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왠지 더 자주 스승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이 마흔 넘고, 늘 젊어보이던 은사마저 정년퇴임을 하신 이유 때문인 듯하다.
학부 때부터 김윤식 선생님(이하 존칭 생략)의 수업을 몇 학기 들었다. 그 수업들 중 일부는 '3대 명강' '5대 명강' 같은 명성을 얻어 인문대생은 물론, 책 좀 본다는 타 단과대학의 학생들도 필수 코스로 거쳐 가는 것이었다. 수업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는 젊은 시절 미남에 옷도 잘 입었고) 특히 유명한 것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독설이었다.
그는 종종 수강생들과 국문과 학생들에게 "무식한", "쓰레기 같은", "너절한" 같은 폭언(?)을 선사했다. 그것들은 그의 어떤 본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즉 경남 지방 남자의 무뚝뚝함을 원료로 하고 또 그것과는 별도로 어딘가에 깊이 박혀 존재하는 예민한 자의식이 버무려진, 그리고 다시 이렇게 가능한 타인의 어설픈 짐작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짧고 강한 표현들이었을 것이었다.
"제대로 된 집안의 자식이 인문학을 할 리 없다"든가 "문학 나부랭이" 같은 말은 문학 따위에 관심 갖는 학생들에게 김윤식이 해주는 '일반 선물' 쪽에 속했다 할 수 있고, 아직 미숙한 국문학 전공자들을 위한 맵고도 둔중하여 충격적인 조언이나 비평은 늘 또 따로 있었다. 그 말들은 때로 강밀도가 지나치거나 수용자 측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을 경우, 망외의 효과를 발하기도 했다. 학생은 정말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그 자리에서 바로 눈물바람을 하기도 했던 것이었다.
당연히, 그런 독설들을 들으며 강의실에 앉아 있던 때가 가끔 그립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어떤 들을만한 사람한테 욕설을 들을 때 유발되는 매저키즘적 쾌감과 연관되며(마치 음식점을 경영하는 어떤 '욕쟁이 할매'들로부터 욕을 들을 때의), 다른 한편 그런 모멸적인 언어를 통해 "문학 나부랭이" 따위에 목을 맬 자로서의 자의식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생성된 상황에 대한 회감이기도 하다.
1980년대(간혹 90년대) 강의실에 앉아있던 '싸가지' 없고 이념에 들린 20대들과, 그런 젊은 것들을 가르쳐야 하는 예민하고 팔팔한 문학 선생의 자의식과 정치의식의 합주 속에서, 신랄하고도 어쩌면 낭만적이라 할, '문학 정신'의 사도-매저키즘적인 주고받음은 그렇게 성립됐을 것이다.
그는 내가 수업시간에 읊은 이런저런 발표문 뿐 아니라 학위 논문의 공식적 심사자이기도 했다. 심사 과정에서도 치명적인 격려와 질타를 들었다. 물론 그것은 연구자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그러니 애증이나 나름의 할 말이 없다고 말할 수 없겠다.
하지만 나는 명함도 못 내민다. 당장 그의 직접 '지도학생'들이 겹겹 있고, 또 셀 수 없이 많은 (간접적인) 제자들이 있을 뿐 아니라, 허다한 (무)의식적 김윤식 에피고넨들이 있다. 어떤 국문학자들의 경우는 논문의 목차나 서론의 몇 문장만 봐도 그들의 '에피고넨-됨'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들의 탐구 주제와 문학사에 대한 상 자체가 김윤식이 그어놓은 경계나 파놓은 참호 안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 틀은 크고 깊어 벗어나기 쉽지 않다.
| ▲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김윤식 지음, 그린비 펴냄). ⓒ그린비 |
1.2.
그 자신의 회고 작업 중에서도 가장 뚜렷해 뵈는 것은, 2012년 간행된 <내가 읽고 만난 일본 - 원로 국문학자 김윤식의 지적 여정>(김윤식 지음, 그린비 펴냄)이다. 그러나 8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을 그의 '풀 버전 자전'으로 보긴 어려울 듯하다. 평전이든 자전이든 그 자체로 더 써질 여지가 있으며, 또한 그가 여전히 '현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가 다른 데서 거의 이야기하지 않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 책은 김윤식에 대한 일본 문학의 영향(이 문제는 2000년대 초에 있었던 표절 논란과도 직결돼 있다)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이다.
