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민낯은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이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해 운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사나 판사 그리고 공무원들에겐 떡값과 퇴직 후의 자리를 지원했다는 의혹도 계속되고 있다. 언론사에는 막대한 광고비를, 지식인들에게는 연구비를 지원해 무시 못 할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 관련 기사 보기 : 김용철 '삼성 비자금' 양심선언의 최대 수혜자는 '조·중·동')
이처럼 대중적인 이미지와 실제 힘 모두에서 삼성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삼성은 거의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고 승승장구했다. 누가 삼성을 대놓고 비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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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금 삼성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에 비해 그 힘이 만들어진 과정은 위에서 말한 유착과 조종 논란을 빼놓고는 말하기 어렵다. 2004년에 방영된, 현대와 삼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드라마 <영웅시대>는 그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듯이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다.
옛날의 일을 들추는 것이 불편하다면 최근의 일만 살펴보자. 태안 앞바다를 기름으로 도배하고도 보상을 차일피일 미루다, 주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두고 본 기업은 어디인가? 젊은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는데도, 여전히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기업 활동에 필요한 수리·점검 서비스(AS)를 하청으로 해결하고 노동자들의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착취하는 기업은 어디일까? 비정상적이고 돈 냄새만 풍기는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기업이 삼성이다.
사실 삼성이 쌓아올린 자산은 이건희 일가가 아니라 삼성에 속한 노동자들, 삼성그룹에 속하지는 않지만 삼성이 판매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수리하는 하청 노동자들의 피땀이다. 신화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노동자들이 삼성을 일으킨 영웅들이다. 삼성의 자산은 협력 업체를 후려치고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돌려 쌓아온 부이기도 하다.
곽정수의 책 <재벌들의 밥그릇>(홍익출판사 펴냄)에 따르면, 삼성전자 무선 사업부가 2002년에서 2005년까지 4년간 국내 부품 업체들을 상대로 단가 인하를 한 규모는 모두 3조28억 원에 달하며, 이는 같은 기간 중 영업이익 10조7925억 원의 28%를 차지한다. 이런 기업이 있는 한 그 사회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를 읽어보면, 삼성이 어떤 기업인지가 잘 드러난다. 이 책은 20만 부 넘게 팔렸다. 그런데 왜 변화가 없을까? <삼성 왕국의 게릴라들>(프레시안 북 펴냄), <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후마니타스 펴냄),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삶이보이는창 펴냄), <삼성을 생각한다2>(사회평론 펴냄), <민주주의 체제하 '자본의 국가지배'에 관한 연구>(한울 펴냄), <굿바이 삼성>(꾸리에 펴냄),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아카이브 펴냄), <먼지 없는 방>(보리출판사 펴냄), <삼성에는 없는 단 한 가지, 사람냄새>(보리출판사 펴냄), <환상>(오월의봄 펴냄) 등 많은 책이 삼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삼성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을까? 이제는 단순히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알면서도'라는 물음이 우리 앞에 던져진 셈이다. 왜 사람들은 알면서도 삼성의 문제점에 대해 눈을 감을까? 문제점보다 장점이 더 많기 때문일까? 왜 우리는 신화에 빠져 눈앞의 현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현실에 관심을 두지 않을까?
삼성에 지배당한 일상
우리 일상은 삼성에 노출되어 있다.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 SDS, 에스원, 제일기획,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전기, 삼성건설, 삼성항공 등 삼성의 이름을 단 많은 기업이 있다. 이런 기업들은 우리 일상에 실감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어떨까? 삼성의료원에서 태어나 삼성전자의 제품을 이용하며 삼성의 급식을 먹고 자란다. <중앙일보>나 <일간스포츠>를 읽고 갤럭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삼성 노트북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인터넷을 사용한다. 뚜레쥬르에서 빵을 사고 CGV에서 영화를 보고 이마트에서 쇼핑을 한다. 결제는 삼성카드로 하고, 삼성자동차를 타고 보험은 삼성생명이나 삼성화재, 애니카로 해결하고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에 간다.
