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에 날아든 소식에, "시민에게 문화를! 예술가에서 작업실을" 이란 구호를 내걸고 목동예술인회관을 점거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목동예술인회관 사업은 약 15년에 걸쳐 진행되며,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적 상황들을 직시하게 만든 사업이며 예술가와 시민사회의 공분을 산 사업이기 때문이다.
예술인센터로 이름을 바꾼 목동예술인회관은 1992년 김영삼의 대선 공약 사업으로 지정된 후 '예술인의 창작 환경과 복지를 위하여' 1998년 165억 원의 국고 보조금으로 신축에 들어간 건물이다. 그러나 시공사의 손해 배상 소송, 예총 간부의 비리 혐의 구속, 감사원 조사 등의 파행을 겪으며 1999년 공사가 중단되었다.
▲ 예술인센터로 이름을 바꾼 목동예술인회관은 1992년 김영삼의 대선 공약 사업으로 지정된 후 '예술인의 창작 환경과 복지를 위하여' 1998년 165억 원의 국고 보조금으로 신축에 들어간 건물이다. 그러나 시공사의 손해 배상 소송, 예총 간부의 비리 혐의 구속, 감사원 조사 등의 파행을 겪으며 1999년 공사가 중단되었다. ⓒ김강 |
공사가 중단되면서 본 사업의 문제점이 언론 및 시민사회 전반에 알려지게 되었고, 지속적인 비판과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제시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본 사업은 정부에서도 문제를 삼았는데, 1999년부터 꾸준히 국정 감사에서 대책을 촉구하는 의견서들이 제출됐다. 감사원은 2001년 '조속한 공사 재개를 위한 근본 대책 수립 처분'을 요구했으며, 2004년에는 '예술인회관 건립 지원 및 관리 부적정'을 문화체육관광부(당시 문화관광부)에 지적하면서, 기한 내에 공사를 재개하지 못할 경우 보조금 교부 결정의 취소 및 반환 조치를 추진하고, 과다 지급된 감리비 잔액을 회수하도록 했다.
예술인회관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의 핵심은, 본 사업이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과 복지 사업과는 무관한 예총의 임대 사업으로서 이를 위한 건물 신축을 국고 보조금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총은 본 사업에 자체 자금 약 30억 원을 쓰겠다고 제시했으면서도 10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기금만을 마련하고선 지하 5층·지상 20층 건물의 6층~20층에 오피스텔 임대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예총은 국고 보조금을 통해 부동산 임대업을 벌이려 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저러한 복잡해 보이는 사안들이 교차되고 있을 때, '오아시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모인 예술가들은 어차피 누구도 사용하지 못하는 방치된 건물, 예술가를 위해 지어지고 있는 것이라니 우리가 사용하자!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지상 20층 지하 5층 꿈의 예술 공간! 천혜의 예술 요충지, 선착순 분양!" 5년째 방치된 목동예술인회관을 예술인들의 '오아시스'로 만들자는 오아시스 프로젝트 명의의 예술인회관 분양 광고가 인터넷과 문화 신문 등에 게재되고, 분양 사무실이 차려졌으며 500여 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분양(?)을 신청했다. 2004년 8월 15일엔 <예술가 독립 선언서>가 낭독되고 회관 건물 옥상에는 "시민에게 문화를! 예술가에게 작업실을! "이란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건물 밖에서는 콘서트와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건물 내부에선 점거 예술가들을 검거하기 위한 경찰들과 예총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취재를 위해 함께 점거에 가담한 KBS, MBC 촬영 기자와 PD들은 전 과정의 증인이 되어 발빠르게 보고를 이어갔다. "내 집에 왜 들어와~!! 누군데 내집에 들어와~!!" 각목을 들어 위협하는 예총 사무총장의 발언과 행동은 본 사업의 최종 포식자가 누가 될 것인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예총은 회관에 침투한 예술가들 20명을 형사 고발했고, 예술가들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과 형법을 적용받아 3명은 50만 원의 벌금형, 7명은 30만 원 벌금에 선고 유예를 받았다.
(당시 오아시스는 법적 판례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타인 소유의 건조물 침입, 즉 점거는 '폭력 행위'로 분류되고 특히 여럿이 같이 도모했을 때에는 조직 폭력으로 해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개인적인 형사 처벌의 형량을 줄이는 것과 더불어 '점거'에 대한 사회적 명분을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단순 법적용이 아닌 새로운 형태로 법이 적용되길 바랐다. 이는 추후에도 진행될 여러 점거들에 대한 현실 판례로 기능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즉 벌금 50만 원 정도만 낼 준비만 되어 있다면 누구든 무소불위의 소유권에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법적 판례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 2004년 8월 15일 오아시스 예술가들의 점거 장면. ⓒ김강 |
오아시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본 사업 금액의 전면 환수를 주장하며 문광부 앞에서 1인 시위형 퍼포먼스를 2005년 12월~2006년 3월까지 약 6개월간 매주 진행했다.
이후 '목동 예술인회관 건립 사업 정상화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대책위 차원에서도 3개월 이상 퍼포먼스 시위를 진행했으며 추후 대책위는 예총이 회관 건립을 위한 여러 행동을 진행할 때마다 감시와 비판 활동 및 사업의 전면 취소 및 국고 환수를 주장해 왔다.
즉 회관 사업은 더 이상 국고 보조금을 통해서는 진행될 수 없는 사업이고 예총의 자구책을 통해 건설이 재개되지 않을 시에는 '전면 국고 환수' 결정도 가능할 사업이었다. 그런데, 2010년에 100억 국고 보조금 지원에 대한 소식이 들렸으니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간에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 명백히 알 수는 없으나 토건 사업을 중점적으로 벌이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예술가의 창작 환경과 복지를 핑계로 정부의 국고 보조금을 타내 예총이 "부동산업"을 해도 무방한 시나리오가 2010년 완료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과 결탁한 예총의 회관 신축 사업이 그들의 목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500여 명도 넘는 예술가들이 뜻을 모았고, 24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의 실천을 했다. 미디어법, 4대강 등의 빅 이슈들을 마구 쏟아내면, 이런 일쯤은 아무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상황이 21세기형 한국의 예술이 시작되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예리한 사회비판의 예술이 직접 행동과 만나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다시 태동시킬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누군가에 의해서 그것이 준비되고 있을 것이다.
▲ '모델하우스 방문'이란 이름으로 예술인회관 앞에서 페스티벌을 벌였던 예술가들. ⓒ김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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