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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황금 주말에 목수가 되길 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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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황금 주말에 목수가 되길 원했을까

여섯 남자-두 여자, '목수열전 전시회'를 열다

전문가는 명사를 만든다. 사회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인구에 회자되다보면 유명(有名), 즉 이름을 얻게 되고 명사가 된다. 그런데 이 전문가집단의 전문성이라는 것의 속내를 파헤쳐보면 상당히 허전한 구석이 많다. 엄밀한 의미에서 전문업종이라는 것은 편(便)업종이라는 뜻이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진 직업이라는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학문에도 전공이라는 것이 없었다. 박사라 함은 모든 분야에 두루 통달한 사람에게 부여된 칭호다. 하지만 근대 학문은 전문화로 분화되고 또 이것을 잘게 쪼개 또 분화시켰다. 예술학박사가 있는데 음악학박사도 따로 존재한다. 이것도 엄밀하게 따지면 음악만 아는 세(細) 편사라는 뜻이다.

한 쪽으로 극도로 치우친 학문의 세계처럼 현대사회도 전문화의 이름으로 각개 분화했다. 따라서 현대적 삶이란 첨예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생활 패턴을 개개인에게 강요하는 형국으로 진화되어왔다.

이런 편업(便業)에 의해 깨어진 삶의 균형을 다시 제자리에 놓는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생활리듬을 쏠림현상으로부터 본래적 균형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머리도 쓰고 손도 쓰면 인간본래의 생명감과 리듬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호모사피엔스가 수십만 년 동안 해온 생존의 필수적 행동양식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무언가 오래되고 원초적인 일을 해보는 것인데 여기에 목수만큼 적당한 일이 없을 것이다.

머리도 쓰고 손도 쓰면 인간본래의 생명감과 리듬을 되찾게 돼

그래서 사회에서 전문성을 나름대로 인정받고 사는 여섯 남자, 두 여자가 목수가 되기를 자처했다. 화가이자 서울대 미대교수인 김병종과 전 숙대교수이자 문화비평가인 홍사종, 아동심장전문의이자 현 국회의원인 박인숙, 여성농업CEO로 이름을 날리다가 국회의원이 된 윤명희, 벤처사업가이자 명지대 교수인 최환수, 가정의학전문의 윤대웅, 국내최대의 석재회사를 운영하는 (주)동아석재의 이영권, (주)에이스캠 임병우가 이들이다.
▲ 좌로부터 윤대웅,이영권, 홍사종, 윤명희,박인숙 연귀맞춤 연습장면. ⓒ홍사종

수십만년 동안 DNA속에 축적된 삶의 양식 중 가장 핵심적인 손기술이 자연의 일부였던 나무와 만나며 결실을 맺는 주말목수열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목수열전은 현생인류가 DNA의 GPS가동장치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이들로부터 교장선생으로 추대된 김병종의 말에 의하면, '광속의 시대에 나무의 온도 속에 자신의 체온을 교감시키면서 노동의 가치와 느낌의 미학 그리고 자연의 숨결을 느껴보는 자리' 이기도 했다.

칼럼니스트 조용헌은 운동이 노동의 가치보다 상위인 시대에 노동의 가치가 운동보다 한 수 임을 증명해주는 작업이 목공이라고 말한다. 같은 땀을 흘리는 운동은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노동은 결과를 통해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올 1월부터 5월까지 경기도 화성 옥란재에 모여 열공

'옥란재 목공학교'는 올 초 1월 20일부터 5월 16일까지 경기도 화성에 있는 오래된 가옥 옥란재(현재는 옥란문화재단 귀속)에서 이루어졌다. 수업료는 따로 받지 않았다. 대신 주최 측인 옥란문화재단에 다문화가정 및 농어촌지원을 위한 사업에 쓰여 지도록 각자 능력껏 기부를 한다.

오래된 집터를 감싼 넓직한 정원 한 귀퉁이에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진 목공방이 이들의 놀이터다. 소설가 박태순은 옥란재의 이 넓은 정원을 '한국전통의 원림문화를 오늘의 산업사회에 어떻게 계승할 수 있는지 살필 수 있게 하는 참으로 소중한 녹색의 장원'이라며 극찬한 바 있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편업에 시달리는 전문가들을 위해 주어진 천혜의 힐링공간이다.



