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빌려드립니다>에는 찰리 카우프먼 식의 발랄한 코미디와 설정이 조금 더 진지하고 느릿느릿한 드라마와 결합되어 있다. 사람의 영혼이 제각각 다른 형태로 추출되어 보관될 수 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서 쓸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태연하게 전개된다. 이 와중에 자기 이름을 딴 캐릭터를 연기하는 폴 지아마티가 겪는 각종 곤란한 상황들은 안쓰러운 웃음을 자아낸다. 이 영화 속의 영혼들은 마치 블루 오션 사업의 아이템과 같아서 심지어 러시아에서 밀수입되기까지 한다.
▲ 영혼을 빌려드립니다 |
인간 정신의 근원이자 성역으로 남아있어야 할 인간의 영혼이 마치 물질의 일부처럼 자본주의의 흐름에 따라 판매되거나 수입되고, 돈을 벌기 위해 가난한 러시아 빈민들이 영혼을 파는 모습은 단순한 코미디에서 벗어나 현실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제기한다. 러시아와 미국으로 대표되는 이들 착취 관계는 극중에서 폴이 연기하는 체호프의 러시아 희곡 <바냐 아저씨>에서 평생을 착취당하는 불행한 바냐와 오버랩되며, 바냐를 연기함으로써 바냐가 되는 폴과, 폴이 산 영혼의 주인인 가난한 러시아 시인이 예술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 영혼을 파는 행위는 생존을 위해 오히려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저버리게 되는 슬픈 딜레마를 안고 있다. 폴은 그 영혼의 아름다움과 무게에 감동하여 자신이 산 영혼의 주인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이미 자살한 후이다. 가난 때문에 '영혼이라도 팔'것처럼 고생하다가 결국 자살로써 삶을 마감하고 만 재능있는 예술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물질화되어 인간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영혼의 덩어리들을 취급하는 영화의 태도는 시종일관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하지만, 사람의 몸에 담긴 영혼 그 자체를 다루는 지점에서 이 영화는 쓸쓸하고 아름다운 영상과 연기를 배치해 놓고 있다. 폴 지아마티가 연극 연기를 계속하기 위해 자신이 산 가난한 러시아 시인의 영혼 때문에 고통과 아픔을 느끼는 장면이나, 니나가 폴의 영혼을 훔치면서 그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장면 등은 찰리 카우프먼 식의 블랙 코미디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뻔뻔한 개그와 진지한 드라마의 결합이 그다지 매끄럽게 봉합되지 않아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사뭇 다른 분위기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상반되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극중 이름처럼 자기 자신을 그대로 노출하는 듯한 폴 지아마티의 연기는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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