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어떤 이들에겐 이제 낡은 말이고, 다른 어떤 이들에겐 여전히 불온한 말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노동'으로 보내면서도, '노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드물었던 것은 아마 그래서였을 게다. 그렇게 지내는 사이, 많은 게 변했다. '평생 직장'이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아예 사회적 신분처럼 통용된다. 생산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면, 문제의 대부분이 풀릴 것 같던 시절은 지나갔다. 어떤 생산직은 자신의 일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한다. '노동' 문제는 그만큼 복잡해졌다. 여기에 최근 이슈가 된 '복지' 문제까지 곁들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몸을 망가뜨리는 야근을 자청하고, 회사의 부당한 요구에 순응하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그동안 아예 없다시피한 상태로 방치돼 온 사회안전망이 배경이다. 제법 든든한 일자리를 지닌 이들도 일터에서 쫓겨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급격한 기술 변화는, 평생 일터에서 갈고닦은 전문성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킨다. 노동자들은 늘 불안하게 지내고, 이런 불안감은 우리 사회의 집단 병증이 됐다. 결국 '노동'과 '복지', 그리고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총체적으로 살펴야만 한다. 마침,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프레시안>에 새로운 연재를 시작했다. 실천과 이론 양쪽에서 두터운 이력을 쌓아온 은 연구위원의 연재가 우리 사회의 '노동'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
"어제 갑자기 불려가서 12월 31일자로 계약종료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작년 12월 30일 출근길. 반갑게 받은 친구의 전화에 갑자기 아득했다. 2008년 4월 7일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입사한 친구는 비록 기간제이지만 햇수로만 4년 가까이 일을 했다. 올해도 해당 분야 예산만 6억이며 작년 말 사업계획도 통과되었다. 근무 평점이 좋고 스스로의 일에 대한 애정이 커서 본인의 잘못이나 이직 의사가 없는 한 계속 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계약서 상 종료 이틀 전에 난데없이 구두 통보를 하고 이유를 정확히 알려주지도 않는단다.
"뭔가 납득할만한 이유는 있어야지." 친구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떨린다.
지난 4년간 공공부문의 기간제 증가율은 67.0%로 민간 부문 2.4%보다 2.8배 높다. 반면 정규직 증가율은 2.9%에 불과해서 민간부문 정규직 증가율 15.6% 보다 5.4배 낮다. 하청 등 아웃소싱의 비중도 민간보다 20% 정도 더 높다. 작년 12월 9일에는 공항철도 비정규직 5명이 선로보수공사 중 목숨을 잃었다. 올 초에도 계약종료 혹은 해고 소식이 들린다. 공공부문 고용이 해를 거듭할수록 나빠지지만 이 상황 어디에도 납득할 만한 이유는 없다.
"정규직 전환 계획은 종이조각일 뿐이야?"드디어 정곡을 찌른다.
2011년 11월 28일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발표했고, 공공기관 신규 채용자를 2010년보다 20% 이상 늘인다는 언론보도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32조 1항에서 "국가는 사회적 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노동법에는 임금이나 근로조건, 해고 관련 각종 보호조치가 빼곡히 적혀있다. 종이조각이겠느냐만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불현듯 14년 전인 1998년 12월이 떠올랐다. 우연히 7명의 친구가 한자리에 모였는데 그 중 5명이 길게는 10년 이상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다. IMF 경제위기로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때는 이유라도 분명하니 다행이었을까. 당시 모인 친구 중 두 명은 금모으기에 동참했노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그 겨울의 찻집에서 일어날 때는 조금만 버티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서로 격려했다. 그 겨울의 해고는 일시적일 것이라고 덕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 이후 매년 '명예', '희망' 등의 각종 이름이 붙은 구조조정이 인건비 부담이나 경영상의 이유라는 꼬리표를 단 채 손쉽게 이루어진다. 30명 이상 상시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 10개 중 최소 1개 이상이 매년 구조조정을 한다. 정례적 혹은 일상적 관행을 넘어설 정도로 규모가 커지면 언론에서는 '구조조정 한파'라는 제목을 단다. 작년 11월에도 그러했다. 신문에 알려진 기업만해도 금호건설, 대우건설, 신한금융투자, 삼성생명, 삼성카드, 삼성화재, 삼성증권, 우리은행, 농협, 하나은행, SC제일은행, 대한항공, 현대백화점 등 꽤 길다. 명단에 금융기관이 많은 이유는 "유럽의 재정위기와 금융당국의 수수료 규제 등 국내외 경영사정이 좋지 않아 내년 실적이 7% 이상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4대 은행이 2011년 10조원 이상의 이익을 냈다는 기사가 다른 면에 버젓이 실려 있지만 '그래도 구조조정을 하나?'라는 질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 자르기가 맨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는 사실 역시 외마디 비명일 뿐이다. 기업 사정이 정말 좋지 않을 경우 고용유지 노력을 해야하고 이를 위한 정부 지원이 있다거나 그와 같은 대책을 검토한다는 이야기도 물론 없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하지 않는다고? 사실과 다르다. 노동조합이 있는 상당수 기업에서도 일상적으로 사람을 자른다. 예를 들어 KT는 1998년부터 2009년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구조조정 인원만 2만 3487명이다. 최근 문제가 된 부진인력 퇴출 프로그램으로 그만둔 노동자까지 포함할 경우 그 인원이 몇 명인지 알 수 없다. 재직 중 숨진 노동자만 2011년 한해 15명이며 이 중 3명은 자살이다.
정규직이 이러한데 비정규직은 말해서 무엇하랴. 비정규직은 해고 대상 숫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구두나 문자메시지로 계약 종료를 통보받는 것으로 끝이다. 그 탓에 최근 수년 간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이런 법이 있습니까?"다. 헌법이나 노동법 어디에도 '이런 법'은 없지만, 지난 10여년 간 헌법이나 노동법 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법'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더욱 이상한 것은 오른손으로는 사람을 자르면서, 왼손으로는 사람을 뽑는다는 점이다. 올 1월 14일 나온 10대 그룹 투자계획이 그렇다. 삼성그룹 2만 5000명, LG 1만 5000명, 롯데 1만 3000명, 현대자동차 7500명, SK 7000명, 포스코 6700명 등등. 그러나 해당 기업에서 지난해까지 몇 개의 일자리를 명예퇴직 혹은 희망퇴직으로 없애고, 몇 개의 일자리를 아웃소싱이나 분사를 통한 비정규직으로 돌렸는지는 알 수 없다.
이처럼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 결과는 대기업 일자리 파괴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300인 이상 기업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의 23%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0년 현재 300인 이상 대기업 일자리는 전체의 11% 남짓이다. 반토막이 난 것이다. 성장을 해도 고용은 마이너스이고 성장이 곧 일자리 파괴이다.
그런데 계약 종료 혹은 해고 통보를 받은 친구에게 "너의 상황이 이 모든 과정의 일부분"이라 할 수가 없다. 친구가 아닌 그 누구에게라도, 수익은 쌓였는데 일자리 행방은 모연하고 2011년 경제규모 OECD 10위 성장률 2위라는데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 상황을 무엇이라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그 겨울의 찻집'을 웅얼거리다 '그 겨울의 해고'나 떠올리는 필자에게는 새해가 없다. 그냥 해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럴수록 새해가 간절하다. 누군가가 새해를 앗아간 것 같아 잠자리를 설치고, 일자리 파괴를 멈추는 새해가 혹시 올지 몰라 여전히 창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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