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 상당수의 한국인에게는 낯선 단어일 것이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반세기가 훌쩍 넘는 긴 입양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이지만 '입양'은 입양 보내는 부모, 입양하는 부모, 입양되는 아이, 모두에게 '숨겨야 할 비밀'이었다. 그렇게 '비밀스럽게' 입양 보낸 수십만 명의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 됐다. 더 이상 '아이(입양아)'가 아닌 이들은 스스로를 '입양인'이라고 부른다. 특히 다른 나라로 입양 보내졌던 20만 명의 해외 입양인들은 자신들이 태어남과 동시에 방출됐던 나라인 '한국'을 향해 질문한다. 한국에서 (해외) 입양은 어떤 의미였냐고. 또 항변한다. 한국은 자신들을 내보냄과 동시에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입양인'들이 존재하는 한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고. 오히려 입양, 입양인의 문제는 입양인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고…앞으로 한국사회가 계속 가져가야할 과제다. 물론 '입양'은 입양인 뿐 아니라 입양 보낸 친부모, 입양한 양부모에게도 평생 풀기 어려운 문제다. 특히 입양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양부모 입장에서 입양인들의 문제제기는 거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양인들의 목소리에 좀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동'이자 '수혜자'(시설에서 자라는 것보다 입양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훨씬 낫다)라는 이유로 이들의 경험과 감정은 철저히 무시됐다. 오는 11일은 4번째로 맞는 '입양의 날'이다. 한국이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6년까지도 중국, 러시아, 과테말라에 이어 세계 4위의 '아동 수출 대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자 정부가 국내입양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날이다. 가정의 달인 5월에 국내의 한 가정(1)에 한 명의 아동(1)을 입양하자는 의미에서 11일로 정했다. 한국은 2008년이 돼서야 국내입양이 국외입양보다 많아졌다. '입양의 날'을 맞아 이제 어른이 된 '입양인'들의 얘기를 전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숙한 '입양인'들처럼 이제 '입양'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도 성숙해져야하지 않을까. 흔히들 아이와 어른의 가장 큰 차이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지느냐를 꼽는다. 편집자 [입양인이 말하는 입양①] "당신과 함께 지하철을 타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
▲"한국 땅에서 난 중간에 끼어있어. 나는 아직 이방인이야. 많은 입양인들이 한국에 온 후에 진실로 자신들이 속하는 나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 혈연이나 아무 관계가 없는 제3의 국가에서 나는 더 편안함을 느끼고 받아들여지기 쉬울 수 있다 생각해." - <제 4회 입양의 날 기념 전시회: 이산과 귀환의 틈새> 中에서 ⓒ킴 스페를링 |
한국의 역사책들에서도 해외입양에 대한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초등학교나 중등학교의 교과서에도 찾아볼 수 없다. 해외입양에 관한 신화들과 의도된 역사의 왜곡들만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한국사회의 아주 진보적인 부문들에서만 해외입양을 군사주의적 산업화의 어두운 단면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해외입양은 한국 근대 사회에 있어 하나의 체질적 맹점이다.
한국의 입양 증후군은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는 입양인들의 현상학적 경험들에 대해서 뿐 아니라 한국사회 안에서 입양인들을 어떻게 역사적·정치적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해 풀리지 않는 많은 문제들을 제기한다. 한국 사회 내부의 다양한 대립들을 적시하는 방식으로 해외입양을 설명하고자 하는 전통적인 접근방식에 반하여, 나는 해외입양에 대한 연구가 입양인들에게 근대 한국과 산업화된 나라들간의 국제 질서에 있어 한국의 현상적 융성에 대한 이해를 획득하는 매우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자 한다.
자기배척과 해방
입양인들에게 한국으로의 귀환은 일종의 발견의 여행이다. 소리들과 냄새들 그리고 엄청난 흥분으로 가득한 하나의 온전한 세계에 대한 발견이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막연한 환상에 불과했던 이 마술적 나라는 돌연 아주 확고한 현실로 바뀐다. 러시아워의 지하철에서 밀고 당기는 일, 말끔한 차림의 군복과 굽 높은 구두, 불교 사찰에서 울리는 종소리, 견디기 어려운 폭염과 습기로 가득한 여름 등등. 거기다가 한국인들이 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은 기분 즐거운 충격이기도 하다.