이 답변의 풍경은 장관이라 할만하다. 남한의 1920년대나 1930년대 생의 상당수 지식인·엘리트는 민족주의자이면서 동시에 '현해탄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마치 박정희나 황용주도 그랬듯이). 이는 다른 세대로선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며, 때로 '친일' 같은 코드로 타매·비판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세대에게는 처음부터 주어진 '선험'과 숙명적인 것이었을 테다.
그런데 콤플렉스나 영향 자체가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것은 아니며, 외려 그것을 감추고 없는 것처럼 하는 것이 더 문제였다. 해방 이후 현대 한국 문화사는 그런 문제를 줄곧 노정했고, 나는 다른 데서 그것을 '은밀한 모방과 중역의 역사'라 칭해 본 적이 있다. 이는 현대 한국 민족주의의 전개 과정 뒷면에 객관적으로 가로 놓인 그늘이다.
| ▲ <내가 읽고 만난 일본>(김윤식 지음, 그린비 펴냄). ⓒ그린비 |
현대 한국 문화사에서, 이 "내가 만난 일본"을 '우리가 만난 일본'이라 확장할 수 있었던 단계와 그렇지 않은 역사적 단계가 있는 듯한데, 이 문제는 각도를 바꿔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제국의 문물에 대한 성찰 없는 수용이 횡행하며 항상 식민지적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앎과 학문장의 주체 문제를 떠올려보라.
어쨌든 <내가 읽고 만난 일본> 같은 장대한 회고와 고백은 쌓아올린 세월과 업적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으니까 가능한 것이었다고 본다. 금년에 나온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도 이런 자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김현(vs 백낙청) vs 김윤식
내가 구체적으로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에 대해 뭔가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김현 덕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김현의 입을 빈 김윤식의 자기 평가 때문이다.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은 '한국문학사를 관통하는 다섯 유형의 '라이벌 의식'을 그려낸다'는 구도로 짜여 있다. 그 다섯이란, ①초기 국문학자 양주동과 조윤제의 라이벌 의식, ②김수영과 이어령 사이에서 벌어진 1960년대의 '불온시 논쟁', ③<한국문학사>(1973년, 이후 1996년 민음사에서 다시 펴냈다-편집자 주)를 공동집필한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걸은 '실증주의적 정신'(김윤식)과 '실존적 정신분석'(김현)의 관계, ④<문학과 지성>과 <창작과 비평> 사이의 라이벌 의식, ⑤ 거인 김동리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넘어서고자 했던 이문구와 박상륭 등이다.
이중 1·2·4의 항목은 김윤식 자신으로부터 이미 들어보았거나 다른 연구자들도 주목해왔던 것으로, 이젠 그 자체로는 별로 흥미롭지 않은 주제들이다. 또한 이 '라이벌'들의 '인정욕망'은 책에서 곧잘 해당 인물의 지연·학벌·제도·가문 등으로 환원되며, '인정투쟁' 또한 속된 세속적인 권위나 공명심을 향한 욕망과 동일시되고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물론 이 모두를 어떤 글쟁이와 지식인의 '운명'이라 간주하고, 기꺼이 그런 운명에 투신한 자로서의 자의식을 겹쳐놓는 어떤 장관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라이벌'들의 '인정투쟁'을 질료로 한국 문학사가 (재)해석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공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한국문학 연구자와 독자가 새로 숙독하고 감상해야 할 대목이 분명 있었다. 바로 3과 (주로 백낙청을 다룬) 4의 일부였다. 이들은 김윤식과 그 자신의 '라이벌' 김현 및 백낙청을 다룬 대목들인 바, 특히 3에서 김현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쓰고 말한 것에 책의 핵심이 있다고 보인다. 거기에서 김현에 대한 김윤식의 대타 의식이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가 솔직하게 발화되고 있다.
결국 이 책은 한국문학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서라기보다는, 또 다른 버전의 김윤식 자신에 대한 책이며 그럼으로써 1960년대 이후 세대와 한국 현대문학사에 관계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 ▲ <행복한 책읽기 / 문학 단평 모음>(김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
결정적으로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이 흥미롭고 문제적인 것은 (김윤식이)"진부하고 지겹다"는 김현의 비판을 일일이 인용하고, 또 그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변호론을 덧붙였다는 점이다. 우선 김현의 "매몰차게 물아붙인" 김윤식 비판을 들어보자.
