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또는 통일철학, 그것이 없었다. 통일이 없었으니 자연히 창조가 없었다. '고석규'던가 누구던가 하는, 요절한 한 철학자의 '초극'(超克)이라는 책에 관한 이상한 소문만이 무성했고 그밖에 한마디로 잘라서 우리 손에 의해 창조된 문학도 철학도 과학도 없었다. 번역도 충분하지 않았고 읽을 책도 외국어 원전(原典) 외에는 별로 없었다.
나는 '민통'의 좌파들과 끊임없이 떠들고 싸우고 함께 마시고 함께 뒹굴고 함께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들의 끝없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민통 조직에는 단연코 가담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영상, 월출산을 하산하던 중 가을 코스모스가 만발한 벌판에서 한없이 우셨다는 아버지의 그 슬픈 영상이 내 머리와 심장 위에 우뚝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면 내게 '민통' 가입을 권하는 그들에게 항용 모욕을 주기 일쑤였다.
'어이! 말세비키들!' '이봐, 말로당원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들을 가장 불쾌하게 만들었던 나의 모욕성 발언은 이것이었다. '민통이 두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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