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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혐오'로 살해당한 이들… 그 죽음을 직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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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혐오'로 살해당한 이들… 그 죽음을 직면하라!

이 서평을 2009년 당시 부산 ○○고등학교 1학년이었으며 학교에서 일어난 동성애 혐오성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한 ◇◇의 죽음을 직면하고 그를 기억하는 과정에 놓고자 한다.

"……신앙 커뮤니티들의 천재적인 면이 있다면, 아주 훌륭하게 이야기를 기억하고 말하는 능력이다. 신앙 커뮤니티들은 커뮤니티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전통을 후대에 이어주어야 하는 신탁을 받은 사람들로서 책임이 있다. ……"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 34쪽)

한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말하고 전승하는가가 한 공동체의 존엄함과 성숙함을 판단하는 척도라면 우리(한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실패하고 있다. 아니 실패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라는 말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할만한 퍼즐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언젠가는 골목에서, 집안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벌어졌을 죽음은 그가 '성소수자'였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도, 인정받지도 못한 채 망각의 숲으로 직진한다. 성소수자의 상징이 된 무지개 깃발은 언론에서, 집회에서, 누군가의 장신구로 혹은 이따금 상점에서 나부끼지만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일부를 제외하곤 한 명의 성소수자의 죽음을 전사회적으로 애도하며 차별과 편견으로 뒤틀린 사회의 모습을 직면하고 통찰하며 수정할 기회가 없었다. 대.한.민.국에 혐오 범죄로 혹은 혐오로 인해 질식해 죽어간 사람들은 없었는가?

▲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스티븐 스프링클 지음, 황용연 옮김, 알마 펴냄). ⓒ알마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황용연 옮김, 알마 펴냄)는 미국에서 성소수자 혐오 범죄로 죽임을 당한 14명의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저자 스티븐 스프링클은 신학대학원 교수이자 학자로서 지닌 기록과 해석의 치밀함, 그리고 종교인으로서 가진 영적인 감성들을 문학적 표현으로 책 속에 펼쳐놓고 있다. 그는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인 '듣기'에 충실하였다. 혐오 범죄로 죽어간 희생자의 묘지를 찾고 희생자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지나간 기억의 샘물을 지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리하여 희생자들이 '성적으로 과잉되어 희생을 어느 정도 자초한 호모'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법한 그만의 고유한 외모, 성격, 습관을 지닌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안타까운 점, 그리고 엄연한 진실이자 무서운 점은 희생자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성정체성과 표현에 좀 더 당당하고 솔직하고자 노력한 사람들이었고 타인에 대한 신뢰와 배려가 넘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이는 타인과의 차이, 즉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혐오와 증오가 불타죽이고, 찔러죽이고, 강가에 던지는 추악한 살인의 가장 주요한 동기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희생자에 대한 섬세한 복원과 더불어 이 책은 성소수자 혐오 범죄가 일어난 이후부터 벌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편견을 맹렬히 추적한다. 희생자를 두 번의 죽음으로 내모는 말들, 재판이 벌어지는 생생한 과정.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속성과 책임…. 어떻게 희생자가 두 번의 죽음을 겪게 되고 '죽어도 그리 아쉬울 것이 없는 하찮은' 사람이 되어 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재판에서 범죄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게이패닉(gay panic, 게이를 만났기 때문에 일어난 공황)으로 인한 정당방위'이라는 논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하고 범죄자가 아니라 희생자를 심판대에 올리게 되는지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수많은 약자와 소수자들이 재판과정에서 겪었을 모독과 2차적인 가해를 너무나 참담하게 간접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한편으로 이 책은 커뮤니티가, 법관이, 경찰관이, 부모가, 친구들이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깨닫고, 사건에 대응하고, 기억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한다. 희생자가 죽은 자리에는 혐오의 낙서가 난무하고 무덤은 볼품없어지고 황량한 분위기만 풍길 수도 있고, 정반대로 한 명의 죽음으로 인해 새로운 커뮤니티가 조직되고, 범죄자들이 죄의 대가를 치르고, 지역사회가 집단적으로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고, 묘비에 추모의 꽃이 놓일 수도 있다. 책은 그 '우리의 몫'에 대해, 14명의 죽음 이후와 현재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 1999년 동성애자 혐오 범죄로 살해 당한 빌리 잭 가이더. ⓒcounterlightsrantsandblather1.blogspot.kr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빌리 잭 가이더(책 4장 '남부의 고딕 호러')의 사연에 비해 '고아처럼 기억의 변두리를 방황하고 있다'고 묘사되는 스코티 조(책 6장 '완벽한 증오')의 사연은 성소수자를 둘러싼 커뮤니티의 강고함과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대비시킨다. 또한 죽은 자를 기억하는 상징물의 중요성은 다리에서 처참하게 물에 던져진 찰리(책 9장 '죄인의 다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찰리의 죽음 이후 다리에는 "호모 새끼들은 여기에서 뛰어내려라"는 누군가의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사실상 한 명의 범죄자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방관자와 주변인들이 죽음의 몫을 나누어 져야 한다는 신호이다. 이 낙서를 "우리 뱅거 시민들이 혐오가 평화로 바뀌고 무지가 이해로 바뀌는 그날까지 우리 주위의 세계를 바꾸어가게 하소서"라는 글귀로 바꿔 새기기까지 미국 사회와 그 지역사회는 수많은 대가와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했다.