▲ 옥란재 전경모습. 현재는 공익재단 옥란문화재단 소속이다. ⓒ홍사종

비닐하우스 바닥은 석재회사 대표인 이영권이 화강석 직접 재단해서 깔았다. 강사선생님은 영등포에서 목공학교를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인자한 소목장 서정재를 초빙했다.

재료는 오래된 집 옥란재가 세월의 퇴적을 못 이겨 수리를 받을 때 나온 100여년 가까이 풍상에 시달렸던 문짝 등 고재와 교장선생인 김병종이 오랫동안 보관해온 수백 년 된 금강송 우물마루 귀틀을 요리저리 켠 송판으로 준비했다. 김교장은 자신 교장직 취임 배경이 비싼 고재를 재단에 헌납하고 얻은 매관(賣官)의 산물임을 주위에 밝혀 좌중을 웃겼다. 서정재소목장은 이렇게 구하기 힘든 희귀한 고재로 아마추어 목수들이 작품을 만드는 것에 반대했다.

한 번 잘못 사용되는 순간 사멸하는 귀한 재료가 아깝다는 취지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고재(古材)인지 신재(新材)인지 구분조차 못하고 그 멋과 기품을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곧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목수들은 나무를 깎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오래된 금강송 목재와 풍화되어 골이 패인 소나무 고재의 진가를 금세 알아차렸고, 목공기초를 다 터득하기 전까지 재목에 손대는 일을 삼갔다. 나무가 살아온 수백 년 세월을 사서 자신들의 생활공간 안에 넣고 음미해 보고 싶은 욕심들은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렸지만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병종 교장, 다른 작품 훈수에 열 올려

서울대 미대교수인 김병종은 화단에서 권위 있는 화가이며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고 학생들에게 미술철학과 회화를 지도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무언가 자연의 원초적 질감인 나무와의 만남을 갈구해왔다. 집에는 오래된 고재로 만든 전각뿐만 아니라 정갈한 차탁 등 목공작품들이 그의 손 때을 입고 있지만 자신이 직접 만든 작품은 없다. 교장 감투를 쓴 것도 화가가 아닌 목수에 대한 숨은 욕심이 발현했음이다.

그러나 김 교장은 옥란재에 와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훈수하고 품평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쏟았다. 훈장습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이 태도는 학기가 끝날 때가지 초지일관 지속됐다. 작품도 아주 단순하고 투박한 몇 점 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휴식시간이면 교장선생으로서의 훈화를 잊지 않았는데, 학생들은 실기실습보다 교장선생의 강화를 더 즐기는 분위기였다.

"죠지 나카시마라는 일본계 미국인 목수가 우리나라에 디자인 가구 선풍을 불러일으킨 이래 가구는 소목장이나 장인들의 손에서 공예가나 디자이너의 영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 결과 순수한 목수들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디자인 위주의 가구들이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다탁이나 소반등 목가구의 참맛은 역시 전통예인이나 목수들의 손을 통해 나온 것들이 더 정겹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아사카와 타쿠미는 바로 조선 목가구의 그 고졸하면서도 따뜻한 맛에 매료되어 예찬의 책을 쓰는 것을 넘어 조선인으로 귀화하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 옥란재 닭장 카페에서 줄거운 다담. ⓒ홍사종

옥란재 닭장 카페에서 따듯한 차 한 잔의 훈기와 함께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윤대웅은 연못가를 떠돌며 홰를 치며 우는 수탉소리조차 정겹다고 외쳤다. 이야기소리위에 또 얹혀 지는 소리들. 이웃집 닭들의 울음소리, 대패질 소리, '쓱쓱' 정겨운 톱질소리, 정막을 간헐적으로 두들기는 망치질소리. 목수놀이는 이렇게 매주 일요일 마다 이어졌다.

개인병원의 의사 윤대웅의 일상은 그야말로 숨 막히게 돌아간다. 아침 열시부터 저녁 7시까지 끊임없이 내원하는 환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주어진 점심시간도 오후 1시부터 2시까지인데 이마저도 편히 보낼 틈이 없다. 기다리는 아픈 환자들을 때문에 지인들과의 만남 중에도 황망하게 자리 뜨는 일이 다반사다.