김윤식의 <우리 문학의 안과 바깥>(성문각, 1986)에는 예전에 표명한 태도들이 거칠게 되풀이 되고 있다. <이광수의 그의 시대>에 대한 회고담이 제일 진솔하고 읽을 만하다. 그의 내면의 무의식은 작가와 세계가 부딪치는 자리에 있지, 그 앞이나 뒤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의 문체를 이상하게 과잉-서정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그의 실증주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다. - <김현 문학전집 15>, 21쪽
김윤식의 <우리 소설과의 만남>(민음사, 1986)을 공들여 읽다. 그의 가장 빛나는 대목은 자기 직관에 그가 유보 없이 매달릴 때이며, 그가 가장 어설픈 대목은 원론에 집착할 때이다. 원론을 지탱하고 있는 원칙들의 의미는 설명하지 않고 실증적인 사실들만을 나열할 때, 원론은 그 관여성을 잃기 쉬운데, 그의 경우가 때로 그러하다. 남의 이론을 공들여 읽지 않고 몇 개의 이론적 개념들만을 감각적으로 이용하려 할 때, 이론은 휘청댄다.
"<삼대>란 무엇인가. <조선일보>(1931년 1월 1일~9월 27일)에 215회 연재된 연재소설이다"(511쪽) 식의 늘리기는 이제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늘리기는 수수께끼의 묘미인 놀라움이 없기 때문에 진부하고 지겹다. - <김현 문학전집 15>, 65쪽
이 같은 날카롭고도 종합적인 비판은 분명 추후에 써질 누군가들의 김윤식론에서도 참고가 될 질료일지 모른다. 범인이라면 그냥 묻어둘만한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김윤식은 그가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절묘한 방법으로 넘어선다. 즉 자신을 3인칭 "김윤식"으로 칭하며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김윤식의 글에 대한 저러한 비판이란, 또는 16사단 육군중위인 형과 함께 지낸 염상섭의 중학시절 하숙집을 찾아 두 번씩이나 교토를 방문하고 쓰여진 <염상섭 연구>에 대한 비판이란, 역설적으로 말해 김현 자신에 대한 애증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만년에 이르기까지 김현의 한국문학사의 총체적 파악에 대한 욕망은 얼마나 강하고 집요했던가. 혹 그것에 대한, 욕망의 좌절에 대한 회한과 원망의 표출을 김윤식을 통해 분출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는 '실증주의적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행복한 만남으로 이루어졌던 공저 <한국문학사> 이래 어긋나기 시작하여 그 후 계속 서로 멀어져 갔음에 대한 자책감이랄까.(159쪽)
김현의 김윤식 비판은 이처럼 김현 자기 내부에서 비롯된 복잡한 "애증"의 결과라는 것이다. 김현은 "국문학사의 총체적 파악에 대한" "강하고 집요"한 욕망을 갖고 있었지만 실패하고 좌절했기 때문이라 한다.
김윤식의 글쓰기가 "그의 실증주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라는 것, 또 "원칙들의 의미는 설명하지 않고 실증적인 사실들만을 나열"한다든가, "열정이란 재능을 가리킴"이라는 말에 주목, 그 '열정=재능'이 김윤식에겐 없다는 것, "그의 내면의 무의식은 작가와 세계가 부딪치는 자리에 있어 그 앞이나 뒤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의 문체를 이상하게 과잉-서정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며 그의 실증주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라 했고, "그의 늘리기는 수수께끼의 놀라움이 없기 때문에 진부하고 지겹다"라고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진부하고 지겹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윤식이 진부하고 지겨운 것은 곧, 한국문학사가 진부하고 지겹다는 것. 그동안 진짜 문학인 듯 가면을 써온 한국문학사에 대한 가면을 이제 벗겠다는 것.(160쪽)
실제로 초기 김현은 통념대로의 구조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아닌, 1960년대의 다른 지식인들과 유사한 종족본질론적 민족주의자의 면모도 가졌으며, 한국문학사의 '총체'를 구성하려는 성급한 충동을 갖고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권보드래·천정환, <1960년을 묻다>(권보드래·천정환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6장 참고)
| ▲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김윤식 지음, 문학사상사 펴냄). ⓒ문학사상사 |
이를 통해 두 가지가 더 말해진 셈이다. 첫째, 김현의 김윤식 비판이나 염증은 한국문학사에 대한 그것에 다름 아니니, 이때 '나 김윤식=한국문학사'이다. 둘째, 발로 뛰어 자료를 찾아내서 쓴 <염상섭 연구> 등은, 불문학도 김현 따위가 결코 쓸 수도, 넘볼 수 없던 한국문학사 바로 그 자체이다. 하기야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일지사 펴냄) 그리고 <이광수와 그의 시대>(솔출판사 펴냄)나 <염상섭 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펴냄) 등은 김윤식 아니면 누구도 가능하지 않았을 결정적 '개척'이었음이 분명하다.