책의 첫머리에 저자는 자신의 책을 '힘겨운 책'이라 말한다. 저자가 힘겹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가 성소수자로서 겪는 솔직한 감정의 표현인 동시에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를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사람들로 상정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이 책을 집어든 '초기의 독자'인 당신은 자라오면서 겪었을 수많은 '욕설과 혐오적인 발언'들이 귓속을 맴돌아서 집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세상에 묻혀진 채 나만 혹은 나와 동료들만 발견하고 의미를 공유한 수많은 사건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10년 전 자살한 고(故) 육우당에 대한 기억들(동성애자인권연대의 청소년 활동가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육우당은 2003년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편집자), 2009년 부산에서 자살한 고등학생의 이야기 외에도, 내 주변의 죽어간 동료들이 다시 살아와 나에게 말을 건네고, 내 죽음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이 책은 결국 사자(死者)와의 대화록이 되고, 페이지마다 회환하거나 결심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끔 독자를 이끈다.

저자는 14명의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것은 동성애에 대한 잔인무도한 혐오이며 종교에 대한 편견으로 얼룩진 범죄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그래서 슬픔과 우울을 동반한 애도 이전에, 사람들이 충분히 죽음을 직면해야 함을 설득한다. 죽은 사람들의 이름은 무엇이었으며, 그는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왔으며, 그날 밤 그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죽어갔는지에 대해, 선정적이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어둡고 잔인했던 그 밤을 추적하며, 독자에게 최대한 상세하게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죽음에 직면하기'가 이 책의 가장 첫 번째 문턱이자 독자에게 내미는 유일한 명령이다.

당신이 미국의 성소수자 14명의 죽음을 직면한다는 것은, 기실 그것이 '나'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직면임을 피할 수 없다. 피하고 싶고, 공기의 흐름은 무거워지고, 끔찍한 장면들은 자꾸 오버랩된다. 그래서 저자는 결국 책으로 읽는 간접경험일지라도 그 경험을 통해 자아의 변형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은 죽은 이들과의 대화록이며, 그 이야기의 힘은 말해지는 것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과의 경험 공유,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지키고 발전시켜나갈 책임을 함께 공유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이들과의 대화는 시퍼렇게 살아서 '나'와 '우리'를 애타게 부른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반 동성애 혐오 발언은 그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한편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시 '성적 지향'을 둘러싼 찬반논의, 서울시 마포구의 성소수자 인권 증진 현수막 거부 사건, 게이 커플인 김조광수·김승환의 공개 결혼식에서의 오물 테러 등 사회적으로 성소수자와 관련된 이슈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사회에서는 혐오 범죄 법안이 입법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않으며,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자는 인권의 첫걸음이라 불리는 차별 금지법마저 보수 기독계의 극심한 반대와 정치인들의 무관심 속에 입법이 늘어지고 있다. 이러한 틈바구니 안에서 혐오 범죄는 이미 그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2012년 4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 세 명은 오토바이를 타고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이 트랜스젠더가 많다는 소식을 접한 그들은 함께 공모하여 이 '별종(책에서 범죄자들이 성소수자들을 부르는 방식)'들을 혼내줄 계획을 세웠고 이들은 이를 거침없이 실행했다. 피해자들은 신고를 꺼렸지만 사건이 점점 심각해지자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단신만 있을 뿐 이를 분석하고 대안을 자세히 제시하는 기사는 눈에 띄지 않았으며, 이 가해 학생들은 어떠한 처벌을 받았고 학교는 어떠한 예방 조치를 시행하고 있고 이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교육 활동을 했는지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나는 당시 이러한 혐오 범죄를 저지른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해당 학교는 당시 일상적으로 학생들에게 두발과 소지품 검사 등을 하며 서울학생인권조례를 위반하고 있었고 선생님들은 요즘 학교폭력이 심각하고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학생 때문이라도 소지품 검사가 필수적이라는 항변을 하던 차였다. 트랜스젠더 혐오 범죄를 저지른 학생들은 말 그래도 '추방'되고 '통제'받아야 할 문제아들로 지목되었지만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한 혐오가 왜 벌어지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는 전혀 성찰되지 않는 분위기였고, 학교는 그런 학생들 때문에 면학 분위기가 흐려지고 자교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만이 문제라고 느끼는 듯했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청소년 범죄자들과 젊은 범죄자들이 한 번이라도 집에서, 학교에서 혹은 다른 공간에서 성소수자를 괴롭히고, 모욕하고, 침을 뱉고, 혐오하는 발언들이 잘못이라는 것을, 그것은 인간의 인격을 무너뜨리고 결국 나 자신에게 침을 뱉는 행위라는 말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수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지금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 모를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와 똑같이 숨 쉴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더라면 어땠을까?