이 외에도 성균관대학교나 삼성의료원, 호암미술관, 리암미술관 등이 삼성의 것이고, 보안업체인 에스원은 장례 사업에까지 진출하려 했다. 그러니 삼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내가 일상에서 누리는 것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불편하다. 삼성이 다루는 상품과 서비스가 많아질수록 우리 일상은 점점 더 삼성에 지배당하고 그들에 휘둘릴 뿐 아니라 삼성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준다.
<황금의 제국>과 같은 드라마에서 분노보다 긴장감이나 쾌감을 느끼는 우리의 감각은 내 몸을 떠난 감각이다. 이렇게 자신을 배반하는 감각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흔히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인간은 숭고함을 느낀다고 한다. 삼성의 민낯 앞에서 우리는 분노하지 못하고 경외감을 느낀다. 비슷한 사람들과 연대하기보다는 그들에게서 멀어지려 하고 그들에게 가해진 폭력에 눈을 감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문제가 터질수록 우리의 일상은 현실적이 되기보다 더욱더 신비화된다.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모두가 공모자로 변한다.
| ▲ 1월 29일 경기도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환경부 공무원, 경기소방재난본부 등으로 구성된 합동 감식반이 현장 감식을 벌였다. ⓒ연합뉴스 |
'삼성' 때문에 위태로운 우리의 삶
이런 무관심과 공모가 우리의 삶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들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올해 초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는 몇 차례 사고가 있었다. 1월에 발생한 사고에서는 불산(불화수소산)이 누출되어 한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4명의 노동자가 다쳤다. 문제는 이렇게 심각한 사건을 삼성이 은폐시켰다는 점이다. 삼성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신고를 했다. 그 공장 주변에는 수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관련 기사 보기 : 삼성 '불산 누출', 사람 죽고 나서야 외부에 알려)
더 문제인 것은 해당 사건 이후에도 이 공장에서 잇따라 사고가 발생(5월 2일, 앞선 사고 배관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잔류 불산이 흘러나와 하청 노동자 3명이 다쳤음-편집자)하였지만 삼성 측의 공식 발표 외엔 사고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수만 명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일인데도 정부나 삼성은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삼성은 공장의 탱크룸 안에 불산가스가 가득 차 대형 송풍기를 틀어 외부로 유출한 다음 작업을 마무리했다. 유독가스는 고스란히 지역 생태계와 주민들의 몫이 되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공장 주변의 주민이나 위험하긴 마찬가지이다. (☞관련 기사 보기 : 삼성전자, 대형 송풍기로 불산 가스 외부 배출)
요즘 마을 만들기가 유행인데 마을 옆에 이런 공장이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아름다운 마을이 하루아침에 폐허로 변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와 관련한 정보를 구할 수 없다. 누가 우리의 삶을 지켜줄 것인가?
그래서 삼성을 외부에서 감시할 뿐 아니라 삼성을 내부에서 통제할 힘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힘은 노동조합에 있다. 삼성이 노조를 그토록 거부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변칙적인 지배 구조가 통제당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변칙적인 순환출자구조를 가진 삼성을 통제하려면 안팎의 힘이 뭉쳐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삼성이 한국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도 우리를 파괴하고 있다. '삼성'이란 숭고함에 짓눌려 우리의 존엄을 갉아먹고 있다. 다행히도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10일 출범한다. '제일 센 자'를 바로잡을 때 다른 '센 자'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삼바(삼성을 바꾸자!)춤도 춘다고 한다. 지금 이때를 놓치지 말자.
* 필자는 오는 10일 공식 출범하는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회원이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삼성이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경영을 하도록, 공공의 눈으로 삼성을 감시하기 위한 단체다. (☞ 삼성노동인권지킴이 후원 바로 가기)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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