3. 김윤식이라는 기적, 비평가라는 기적
3.1.
그러나 그는 옛 친구로부터의 치명적인 비판으로 야기된 궁지를 단지 그에게 되돌려줌으로써가 아닌, 그 친구와 함께 '기적'이 됨으로써 탈출하는 방법도 택했다. 책의 후반부에서 그는 김현과 백낙청은 한국 문학사의 기적이며, 따라서 자신도 기적이라 말한다.
객 : 김현도 기적이다, 백낙청도 기적이다, 선생은 기적 타령으로 시종했습니다그려. 혹시 자기 자신도 기적이다, 라고 에둘러 암시코자 함이 아니었을까요.(232쪽)
이 범상치 않은 자문에, 일면 운 좋게 김현과 백낙청의 지척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 나의 기적이라 말하지만, 에두르지 않고 내가 곧 기적적 한국문학사라고 강하게 선언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기실 한국 현대문학사 연구는 김윤식에 의해 학문적 틀과 경계가 일궈졌다. 그리고 백낙청과 김현은 '한국문학사'에 다른 큰일을 했으니, 결국 이 '라이벌 열전'은 백낙청-김현-김윤식의 삼항이 곧 1960년대 이후의 한국 문학사라는 것을 말한 셈이다.
이를 쉽게 부정하기 어렵지만, 이제 우리는 2010년대에 이르러 그 같은 한국 문학사의 '이후'를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항상 그런 점이 어려웠다. 문학연구와 비평은 어디까지 정당화·자연화될 수 있나? 비평가와 주석가, 연구와 주석, 비평과 훈고의 차이는 아둔한 나에게는 영원한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 이르러 비평가의 자기의식이란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돼 버렸다.
감히 말해보건대 비평가의 시대는 끝났다. 한국문학 비평을 경지에 올린 김현은 벌써 1990년대 초에 타계해버렸고, 김윤식·백낙청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과거'를 연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문학 비평은 모양을 바꿔 '겨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독후감에서 문제를 전면에 놓고 논할 여유가 없다. 다만 (내가 조금 본) 김윤식의 경우만 떠올려 보고 글을 맺기로 한다.
3.2
김윤식은 비평가와 문학사가 사이에서 존재하는 자신에 대해 자주 기술했다. 심지어 두 '자아' 사이의 대화를 중계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비평가 또는 문학사가로서 동시에 교실에 출현했다.
| ▲ <이광수와 그의 시대>(김윤식 지음, 솔출판사 펴냄). ⓒ솔출판사 |
그래서 미욱한 우리들은 헷갈렸다. 결정적으로, 65세가 된 김윤식이 정년기념 강연에서 '사실 평생 나는 표현자이고 싶어했다'고 말했을 때는 거의 '멘붕' 아니었나. 물론 비평가로서의 자의식이라곤 없는 나는 그 말에서 중요한 힌트를 얻은 듯도 했다.
김윤식-한국문학사의 그늘은 크고 깊어 벗어나기 어렵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그의 직계 제자 중에 그보다 더 부지런하고 더 강한 정신을 갖고 그보다 더 많이 읽고 쓰는 자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보다 더 강렬한 나르시시즘을 갖기란 이 시대엔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의 충실한 사도들에게 그는 총체적으로 '불가능'이다. 더구나 이 책의 논법에 따르면 그들에겐 김현이나 백낙청 같은 기적적인 '라이벌'(짝패)마저도 없다.
비평이 창의적인 작업이자 '문화'를 개척하는 작업이던 시절, 그리고 문학사 연구가 '운동으로서의 문학'을 모색하는 작업이던 때는 갔다. 그래서 우리는 김현-김윤식-백낙청의 문학사 그리고 '비평가의 기적' 시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글쓰기와 삶이 서로 다르지 않은 문화적 실천 행위이기 위한 모색을 하고 있다.
(* 이 글의 작성 과정에서 좋은 조언과 의견을 준 류준필·김건우 선생님, 특히 동경외국어대학교의 최태원 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