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라질까. 김흥구가 '좀녜' 작업을 처음 선보인 10년 전 바다에서 물질하는 어머니들이 곧 사라질 거라는 말이 나돌았다. 좀녜는 해녀를 부르는 제주도 말이다. 고된 물질을 대 이으려는 사람이 없다 보니, 한 세대 정도가 지나고 나면 좀녜를 만나기 어려울 거라는 얘기는 아마 사실일 거다. 좀녜도 고령화 사회의 운명을 비켜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 무수한 풍문의 바다를 건너 김흥구가 뭍에 소개하는 '좀녜'는 마지막 세대를 향한 슬픈 찬가가 아니다. 거기에는 세상 말들에는 관심도 없이, 물때를 기다려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다시 밭을 매러 나가는 제주 여인들의 무심한 하루가 담겨 있다. 수압을 견뎌내느라 삭신은 고장 나고,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기억 따위는 청승이라 넘겨 버리는 여인들이 선명한 주름으로 웃고 있을 뿐이다.
처음 좀녜를 만나러 떠났을 때 김흥구는 아직 사진을 전공하는 청년이었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어머니들이 물 위로 오르기만을 기다려 셔터나 눌러대는 자신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기도 했다. 멀리 뭍에서부터 달랑 차비만 들고 찾아오는 이 대책 없는 청년을 품어준 건 어머니들이었다. 심지어 비양도의 공명산 할머니는 이 숫기조차 없는 젊은이를 아예 수양아들로 삼아 올 때마다 거둬주었다.
그 정 때문일까. 그는 여전히 이 작업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사진을 평가하는 일이 감히 제주 여인의 삶에 점수를 매기는 일이라도 되는 양 엄숙하기만 하던 그도 그 10년 사이 청년의 티를 벗고 가장이 되었다. 진한 성장통 끝에 철든 아들이 듬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듯, 그의 좀녜에 대한 태도도 훨씬 다부지게 변했다. 최근 그는 사진 촬영과 함께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채록해 가면서, 좀녜만의 풍습이며 그들을 만들어낸 제주의 역사까지를 아우르는 현장감을 더해가고 있다. 원정 물질을 떠나온 좀녜를 기록하기 위해 촬영 반경도 일본으로까지 넓혔다.
김흥구의 '좀녜'는 물질하는 여인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작가의 길 앞에서 주저하던 청년을 사진가로 길러낸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기꺼이 작가가 자맥질할 수 있는 바다가 되어 주었다. 어머니들이 작가 앞에서 펼쳐낸 스스럼없는 일상들, 그 고단하고 따뜻하고 질펀한 그래서 결국에는 담담해 보이는 사진 속에서 덕분에 우리는 작가의 숨비소리도 함께 듣는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끝내는 우리를 서럽게 만드는 어머니들이 아직은 거기에 있다.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 지난 6월 서울 통의동 류가헌에서 처음 열렸던 '좀녜-사라져가는 해녀, 10년의 기록'전이 11월 4일부터 12월 19일까지 부산 토요타아트스페이스에서 다시 열립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