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stage |
- 바쿠스의 와인에서 맛 볼 수 있는 인간의 위선, '파사드(Façade)'
캐릭터의 해석이 새롭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지킬이다. 그간 한국 공연의 지킬이 성혈을 상징하는 포도주라면 브래드 리틀의 지킬은 석양처럼 진한 바쿠스의 와인이다. 관객들은 '성스러우리만큼 착한 남자'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조금 내려놓는다. 대신 총각 파티를 열어달라며 어터슨을 술집으로 데려가는 새로운 지킬을 만난다. 루시 역시 붉은 와인 빛이 잘 어울린다. 루시가 하이드의 치명적 유혹을 느끼는 '나도 몰랐던 나' ('It's a dangerous game')는 1막에서 한 번 더 변주된다. 반면에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쇼에 늦어 스파이더에게 얻어맞는 장면이 삭제됐다. 바깥세상을 쳐다보는 루시의 호기심이 축소되며 어린 소녀의 느낌보다는 농염한 구석이 강조 됐다. 주교의 장례식에 참여한 귀족들이 근엄한 표정 짓느라 힘들었다고 툴툴대는 등 대사에서도 그 차이를 볼 수 있다. 스티븐슨의 원작과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이다. 공연은 이렇게 '인간의 양면성'이라는 측면을 최대로 확대한다. 그리고 이 확대경의 사용은 '위선, 허울(Façade)'이라는 주제에 강하게 빛을 모은다.
- 브래드 리틀, 브래드 리틀! 그가 남긴 것
선량한 지킬에 대한 애정과 독선적인 지킬에 대한 이질감. 이것은 내한 공연의 관객들에게 걸린 마음의 브레이크였다. 브래드 리틀은 첫 곡부터 이 우려를 함락시킨다. 공연의 백미는 역시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과 '대결(Confrontation)'이다. 브래드 리틀의 편안한 음색은 곡을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끌어간다. 연구실이 등장 할 때는 슬로우 모션을 보듯 장면이 섬세하게 펼쳐진다. 이윽고 클라이맥스에서 감정의 고조. 그 성량과 음의 변주에는 탄성이 나온다. 브래드 리틀은 무대 위에 숙제를 하나 남긴다. 바로 실력과 연륜, 스타성까지 갖춘 배우 층을 두텁게 하라는 것이다. 브래드 리틀의 노래는 배우 조승우의 진정성어린 긴 호흡, 류정한의 풍부한 발성, 홍광호의 젊은 미성과도 다르다. 그러나 연륜이라는 그만의 힘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과제이길 기대해 본다. 커튼콜의 막이 거의 닫혀갈 때 기립한 관객들에게 쏘는 손가락질 한 방. 21년 동안 무대에 오른 여유로운 배우 브래드 리틀이 주는 짜릿한 마지막 선물이다.
- 흐르듯 펼쳐지는 런던 거리에 서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내한 공연의 장점은 자연스러움이다. 엉덩이 뽈록한 드레스, 화려한 프릴, 영국 신사의 구식 정장이 너무 잘 어울리는 배우들을 보면 실제로 눈앞에 런던 거리가 그려진다. 현실감 있는 실험실의 계단은 연극적 요소를 더한다. 또 무대 전면을 차지한 붉은 석양은 공연의 색감을 일관성 있게 끌어간다. 한국 공연에서만 볼 수 있었던 몇몇 강렬한 이미지가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산을 들고 펼치는 군무, 실험실에서 등장하는 불기둥,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갈라놓은 이 층 통로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힘 있는 굵은 점보다는 흐르는 듯한 필기체를 선택한 이 공연은 과하지 않은 색깔을 묵직하게 우겨나간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내한 공연은 브래드 리틀 등 오리지널 팀에 대한 헌사다. 동시에 일본에서도 기립을 받아낸 우리나라 대표 흥행 뮤지컬에 대한 세계적인 위치의 확인이기도 하다. 관객들 역시 넘치는 기대 속에 어느 정도는 '그래, 어디 한 번 보자'하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들어서지 않았을까. 내한 공연의 첫 막이 오르는 순간 그 답은 결정된다. 분명 한국의 '지킬 앤 하이드'는 자랑스럽다. 그러나 이 오리지널 팀의 공연은 '지킬 앤 하이드'를 또 다르게 변주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그 자랑스러운 작품이 한 발짝 더 움직일 방향에 대한 힌트를 던진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