삶이 이토록 척박하고 숨 막히기 때문에 그가 빠져서 즐기는 취미도 대부분 의학과는 거리가 먼 음악 감상이다. 클래식에 푹 빠져서 바하는 물론 말러, 글렌 굴드에 이르기까지 클래식애호가이기도 하지만 오디오 수집가로 소리의 멋과 맛을 즐기는 마니아가 됐다. 최근에는 세계 각국의 음악 예를 들면 장사익을 열혈이 좋아하는가하면 우리나라와 서정적 정한이 비슷한 포르투갈의 파두음악이 좋아 포르투갈의 국민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LP음반까지 사들이고 있고 이를 들어보라고 지인에게 열심히 선물도 한다. 음악이라는 숨구멍을 통해 그는 단조로운 일상의 돌파구를 찾는데 이건 마치 북극빙하의 얼음구멍에 고개를 내밀며 산소를 빠는 바다표범의 고단한 삶을 연상시킨다.

"환자를 기계적으로 대하지 않기 위해서 영혼의 맑은 기운이 더 필요하지요" 그가 음악을 만나고 뭔가 다른 일을 찾고 있을 때 주말 목공학교가 확 눈에 들어왔다.

▲ 맨우측 윤대웅의 작업모습. 윤대웅은 대패질 보다 고재를 닦는 수세미질 전문이다. ⓒ홍사중

매서운 추운 겨울, 부인과 함께 밤새도록 고재원목을 닦고 또 닦은 의사 윤대웅

이거다 싶어서 톱과 끌과 망치를 잡았는데, 이 매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매서운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3월 수업일 하루 전에 그가 부인과 함께 옥란재로 들이닥쳤다. 100여년 풍화된 대문짝 하나를 얻고 무언가 작품구상에 열중했던 부부는 철수세미로 밤새도록 때로 얼룩진 나무의 깊은 결을 닦아내고 또 닦았는데 백년세월이 몇 시간 만에 때를 확 벗고 나타날 리 없다. 다음날 학교가 열릴 때까지 퀭한 눈으로 나무와 씨름하는 두 부부를 보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무언가 만들어야하는 원생인류의 원초적 눈빛과 만났다. 노력한 결실 때문에 그의 출품작은 고재대문으로 만든 6인식탁과 큰 탁자 등 대작 두 개와 차탁 하나다.

명지대 컴퓨터공학과교수이자 정맥인식자물쇠를 만든 벤처기업가 최환수는 기러기 아빠다. 역시 벤처사업가인 아내와 중학생인 아들을 미국에 보내놓고 주말 여가는 골프나 술로 보내던 중 목공학교에 합류했다.

경상남도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최환수의 꿈은 뙈기만한 땅이라도 구입해서 농사를 직접 지어보는 것이다. 아기 굴삭기 하나 장만해서 이리저리 흙장난도 해보고 직접 기른 채소며 양봉 등 먹거리로 공학도에게 부족한 자연속의 자족한 삶을 꿈꾸어왔다.

공학도와 농사꾼은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직업 같지만 최환수의 농사일을 향한 꿈은 한 쪽으로 치우쳐 간 자신의 삶의 불균형을 치유하는 치료제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어디 농사지을 땅 없습니까?" 농지원부를 만들고 본격적인 농토구입을 위해 첫 번째로 생각한 방법이 임차농이었다.

"수지가 안 맞을텐데?" 주변에서 말려도 그에게 있어 땅이란 생명의 본질이자 영혼의 원초적 교감터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벤처기업가 최환수, 장모로부터의 칭찬이 미국간 아내에게 전달돼

"도시의 시멘트공간이 아닌 땅이 있는 시골에서 목수일은 내 전생의 직업 같은 느낌이 든다."

최환수는 아주 특별한 예비목수다. 아예 청담동 그의 집엔 각종 목공기구가 가득하다. 옥란재 주말목수열전을 소화하면서도 대패, 톱, 줄자, 샌드페이퍼, 등을 차에 싣고 다니면서 자신의 집 가구 리모델링까지 해냈다.

▲ 대패질의 달인 최환수의 대패열공모습. ⓒ홍사종

주말 목공학교에 다니기 전에 그는 다 헤어진 메리아스같이 존재감이 남루해진 우리시대의 대부분의 기러기 아빠들처럼 메마르고 쓰디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초보 목수 일을 배우자마자 그가 눈여겨 본 것은 옥란재에 켜켜이 보물처럼 쌓여진 은행나무 판재다. 이것이 칼도마로 변신되어 한 집에 사는 장모께 바쳐지자마자, 장모의 감탄은 멀리 미국에서 맹모지교를 펼치고 있는 아내로까지 전달됐다.