한국으로 귀환에서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자아 발견으로서의 여정이라는 점이다. 이 여행은 과거와 현재를 분리시키며, 서양과 동양을 갈라놓고, 정신과 몸의 분열을 야기하는 과격한 경험이다. 이것은 입양인의 세계를 불안정하게 하고 중심을 흐트러뜨리는 위협적인 경험이다. 한국으로의 귀환은 타자로서의 자기 체험이며, 자기 존재의 핵심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문제에 부쳐지는 과격한 탈영토화의 경험이며, 또한 잠재적이긴 하나 해방과 권능화의 경험이기도 하다.
서구에서 성장하는 동안 입양인들은 자신들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배척하도록 배웠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맞은 존재가 되기 위해 우리는 한국인됨(한국인으로서의 신체적 특징과 개인사)을 거부했다. 우리는 서구 문화의 렌즈로 세상을 보도록 배웠다. 입양인들은 백인성을 정상이자 표준으로, 일반적인 규범으로 간주하는 것을 배웠으며, 심지어 우리 자신의 몸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표준으로부터의 일탈이라고 여기도록 교육을 받았다. 입양인들은 스스로를 서양인들과 동일시하고 자신의 유색인 신체를 이국적이거나 나약한 것으로 평가 절하하도록 배웠다. 입양이란 결국 생존을 위해 우리 자신의 본질적인 부분을 거절한다는 것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많은 입양인들은 일생 동안 한국과 한국적인 모든 것을 거부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통해서 통해 물질적으로 보상받게 된다 하더라도, 이는 결국 심리적·존재론적 황폐화일 뿐이다. 이러한 입장은 자신의 의식을 통제하기 위해 자기 내부에서 다수의 목소리들이 싸우는 일종의 정신분열적인 위치에다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이것은 공허와 고독 가운데 있는 우울증을 야기하며, 부정되고 숨겨진 자아는 다른 인간 존재들과 소통하지 못하며 경험을 나눌 수 없게 된다. 나아가 더욱 파괴적인 것은 이러한 입장이 심층적인 차원의 자기 배척과 자기 증오를 함의한다는 점이다.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과 연관된 사소한 많은 도전에 더하여,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는 일은 또 다른 하나의 곤경이다. 우리 스스로 한국을 부정하는 일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입양인의 한국 방문은 한국에 대한 부정과 거절을 더욱 강화시켜 주는 일이기도 하다. 스웨덴 입양인이자 작가인 아스트리드 트로직(Astrid Trotzig)은 이런 입장에 관련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그녀의 저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에서 밝혔듯이 그녀는 단 2주 동안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가 한국에서 받은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고 이국적이며 무지한 것으로 보였고, 스웨덴의 복지사회의 현실과 비교해 한국의 모든 것들은 서구를 모방한 값싼 이류의 모조품처럼 보였다. 그녀의 한국 방문은 그녀의 한국에 대한 거절을 강화시켰을 뿐이고, 그녀에게 자신이 스웨덴 사람이라는 느낌을 재차 확인시켜줬다. 많은 경우 이런 자기 부정의 태도는 한국인들과 아시아인 전체에 대한 차별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반면, 다른 이들에게 있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험은 한국에 대한 우리의 부정을 대면하고 극복하는 기회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한국인으로 그리고 한국 국민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본질적인 수용을 암시한다. 스스로에게 솔직해 지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스스로를 속이기를 그만하기까지, 그리고 우리가 믿도록 배웠던 거짓말을 그만 받아들이기로 하기까지는 수많은 결단들이 필요하다.
