장하는 모두에게 감정적으로 모호한 위치에 놓인다. 미하엘 역시 한나에게 계속 책을 읽어주는 형식으로 관심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나의 바람을 배신하고 편지 한 장 쓰지 않으며 애써 무관심하려 노력하는 등,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마음의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미하엘은 그녀의 죄가 무엇이든 그녀가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도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단지 자신의 마음 속에 한나와의 추억을 묻는 원작과는 다르게 영화 <더 리더>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하엘이 자신의 딸에게 한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이 영화는 원작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미하엘의 딸에게 꽤 많은 비중을 할애하며,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원작의 시간대에서와 달리 현재 시점에서 계속 과거를 돌이키는 형식을 취한다. 전후 1세대인 미하엘의 정신적 방황은 쉽사리 판단하고 단죄하기 어려운 부모 세대의 모호성과 전후 2세대가 토로하는 박탈감 사이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미하엘이 한나의 유산을 받아 그녀의 뜻을 잇고 그 아래 세대와 자신의 고민을 함께 나눔으로써 거기에는 새로운 용서와 이해의 기회가 주어진다.
▲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미하엘은 나치에 동조하거나 부역했던 부모세대에 대한 환멸과 애증으로 고통받는 전후세대를 표상한다. |
해결되지 않은 채 얼기설기 봉합된 아픔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이되고, 월터의 잘못 자란 아들들이나 미하엘의 순탄치 않은 가족사처럼 그 악순환의 고리를 계속 이어나간다. 아직 많은 아픔들이 마취된 채 잠들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운명을 지고 있다. <그랜 토리노>와 <더 리더>는 상처입은 과거의 연장선상에 놓인 모든 현재를 위한 이야기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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