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1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프레시안>은 당선된 작품을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새벽 4시를 알려주는 손 전화 알람소리가 신나게 울린다. '에이씨, 시끄러워…' 비몽사몽간에 손 전화 알람을 껐다. 다시 조용해져서 그런지 따뜻한 이불이 더 포근했다. 이불에서 나오기 싫은 나는 굼벵이처럼 웅크리면서 중얼거렸다.
"진짜 가기 싫다… 진짜 가기 싫다… 진짜 가기 싫다… 에이! 씨!"
퉁퉁 부은 발로 이불을 확 걷어찼다. 하루 빠지면 일당 5만 원이 사라지기 때문에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 나는 비정규직의 '꽃' 일용직 노동자다. 나는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4개월 째 도배 노동을 하고 있다. 나름 적응됐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정말 싫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퉁퉁 부은 눈을 억지로 뜨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까치가 들어와 살아도 될 만큼 엉망인 머리, '수감번호 xxxx' 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할 것 없는 표정. 이것이 내 몰골이었다. 나는 대충 이를 닦고 고양이 세수를 한 다음에 옷을 갈아입었다. 달력에 붙어 있는 달마 대사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라고 중얼거린 뒤, 집을 나섰다.
매연이 가라앉은 새벽 공기는 뜻밖에 상쾌했다. 크게 들어 마시니까 잠이 조금 깨는 듯 했다.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정류장으로 급하게 걸어갔다. 정류장은 첫차를 타기 위해서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다 함께 졸기 시작했다. 버스 기사는 라디오 볼륨을 아주 작게 틀어줬다. 어느새 새벽 버스는 만원 버스가 됐다. 이 새벽에 어디로 가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처럼 큰 배낭을 둘러 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늘도 나는 서서 졸기로 했다. 내 자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몫이니까.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지하철을 한 번 더 갈아타고 나면 내가 일하는 현장이 나온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7시 30분이 되자 곧바로 작업이 시작됐다. 요즘엔 '하단' 붙이는 재미로 다닌다.
벽지를 붙일 때는 기공(기술자)이 벽지의 3분의 2를(상단) 우마(발판)위에 올라가서 먼저 붙이고 내려온다. 그럼 나 같은 초보는 나머지 3분의 1을(하단) 쪼그리고 앉은 채 마무리한다. 그래서 나는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5시 30분까지, 9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다를 계속 반복하면서 쉼 없이 하단을 붙인다.
작업 중간에 쉬는 시간이나 새참 먹는 시간은 없다. 쉬고 싶으면 소장이나 반장의 눈을 피해가면서 알아서 쉬든지, 점심시간에 쉬면된다. 소장이나 반장은 속도와 시간을 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여유롭게 작업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기공들도 속도를 빨리 뺀다. 사실 도배 자체는 재밌다. 도배지를 벽이나 천장에 꼼꼼하게 붙이는 것도 재밌고 커터 칼과 칼받이를 사용해서 불필요한 도배지를 반듯하게 잘라내는 것도 재밌다.
특히, 도배지의 이음매를 롤러로 신나게 문지르면 도배지 사이가 좁아지면서 서로 붙게 되는데 그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하지만 그런 재미들은 소장이나 반장이 요구하는 물량과 속도에 묻혀서 고통으로 바뀐다. 기공의 작업 속도에 맞춰가면서 하단을 붙일 때면 허리와 무릎은 끊어질 것 같고 쌀쌀한 날씨에도 땀은 비 오듯이 쏟아진다. 잠깐 일어서면 머리가 어지러워서 휘청거린다. 계속 쪼그리고 앉아 있어서 그런지 종아리에는 감각이 없다. 그래서 무릎을 꿇어도 보고 살짝살짝 다리를 펴가면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역시나 종아리에는 감각이 없다.
내가 8월에 이곳을 처음 왔을 때는 신나게 천장을 붙이고 있었다. 그 때도 기공들의 작업 속도에 맞춰서 쉼 없이 붙이느라고 목과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우마' 위를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 모두들 소장과 반장에게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악착같이 버틴다.
