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열강의 각축장 된 버마, 그리고 카친족의 눈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열강의 각축장 된 버마, 그리고 카친족의 눈물

[현장] 도쿄 버마대사관 앞, 정부군에 탄압받는 카친족 평화시위

2011년부터 시작된 카친독립군(KIA)과 버마 정부군과의 무력충돌이 9일로 꼭 일년이 됐다. 버마 정부군은 카친독립군은 물론, 카친족 민간인을 향해서도 공격, 학살, 강간, 약탈을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 국경을 넘은 난민이 올해만 공식적으로 약 2만명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국내 난민수, 민간인 사망/부상자 수는 집계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버마는 현재 거센 변화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 버마 정부는 평화와 민주화의 정당성을 얻으려 애쓰고 있고, 열강은 버마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버마 정부군은 여러 소수민족과 평화협정을 맺기 시작했다. 2012년 1월부터 버마정부는 주력 소수민족 저항세력인 카렌민족해방군(KNLA). 카레니군(KA), 아라칸해방군(ALA), 몬민족해방군(MNLA), 샨주군(SSA), 친민족전선(CNF) 등과 평화협정을 맺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 릴레이 평화협정에서 카친독립군(KIA)은 제외됐다.

일년을 넘어서는 카친족에 대한 버마 정부의 탄압을 규탄하는 집회가 일본 내 카친족 난민 50명이 참여한 가운데 8일 오후 3시 도쿄 시나가와 버마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시나가와의 고급 아파트와 버마 대사관의 높고 탄탄한 벽 사이의 좁은 일차선 도로에서 열린 이날 집회는 집회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하고 빠르게 진행됐다. 어떠한 구호도 선전물 유포도 교통방해도 없었다. 시위 참가자 대부분이 여러가지 제약이 심한 '난민'신분인 상황에서, 버마 대사관과 마주한 아파트의 주민들이 소음을 이유로 집회에 반대를 했기 때문에 집회가 불법으로 규정될 위험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아무런 외침 없이, 속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버마 대사관의 높은 벽을 향한 그들의 집회는 약 한 시간도 채 안 돼 경찰, 입국관리소,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외무성 직원들의 제제로 해산됐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상(26,여,가명)씨는 2년전 어학연수 비자를 받아 일본에 온 뒤 난민 신청을 통해 일본에 거주하게 됐다. 그는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차라리 우리 카친주가 메마른 사막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렇다면 정부와 군이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텐데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난 고향과 가족을 버리고, 혼자 도망쳐 버린 것과 같아요. 언제나 죄책감에 시달리지요. 단 하루라도 가족 걱정을 하지 않은 날이 없어요. 제발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본에 온지 23년이 되어 간다는 콘상(48,남,가명)씨 역시, 버마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온 세월이 믿기지 않는듯 말한다.

"우리는 이 평화로운 나라(일본)에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그 누구에게도 탄압 받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지만, 고향 땅에 남아 끝없이 고통 받는 가족, 친구, 이웃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려 물질적 도움이라도 주고 싶지만, 돈은 커녕 약품을 보낼 수도, 어린 아이들을 위한 학용품을 보낼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고향 마을에 보낼 헌 옷 두 박스도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저 지켜 보고만 있어야 해요.

23년 전 일본에 올 때, 내가 23년이나 일본에 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해 봤습니다. 5년이면 괜찮아지겠지, 10년이면 괜찮아지겠지 했던 문제들이 20년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20년 동안 내가 알게 된 건 꿈도 희망도 없다는 거에요. 이런 집회에 참여 했던 건 기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렇지만 무엇 하나 변한 일이 있나요? 지난 23년 동안, 나는 함부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어요. 그저 신에게 기도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어느 때보다도 국제사회에 '평화버마'를 내세우고 증명해야 할 시기에 버마 정부는 카친족에 대한 탄압을 계속하고 있을까?

버마의 최북단에 위치한 카친주는 서쪽으로는 인도, 동쪽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지리적으로 예민한 지역이다. 미국에게 버마가 중국 견제를 위한 더할 나위 없는 전략적 요충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버마를 미국에 내어주면 거의 완벽하게 지리적 봉쇄를 당한다는 판단 하에 버마 특히 카친 지역을 중요한 군사 지역으로 분류한다. 미국과 유럽의 버마에 대한 경제제제 해제와, 중국 자본의 본격적인 대 버마 투자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동시에 카친은 임산자원은 물론, 금과 보석류 등 지하자원 매장량도 상당해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일본은 5천억엔의 부채중의 3천억엔을 탕감하며 버마 공략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중국도 경제 발전에 따라 급격하게 상승한 자국의 노동력을 대체할 중요한 곳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들에게 버마는 값싼 노동시장, 성장 가능성 높은 소비시장, 무궁무진한 천연자원의 보고이기까지 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막대한 힘을 지닌 미국과 중국, 일본과 유럽 등 경제대국의 대 버마 행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이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모두 '버마 민주화'를 명분으로 앞세우며 제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버마 정부는 군사정권에 저항해 자치를 요구하는 여러 부족 중에서 특히 카친족을 완전히 통제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거대한 세계의 흐름 속에서, 버마 소수민족들의 피해와 고통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고, 그들은 국제사회의 관심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하루 하루 잊혀져 가고 있다. 세계 그 어느 군사 경제적 각축장도 커다란 전쟁을 겪지 않은 곳이 없다. 그리고 언제나 그 각축장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게 되는 것은, '민주화', '경제 개발', '개혁' 따위는 모르는 힘없고 배우지 못한 민간인들 뿐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