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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노동 없는 민주주의, 결국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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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장집 "노동 없는 민주주의, 결국 죽는다"

[강연] "왜 철거민은 자기 권리 주장 못하나"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패턴에서 제일 먼저 지적할 것은 '노동 없는 정당 체제'가 지속됐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자기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 만드는 조직의 힘이 선진국에서는 정당 형태로 제도화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노동자가 없는 상태에서 정당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민주화로의 이행이 완료된 뒤 민주주의의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정부와 보수 세력의 총공세 속에서 지난 3일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했다. 노동조합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파업을 결정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적당히 타협해선 안 된다"며 전면에 나서서 노조에 대한 압박을 지휘했다. 이를 두고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단순히 이명박 정부가 보수 정권이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 또는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문제일까? 정권을 교체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까? 현재의 야당과 시민사회는 왜 정부와 여당의 공세를 견제하지 못했나?

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학술정보관에서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프레시안 고문)가 '한국 민주주의, 어디서 와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이 주최한 이번 강연에서 최 교수는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문제점을 '노동 없는 민주주의'라고 지적했다.

"87년 후에도 노동이 중요한 플레이어 되지 않은 건 똑같아"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프레시안
최장집 교수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용하게도 큰 희생을 내지 않고 민주주의로 잘 이행했다"며 "여기에는 냉전 반공주의, 권위주의적 산업화 등의 조건이 오히려 역설적인 효과를 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만약 민주화 이전의 질서가 구조적으로 완벽했다면 민주화가 일어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며 "권위주의 체제는 나름의 한계 속에서 성공했지만 내부의 지속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 이런 조건들은 이후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발전하는데 큰 제약 조건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권위주의적 산업화의 성공은 성장제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확립했다"며 "이는 다른 성장 모델을 발전시키는데 무척 어려운 조건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재벌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등장해 경제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냉전 반공주의라는 보수 이데올로기가 위력을 가지게 됐고 보수 언론이 여론 시장을 압도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이런 조건들이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떤 효과를 낳았을까?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 정당 체제가 그전과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는 높은 연속성이 있었다"며 "그 핵심은 노동이 정당 정치의 중요한 플레이어(player)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물 엘리트가 중심이 되어서 위로부터 정당을 만들고, 정당이 아닌 행정부와 보수 언론이 의제 설정의 주도권을 가지면서 정작 정당은 노동자, 사회적 약자, 시장 경제의 열패자를 대표하지 못하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진보 정당의 지지 기반 역시 실제로 노동자보다 도시의 교육받은 중산층 화이트 칼라가 주종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중산층과 노동자가 분리되면서 노동운동은 이래저래 고립되는 상황에 빠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최장집 교수는 "용산 참사의 사례를 보더라도 세입자나 영세 자영업자 등 시장 경제에서의 약자들은 결사의 자유가 매우 제약됐고,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혔다"며 "노동운동은 정부의 성장정책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집단 운동으로 인식되어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거의 모든 정부의 공격 대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는 한국 정치에서 정당 체제가 안정화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 최장집 교수는 "주요 사회 세력이 정당의 제도권 내로 들어오지 않았고, 한국의 정당은 사회경제적 이익과 가치를 넓고 안정적으로 대표하지 못하는 무능력과 허약함을 안게 됐다"며 "기존 양대 정당은 그 협소함 때문에 끊임없이 정치 불안정을 야기하고, 이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에서도 보수 헤게모니는 완강하다"

최장집 교수는 "한국 사회의 여러 조건이 낳은 또 다른 효과는 국가의 환생"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이론적으로 시장이 실패한 국가를 대체하는 것이라지만, 국가가 손을 놓으면 신자유주의가 가능한가"라고 되물은 뒤 "특히 대통령의 권력이 강한 국가에서 신자유주의는 민주화 이후 국가가 환생하는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시민사회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민사회는 민주화 운동 당시 상당한 역할을 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는 활성화됐을지 모르지만 이미 노무현 정부 때 보수적 시민사회가 강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이제 힘의 균형이 만들어진 시민사회는 운동 중심의 공적인 장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최장집 교수는 "또 시민사회에서 보수의 헤게모니는 완강하다"며 "노동자, 농민은 물론 사회적 약자가 결사의 자유와 권리를 통해 그들 스스로를 대표하고 보호할 수 없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규범에 충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최 교수는 "최근 들어 촛불 집회,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 정국 등 대규모 운동이 일어나면서 시민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온다"며 "그러나 그 현상은 시민사회가 강해서가 아니라 아니라 정당이 약한 사회에서 정부가 권위주의적 양상을 보이니까 자발적으로 나온 비판적인 운동의 형태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또 시민사회에서 보수의 헤게모니는 완강하다"며 "노동자, 농민은 물론 사회적 약자가 결사의 자유와 권리를 통해 그들 스스로를 대표하고 보호할 수 없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규범에 충돌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산 참사 하나만으로도 한국의 정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세입자와 영세 자영업자는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다. 개발업자, 시청, 지주가 한 팀이 되면 세입자 등이 다른 한팀이 되어 자기 이익을 연대하고 결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국철거민연합 등 조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검찰 등 국가기구와 재개발조합에 막혀 활동이 제한된다.

세입자가 연대하면 3자 개입이라며 접근도 못하게 한다. 결국 용산의 경우에도 범대위가 결성되고 운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너무 한국적인 패턴이 되풀이 된다. 결사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권리인데 이를 정치적으로 억압하고 있다."


"노동자, 표를 통해 목소리 내지 않으면 억압의 타깃 될 수밖에 없다"

강한 국가, 그리고 약한 정당 체제와 시민사회가 낳은 현재의 결과는 암울하다. 최장집 교수는 "졸속적으로 만든 정책을 짧은 시간 내에 집행되는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즉응의 정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4대강 사업을 봐도 정부가 지출하는 예산이 8조5000억 원인데도, 정부가 막무가내로 국회 승인을 받기 전에 집행하고 있다"며 "이것은 이명박 정부만이 아니라 세종시 등에서 보듯 이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정치에서는 투표율이 낮아지는 참여의 위기와 사회경제적으로는 부의 분배가 더 나빠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장집 교수는 "지금 노동운동의 상황이 나빠지고 있지만, 이것은 IMF 금융 위기 등을 거치는 연장선 상에서 더 나빠지고 있는 것"며 "정당 체제는 그래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자도 정치 세력으로 인정받고, 표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야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억압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결국 한국 사회의 진보는 정당을 중심으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며 "저항 세력이 아니라 통치 엘리트가 될 수 있어야 하며, 책임없이 비판하지 않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보수가 도덕적 지도력을 가지려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가치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재벌이 중심이 된 기업 엘리트는 노동자를 파트너로 수용하고, 어떤 형태이든 같이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을 다루는 것을 국가에 일임하고, 온실 속에서 성장한 한국의 기업 엘리트들은 도덕적 헤게모니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 역시 정당으로 조직화된 틀 안에 들어와 그들의 이익과 가치를 정치적으로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최 교수는 "노동자도 정치 세력으로 인정받고, 표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야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억압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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