이는 플라톤이 말한 동굴을 떠나는 경험에 비견할 만한 것이며, 영화 매트릭스의 결별, 은폐로부터의 커밍아웃, 혹은 단테의 연옥 가운데로의 여정 등과 같은 것이다. 이는 일생에 처음으로 벌거벗은 채로 우리 스스로 앞에 서는 것을 의미하며, 비자발적인 자기소외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 나는 열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나는 미국에 있는 대학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한국에 돌아 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울 신촌에 바를 열었습니다. "우선은 모든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 지켜볼 생각입니다.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딴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겠지요. 왜냐면 한국엔 많은 다양한 일들이 있으니깐요." - <제 4회 입양의 날 기념 전시회: 이산과 귀환의 틈새> 中에서 ⓒ킴 스페를링 |
억압된 자들의 귀환
시몬느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가 말했듯이 다른 이들의 해방을 바라지 않으면서 자기의 해방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열망이 입양된 국가의 입양인 공동체들 가운데 있다. 또 이런 열망이 한국에 있는 입양인 공동체에게로 확장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열망은 또한 우리의 동포인 한국인에게로도 확장된다. 따라서 이 열망은 우리에게 한편으로는 풍부하고 훌륭한 한국문화를 배울 의무와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인들에게 해외입양인들의 경험들에 대해 가르칠 의무를 갖게 한다.
입양에 관한 정치적· 역사적인 토론에 참여하고자 하는 입양인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속에 입양인의 목소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입양인들은 아무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과거의 살아있는 증거일 뿐이다. 우리는 동정의 대상이자 부끄러움의 상징이다. 우리는 다뤄져야 하는 객체로 머물고 있고 인정받아야 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입양 한국인을 향한 이런 태도는 한국의 해외입양 역사 속에서 필수불가결적 요소로서 작동해왔다.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박정희는 한국에서 첫 입양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당시 존재하고 있던 한국으로부터의 해외입양 관행을 통제하고 장려하기 위해 설계됐다. 그 결과 해외입양은 매해 수천 건에 달할 정도로 전례 없이 큰 규모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 중반, 한국에서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최초로 대통령이 선출되던 때, 해외입양의 수치 역시 정점에 이르렀다. 그 이후 정권의 변화와 함께 한국의 해외입양법은 몇 번의 수정과 사소한 개정을 거쳤고, 한국의 연간 해외입양 수치 역시 점차 감소하여, 현재 연간 1500여 명을 오르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 해외입양법의 기본적 성격과 개념화의 방식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지·관철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입양법을 제정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 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사람들로부터 자문 받는 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입양법은 비민주적 지도자에 의해서 제정된 비민주적 법률이었다. 당시에는 정당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 와서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입양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민주주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다. 입양에 의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개인들이나 단체들은 아직까지도 현재 한국의 입양법의 수정과 개정에 관한 논의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입양문제가 아직도 자유롭게 민주적으로 토론을 할 수 없는 이슈라는 것이 사실인가? 법에 직접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그들의 견해나 우려는 고사하고 제안된 수정안을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한국 가족과 그들의 동료 형제들과의 결속을 다시 구축하기를 바라고 한국으로 돌아온 많은 한국 입양인들은 한국의 입양법 개정안에 관련된 공청회의 토론에서 실제로 배제되어 있다.
배제는 언어적 장벽으로부터 비롯된다. 한국에서는 모든 정치적 토론회들이 한국어로 개최되고 모든 주요 문서들은 한국어로 기록된다. 질문서들과 조사와 연구들은 한국어로 수행된다. 성인이 된 많은 입양인들이 고등교육을 받았고 대여섯 개의 언어에 능통하지만, 이들 중 극소수만이 한국어로 된 복잡한 법적 문서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러므로 통역을 제공할 책무는 한국 정부에 있다. 한국 정부 및 그 관료들은 한국 입양인들이 한국 입양법 개정을 위한 민주적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합당한 통역을 제공할 필요를 인식해야 한다.
1961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입양법은 해외로 보내진 수천수만 한국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성인이 되어 그들의 모국으로 돌아온 이 입양인들은 한국에서 입양에 관련된 정치적 토론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전혀 낼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이렇게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변두리화 된 위치가 바로 인식론상에 있어서 특권을 누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단순히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억압된 경험들에 대해서 지성적 접근할 위치를 점유하고자 하는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바로 사회적으로 억압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설명 불가능한 낯섦'이라고 정의한 바로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의 우리의 위상에 대한 완전한 정의이다. 즉, 업악당하고 비존재화된 이들이 귀환한 것이다.