물론 버티지 못하면 도배를 그만둔다. 그래도 요즘엔 그렇게 힘들지 않다. 현장이 정리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소장은 작업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나와 같이 작업하는 기공 분도 속도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커터 칼 조각들이 사방으로 날라 다니지도 않는다. 예전에 천장을 붙일 때, 급하게 작업하던 기공이 커터 칼날을 벽에 부러뜨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작은 칼 조각이 내 왼쪽 눈 옆으로 스쳐지나간 것이다. 그 때 이후로 한동안 바닥만 보면서 다닌 적이 있었다. 그 작은 칼 조각이 뭐라고 나를 그렇게 작게 만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하루 종일 나와 같이 작업하던 기공 분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너는 뭐하다가 여기 왔냐?" "9급 공무원 준비하다가 왔어요." 기공 분은 한 숨을 쉬면서 다시 말했다. "그럼, 그냥 공무원 준비나 해. 이거해서 밥 벌어 먹기 힘들어." 나도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공무원에 미련 없어요. 저는 도배 할 거예요." 도대체 내가 어떻게 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나를 예뻐하던 기공 분도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영도야. 너는 이런 일이 안 어울려. 앉아서 생각하는 일이 더 어울려. 도배는 힘든 일이야."
나는 도배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배가 문제가 아니라 도배 작업을 힘들게 만드는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상한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아들, 엄한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는 장남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세상이 정해준 직업이었던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기도 했었다.
시험에 계속 떨어지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도대체 네가 하고 싶은 게 뭐냐?"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하고 싶다? 어느새 나는 내 몸에서 '나'를 지워버린 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내 몸에서 정작 지워버려야 했던 것은 세상이 원하는 대로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모든 것을 그만뒀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꼼지락거리면서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도배를 알게 됐다. 나는 곧바로 도배를 시작했다. 하지만 재밌는 도배는 나에게 낯선 단어를 다시 던져줬다.
눈을 비비고 제대로 확인해 보니 '비정규직'이라는 4음절이었다. 이제 나는 자유롭지만 '생존' 자체를 위해서 분투해야하는 몸이 된 것이다. 나는 일용직 노동자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단위로 일을 하면 그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아서 생활해야 한다. 물론 일이 없거나 사정이 생겨서 일을 못하면 그 날 일당은 없다. 심지어 내 주위에서는 열심히 일을 하고도 일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모두들 소장이나 반장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가면서도 악착같이 기술을 배운 뒤, 지물(인테리어 가게)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지물 일은 현장에 비해서 작업 환경도 낫고 일당도 높다. 그리고 일당을 떼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일을 계속 맡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말이다.
거기다 나는 당분간 다른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에는 현장에서 보일러를 따뜻하게 돌려주지 않는 이상 도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작년 겨울에 일이 없어서 60일을 쉬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아둔 돈으로 생활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겨울을 보냈다고 한다.
만약 이번 겨울에도 도배일이 없다면 나도 무슨 일을 하면서 겨울을 보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된다. 하지만 요즘 하고 있는 그 고민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두렵게 만들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나를 믿으며, 나 아닌 다른 누군가들을 다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하다보니까 어느덧 퇴근할 시간이다.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은 채 하단을 붙이다가 일어나려고 하니 허리와 무릎이 잘 펴지지 않았다. 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녹초가 된 모습으로 현장을 나왔다.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나 밖은 언제나 어둡고 춥다. 나는 출근하면서 걸어 나왔던 지하철역으로 다시 걸어갔다. 그리고 지하철 의자에 앉자마자 신나게 졸기 시작했다. 지하철 안이 따뜻해서 그런지 푹 졸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린 뒤, 이번에는 만원 버스로 갈아탔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동네까지 겨우 겨우 갔다.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이제야 몸이 무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도 반주라는 핑계로 술을 한 잔 하면서 늦은 저녁을 먹어야겠다. 그리고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따뜻한 이불 속에서 푹 자야겠다. 아주 푹~.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