"엄마가 최서방 칭찬을 그렇게 하는 걸 첨봤다" 아내의 응원까지 보태지자 그의 목수 열공은 참죽나무, 소나무고재 차탁에서 고재로 만든 콘솔에까지 일취월장 진보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와 일만하고 살았던 남편이 나이 먹어서 막상 놀려고 했지만 마땅히 노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연고로 잘 놀기보다 '막 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주말목수와 같은 건전취미에 푹 빠졌다니 아내로서도 일단 안심일 수밖에.

최환수의 주특기는 대패질이다. 신출귀몰한 그의 대패질 솜씨덕분에 그는 어깨 힘이 달리는 여성목수들의 지원요청을 제일 많이 받았다.

몸은 분주했지만 마음속에 활화처럼 타오르는 창작에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한 국회의원 박인숙은 최환수와 의사 윤대웅의 도움과 위로 속에서 목공학기를 마쳤다. 아산중앙병원의 아동심장과 의사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출신이고 어렸을 때부터 고전무용을 익혔던 박인숙은 소녀 같은 호기심으로 새로운 것들을 향해 항상 눈을 반짝이는 여자목수다.

"제일 해보고 싶은 일이었어요" 목공에의 험난한 길을 아주 쉽게 보았는지, 출석율도 좋지 않은 그녀는(사실 지역구행사 등 그가 치러야 할 공적인 행사만 해도 감당이 어려울 정도다) 다른 사람들이 공들여 다듬어 놓은 고재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의사 윤대웅이 2월의 추운 어느 일요일 하루 종일 닦아놓은 문짝 하나를 증여받아 예쁘게 만든 재봉틀 탁자와 단순하게 정렬된 참죽나무 소나무고재로 만든 차탁이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그녀의 작품이다.

국회의원 박인숙의 목수철학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 것이다. "둔해도 우직한 그대로 튼실한 가구면 됐다"는 그의 생각은 일찍이 얻은 '바보 의사 박인숙'이라는 별명과 딱 들어맞는다. 바보의사 출신 박인숙의 프리즘을 통해 훔쳐보는 세상읽기도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성범죄예방 혹은 처벌을 위한 세계 여러나라의 법률과 제도 특강도 유익했다.

▲ 국회의원 박인숙의 엉성한 대패질. 지도교수 서성재가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홍사종

자신의 바쁜 지역구 일정 때문에 조금 성실하지 못했던 박인숙 목수와는 달리, 농식품업계 비례대표 의원인 윤명희는 미국유학에서 갓 돌아온 둘째 아들과 함께 열심히 목수열전에 참여했다. 그녀는 현미 쌀을 일 년 내내 갓 찧어낸 쌀처럼 먹을 수 있는 현미저온저장고까지 발명한 발명가이자 농업CEO출신인데 남다른 창의력을 반짝이며 고재창고를 들락거렸다. 그가 만든 작품은 조금 긴 차탁 한 개와 김 교장선생이 매관(賣官)을 위해 내놓은 고재를 잘 깍고 다듬어 만들어낸 콘솔 하나다.

묵묵히 작업에 임하는 태도며 나무를 대하는 진지한 자세가 특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윤명희의 작업대에는 늘 도우미를 자처한 남성목수가 대기하고 있었다. 엉킨 땀 냄새와 나무향기가 묘한 쾌감으로 다가온다고 말한 그녀는 오랜만에 잊었던 노동의 소중한 가치를 되찾음에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윤명희도 목공 기교보다 나무 결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감에 도취된 듯, 아주 단순한 은행나무도마 몇 개, 용도불명의 참죽나무 판재 두 어 개를 깎아 집으로 가져갔다. 또 참죽나무 고재를 편편한 접시로 깎고 다듬어서 소녀처럼 나무 결이 나무 예쁘고 아름답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녀는 금강송 고재 송판을 얹은 콘솔 이외에 차탁 한 개를 창작해냈다.

▲ 윤명희 모자의 작업모습. 목수 부목수 콤비로 학기내내 활동했다. ⓒ홍사중

지도교수인 서정재 소목장의 눈에 목수가 되기에 글러 보이는 두 사람 있다. 기업인 동아석재 대표 이영권과 에이스캠 대표 임병우다.