또한 같은 해 마포구에서는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라는 지역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지금 이곳을 지나는 열 명 중 한명은 성소수자입니다"와 "LGBT 우리 지금 여기 살고 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공공 게시물 현수막 게시대에 신청하자 구가 이를 불허한 일이 있었다. 2013년 국가인권위에서 차별시정권고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마포구청은 여전히 몇 가지 이유로 권고를 완전히 수용하기를 거부하였다. 이유는 열 명중 한 명이 성소수자라는 말에는 근거가 없고,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는 것이었다. 마포구청은 청소년들이 '동성애'라는 말을 접했기 때문에 성소수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그 말이 금지당하고 자신의 성정체성이 거부되기 때문에 숨막혀하다가 심지어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청소년 보호라는 가면을 쓰고 뒤에 숨어 사람들의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지금 대한민국의 어느 교회에서는 성서를 들먹거리며 동성애자들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교하고, 트랜스젠더를 폭행한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서는 선량한 학생과 나쁜 학생을 나누고, 나쁜 학생을 솎아내는 것이 유일한 교육적 조치임을 자부하고, 관공서는 중립을 가장하여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혐오 범죄로 인한 희생자들을 계속 만들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사키아 라토나 건(1987~2003). 흑인, 청소년, 레즈비언인 그녀는 한 폭력적인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성소수자 인권 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잠깐의 소란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여성 혐오, 인종주의, 동성애 혐오는 깊이 연관되어 있었고, 각각 서로에게 유력한 무기 노릇을 해주었다."
ⓒwww.laprogressive.com/sakia-gunn-lgbtq-of-color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빛나는 점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사건들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래서 14명의 죽음이 14개의 이야기로 읽힌다기보다는, 하나의 큰 그림의 퍼즐이 맞추어지는 느낌이다. 이들의 죽음에는 때론 종교와 인종, 성별, 나이, 빈곤이 얽히기도 한다. 소수민족, 이주민, 문화적 갈등, 종교가 뒤얽히는 싱의 사례에서는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미국 내 소수민족인 슬라브인을 앞장세워 어떻게 자신의 혐오를 실천하는가를 추적한다. 또 청소년 레즈비언 사키아 라토나 건의 사연에서는, 흑인이자 청소년이었던 희생자의 지위로 인해 다른 사건에 비해 얼마나 터무니없이 가볍게 다루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저자의 이런 끈질긴 관심과 열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범죄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차이를 지닌 모든 존재에 대한 혐오와 편견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면서 흔히 소수자들이 요구받는, 더 모범적이고 '도덕'적으로, 더 선량하게 보여야 한다는 내외부적인 압박과 중압감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지,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이 죽음을 통해 가르쳐 준, 가장 빛나는 말은 다음과 같다.

"예의가 인권을 대체해버렸다. '좋은 사람들과 나쁜 놈들'이 나뉘는 사회, 즉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나뉘는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과 차이가 있으면서 동시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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