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윌과 조슈아 |
학교의 사고뭉치 악동 조슈아와 조용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순진한 윌은 삐걱대는 첫만남을 가지지만 이내 친구가 된다. 이 두 소년은 제각각의 문제를 안고 있다. 번듯한 집에서 모자란 것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조슈아에게는 자식을 방치하고 여행만 다니는 부모와, 아무리 존경과 애정을 표해도 응답해 주지 않는 냉랭한 형이 있다. 한편 엄격한 기독교 종파에 속해 있는 윌의 가정은 종교단체의 감시 아래 자급자족 형태에 가까운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헛간에서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꿈꾸는 윌에게 있어 학교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조차 금지된 그의 일상은 단조로움과 억압으로 가득 차 있다. 윌이 조슈아의 집에서 영화 <람보>를 훔쳐본 순간 윌은 이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총천연색 영화의 세계에 빠지게 되고, 이내 두 소년은 의기투합하여 티비 프로그램에 투고할 조슈아의 데뷔작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윌과 조슈아가 찍는 영화 속 영화의 오타섞인 제목인 <람보의 아들>에서 따 온 <Son of Rambow>라는 우회적이고 재치있는 원제에 비교하면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이라는 번역제는 다소 뜬금없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의 메시지에 그리 어색하지 않게 들어맞는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판타스틱'했던 영화와의 첫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자칫하면 함정에 빠지기 쉬운 주제인 '영화 감독이 하는 영화 이야기'의 일반적인 메타 공식에서 약간 비켜서서, 반쯤은 판타지와 허풍이 섞인 아이들의 시선으로 영화와의 첫 만남을 추억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노련한 감독들이 으레 보여주곤 하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아니라, 아직 아이였을 무렵 처음 영화의 세계를 발견했을 때의 그 환상적이고 즐거운 기분, 처음으로 카메라를 만지고 무엇인가를 창조해 냈을 때의 뿌듯한 기쁨인 것이다.
▲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은 영화와의 첫 만남을 추억하며 시네마 키드들에게 바치는 애정어린 헌사이다. |
영화를 만드는 일이란 솔직히 말해 별로 팬시한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 영화를 만드는 학생들이란 언제나 밴드를 하거나 스포츠를 하는 집단과는 조금 다른 법이다. 그들은 대체로 학교의 아이돌이 아니라 대부분 주변부에 머무르며 자신이 속한 세계를 관찰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남들은 별로 관심도 안 보이는 일에 고개를 박고 홀로 열중하는 이들을 일러 너드라 한다. 그러나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쿨한' 작업처럼 여겨진다. 이 영화의 서브 플롯에는 프랑스에서 온 교환학생 디디에와 그를 추종하는 남자아이들이 등장한다. 영화 곳곳에 삽화처럼 끼어드는 이들의 에피소드들은 중반 이후 이들이 조슈아와 윌이 만들어내는 판타지에 동참하면서 중심 사건으로 편입된다. 디디에는 독특하고 튀는 매력으로 등장하자마자 영국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인이 되고, 이내 수많은 소년들이 무리지어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 디디에가 조슈아와 윌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할 것을 자청한다. 디디에와 그의 추종자들이 윌과 조슈아의 영화에 관심을 보이면서 조슈아와 윌 역시 덩달아 갑자기 학교의 인기인으로 급부상한다.
▲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디디에와 아이들. |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 밝혀지는 디디에의 실체는 프랑스 학생들 사이에서 따돌림 당하는 아웃사이더에 겁쟁이 소년이고, 그런 그를 따라다니는 일군의 소년들 역시 별로 내세울 것이 없어 디디에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후광 효과를 기대하는 처지일 뿐이다. 이러한 씁쓸한 반전 역시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의 환상에 일조한다. 영화의 세계에서 너드와 아웃사이더들은 더 이상 무시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문제적 악동인 조슈아와 소심하고 존재감 없는 윌 역시 학교의 주변부에 위치한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영화 속에서는 눈부신 주인공이 된다. 윌과 조슈아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깊은 우정을 쌓고,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던 소년들의 가정 또한 평화와 화합의 시간을 갖게 되며, 소년들이 만들어 낸 영화는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영화감독으로서의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욕구와 그 충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은 시네마 키드들과 한때 시네마 키드였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애정어린 헌사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감독이 직접 발굴해 낸 주인공 소년들의 연기이다.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이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능청스럽고 사랑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틴에이저 미국 드라마 <가십 걸>에 출연하며 '핫'한 남자로 떠오른 에드 웨스트윅의 까칠한 연기 역시 많은 관객들에게 의외의 반가움으로 다가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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