이영권, 김병종 교장과 기웃거리며 탐탁지 않은 안목(?)으로 품평만 일삼아

이영권은 자신의 말처럼 감독형이다. 일찌감치 기본기로 차탁 한 개를 뚝딱 만든 그는 김병종 교장과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탐탁지 않은 안목(?)으로 품평을 일삼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기 일쑤였다. 옥란재 고재창고를 뒤적이며 좋은 재목들을 골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머릿속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곤 했는데 본인이 직접 실현해낸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마지막 책 읽는 습관 고양하기 위해서 서안 한 개를 만들겠다고 설계도를 그려왔는데, 아무도 그가 못을 쓰지 않고 짜맞춤 가구로 그 어려운 서안을 완성해 낼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는 집채만 한 돌덩어리를 떼 내어 파는 일이지만 동아석재의 석산 현장에 가보면, 그와 그의 부친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돌조각과 석빙고가 눈에 띈다. 후에 돌을 캐낸 거대한 석산자리에 문화공간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 그의 가슴속에는 늘 환경본존과 문화에 대한 꿈이 자리 잡고 있다. 돌장수가 임업인으로 등록되어 나무심기에 앞장서고 또 석산주변의 지역민들을 일본 석산개발현장인 나오시마에 초대해 안도 다다오가 만들어낸 거대한 문화공간을 시찰하게 해준 사연도 이런 배경이 만들어냈음이다.

'돌과 나무는 무생물과 생물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두 질감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너무 편안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아마 자연 그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돌과 나무를 향한 그의 예찬이다. 아무튼 서정재소목장의 도움으로 감독형 목수인 이영권의 서안도 무사히 완성됐다.

환경기업인 임병우는 욕심이 없는 목수다. 자신에게 주어진 오래된 소나무 고재를 열심히 다듬다가 옆에서 다른 목수들이 재료를 탐내면 자신의 욕망을 슬그머니 접곤 했는데 양보가 지나쳐 이번 전시회에는 출품작이 신통치 않다.

"나무를 다듬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잊고 살았던 노동의 즐거움만으로도 안락을 느낄수 있다는 임병우는 예수님의 도량을 지닌 목수다.

"목수를 거쳐야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누군가가 외친 지론처럼 도 닦는 수준으로 묵묵하게 깍고 다듬었지만 정작으로 내놓은 작품은 나무못을 친 탁자 하나와 고재차탁 한 개다. 중학교부터 말썽을 부리다가 중국에 유학을 보낸 아들이 개과천선하여 중국 명문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게 된 뒷배경도 그의 기다림과 사랑, 예수님 같은 덕성에 힘은 바 컸다. 거칠지만 그가 깍은 나무의 결속에는 아빠 임병우의 신산했던 지난날의 아픈 속내들이 감춰져있어 나무가 더 좋아졌다는 목수 임병우.

"노동과 땀을 통해 인생에 대한 성찰에 이르는 작업이 아무 목수가 아닐까요" 주말골프를 포기하고 목수열전에 참여한 그의 특별한 변이다.

▲ 임엽우 작업모습. 자신 몫의 재목을 늘 타인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남은 짜투리 목재로 작은 탁자 하나. ⓒ홍사종

편업에 시달린 전문가집단인 김병종. 홍사종. 윤명희. 윤대웅. 박인숙. 최환수. 임병우.이영권 여덟 명의 목수가 여는 [명사들의 木手列傳] 전시회는 7월 10일(수)부터 12일(금)까지 경기도 과천 송와미술관(02-734-1229)과 7월 10일(수)부터 20일(토)까지 인사동 상상갤러리(02-733-0073)에서 동시에 열린다.

두 장소 모두 다 작품을 판매한다. 물론 자신의 이니셜 불도장까지 찍고 소장하고 싶었던 작품들이지만, 김병종 교장의 제안으로 다문화가정지원사업에 기부하기로 뜻을 모았다. '기부판매로 5개월간의 노력과 정성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 또한 사실이지만 목공작업을 통해 배운 것은 더 내려놓고 주변을 바라보자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이들. 여건만 허락한다면 자신만의 목공실을 갖는 게 각자의 소망이다. 잔잔한 외침이 왠지 우리사회에 목수열풍을 예감케 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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