▲ " 내 자아는 분열되어 있어.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항상 모든 사람들이 내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고 나는 늘 한국 사람이라 대답했었지만 한국에서 나는 항상 나를 미국 사람이라고 말해. 나는 분명히 내가 입양된 것에 대해선 불만이 없지만 단지 나는 내가 잃어버린 본질에 대해서 꼭 더 알아보고 싶어." <제 4회 입양의 날 기념 전시회: 이산과 귀환의 틈새> 中에서 ⓒ킴 스페를링 |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들뢰즈(Deleuze)와 기타리(Guattari)에 따르면, 모든 사회조직이 정의될 때 그 사회조직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요소들에 의해 정의되는 정도가 그 사회조직이 안고 있는 내적 모순들에 의해서 정의되는 정도보다 크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다른 계급들(자본가 대 노동자, 지주 대 소작농)이나 다양한 사회적 파편들(남성 대 여성, 지역 대 지역), 혹은 이데올로기적 학파(권위주적 발전론 대 민주주의적 공헌론) 등등의 적대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대신 한 사회는 그것을 떠나게 하거나 탈출하게 하는 요소들(탈영토화)과 그 사회로부터 도망치려는 요소들을 국가가 통제하거나 되찾으려 하는 시도들(재영토화)에 의해서 정의된다.
들뢰즈와 기타리는 현대 사회들을 정의하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을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매개체들로 봤다. 현대 한국 사회는 내적 대립관계들에 의해서보다는 이주의 경향과 이주의 흐름을 통제하려는 국가기구의 시도들에 의해 정의된다. 특정한 형태로서의 비자발적인 이주인 해외입양은 한국 현대 사회에 있어서 독특한 탈영토화의 매개체적 구성물이다.
이는 즉각적으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개념들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공동으로 집필한 책 <반 오이디푸스, 카프카, 천 명의 플라톤, 철학이란 무엇인가?(L'Anti-(Edipe,Kafka, Mille plateaux, Qu'est-ce que la philosophie?)>에서 최초로 발견된다.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는 영토와 영토화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들 개념간의 관계는 다음의 방식에 의해 개괄적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영토는 영토화의 과정이나 권력의 집합으로 창조되거나 구성된다.
(2) 주어진 영토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탈영토화는 들뢰즈와 기타리가 "line of flight"라고 명명한 바를 만듦에 의해서 그 영토를 떠나가는 과정이다.
(3) 재영토화의 개념은 영토로 귀환하는 것 또는 영토를 재부호화 하는 것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새로운 집합을 구성하는 일에 있어서 탈영토화된 요소들을 재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4) 영토권의 개념은 영토화, 탈영토화, 재영토화의 세 가지 과정 모두를 지칭한다. 이 개념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결과보다는 과정을, 연속성보다는 변질을, 존재보다는 되어감을 묘사한다는 것이다.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개념은 한국으로부터의 해외입양에 대한 연구에 있어 몇 개의 중요한 필연적 결말을 갖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국 사회의 내부적 체계나 혹은 대립관계들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는 해외입양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축소적인 해석이며 궁극적으로 한국전쟁, 군사독재하의 산업화, 경제적 곤경, 성 불평등, 혹은 어떤 한국 사회 내적 동력에 의해 입양이 출현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 사회 내부의 대립관계들을 거론함으로 입양을 설명하는 대신 탈영토화를 야기하는 힘들과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방식에 의해 한국 입양인들을 통제하고 재영토화하려는 한국 정부의 시도들을 사용해서 한국사회를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국가로서의 한국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해외입양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외 입양은 탈영토화의 매개체일 뿐 아니라 들뢰즈와 기타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 한국 사회에 의해 억누름을 당해온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대립관계들을 참조하여 해외입양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대신에 해외입양을 대중적 현상으로 불가피하게 발명하고 발전시킨 그 자체로 유일성을 지닌 사회로서 한국 사회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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