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쪽방촌 영태씨의 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쪽방촌 영태씨의 봄

[기고] 영등포 쪽방촌 사람들의 삶과 사랑

나 이영태는 약 십년 전 홀로 이곳 영등포 쪽방으로 왔다. 경상남도 합천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파트를 형에게 빼앗기고 쫓겨났다. 아무 곳도 갈 곳이 없었다.


대구역에서 노숙을 삼일쯤 했다. 그곳에서 한 노숙자에게 '서울역에 가면 그래도 밥은 얻어 먹을 수 있다'는 소릴 들었다.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에 올라와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노숙을 했다. 그러다 어떻게 흘러 흘러 이곳에 방을 얻고 기초수급을 받으며 살게 됐다.

나는 다리가 불편하다. 두 다리가 휘어 있는데 오른 쪽 다리는 왼쪽보다 가늘다. 제대로 걸을 수 없다. 언어 장애로 말도 잘 하지 못한다. 의사소통은 몸짓과 글씨로 한다. 몸이 이러면 많은 상처를 겪으로 살게 마련이다.

우울증으로 인한 불면의 긴 밤들과 몇 번의 자살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까지는 살아 있다. 이제 더 이상 쪽방촌의 다른 이들처럼 외롭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짝 영길이 있고, 사랑하는 경희가 있기 때문이다.

영길은 몸이 불편한 나를 참 많이 도와주는 동생이다. 주민센터에 갈 적이나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할 때나 도움이 필요할 적이면 언제나 나를 도와주고 술친구가 되어준다. 말을 할 수 없는 내가 하는 손짓과 발짓도 영길은 그 누구 보다도 잘 알아 듣는다. 눈빛 만으로도 대화가 되는, 마음이 통하는 동생이다.

그런 영길에게는 약간의 알콜 중독 끼가 있어 요즘엔 술을 못 마시게 하려고 하지만 도무지 말릴 수가 없다. 얼마 전엔 술에 취해 사람을 때려 이틀 동안 구금되었다가 가까스로 합의하고 풀려 나오기도 했다. 이 쪽방에 오래도록 살며 술로 죽고 망가지는 이들을 너무도 많이 봐 왔다. 사랑하는 동생 영길도 그렇게 될 것 같아 걱정이다.

경희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다. 아이 같은 그녀는 매일 같이 과자를 사달라고,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나를 조른다. 돈이 없는 나는 그럴 때마다 경희에게 다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이런 나를 경희는 사랑한다고 한다. 경희에게는 짊어지기 힘들었던 과거가 있다. 과거의 일들로 불안정한 성격을 지닌 그녀를 나는 이해하고 감싸 안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나의 마지막 남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이었다. 알고 지낸 동네 친구 넷이 겨울에 죽었다. 약해진 몸이 술을 이기지 못해, 차가운 방에서 잠이 들거나 길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모두들 우스갯 소리로 '술 먹다 죽었으니 행복했을 것'이라 했다. 연고도 가족도 없는 이들이라 죽어선 어느 대학병원 해부용으로 쓰일 거라 한다. 아무도 우는 이는 없었다. 씁쓸한 마음에 다시금 술잔을 비울 뿐이다.

수도가 얼어붙어 맘편히 씻을 수도 없고, 동네에 하나 있는 화장실도 쓸 수가 없다. 모두 으슥한 곳에서 대충 해결을 할 수 밖엔 없다. 골목 골목에 지린내와 악취가 난다. 날이 추우면 동네 사람들은 밖에 나오지 않고, 방안에서 홀로 지내곤 한다. 무심코 티비를 쳐다보며 술잔을 비우다 잠들고 일어남을 반복할 뿐이다. 그게 쪽방촌의 진짜 겨울나기 풍경이다.

그렇지만 나의 이번 겨울은 달랐다. 영길과 웃고 떠들며 경희와 사랑을 나누며 지냈다. 그리고 봄이 다시 찾아왔다. 살아가며 수십 번을 맞이했던 봄이지만, 이제껏 이렇게까지 기다려 왔던 봄은 없었다. 겨울을 함께 지내오며 경희에게 했던 약속. '우리 봄이 되면 꼭 벚꽃 구경을 가자' 는 약속도 지켰다. 내 평생 처음 해 본 꽃구경 이었다. 하루 하루가 꿈결 같았다.

벚꽃 잎이 떨어질 때 즈음, 나는 꿈에서 깼다. 그와 동시에 경희는 잠시 내 곁에서 떠났다. 몇 년 전 잘못을 저질러 벌금형을 받았는데, 그 250만원을 2년 동안 내지 못해 구치소에 50일 동안 수감된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250만원을 구하지 못해 보낼 수밖에 없는 내 자신에게 속상했다. 면회에서 만난 경희는 이런 나를 위로해 주었다. "괜찮아 오빠, 나 없어도 밥 잘 챙겨먹고 있어. 출소하면 우리 바다보러 가자"

경희가 돌아올 때면, 다시금 찌는 듯한 더위가 찾아 올것이다. 쪽방촌의 여름은 겨울보다 더 고되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방을 떠나 노숙을 나서는 사람까지 있다. 그 때가 되면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 살아가게 될까.

사회에서 버려져 하루 하루 잊혀져 가는 우리는 하나 둘 씩의 장애를 가지고 쪽방촌에서 살아간다. 이제 더이상 희망을 기대하지도, 함부로 원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도 사랑을 한다. 그렇게 살아간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쪽방촌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하나는 게으르고 무능하며 위험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부조리가 만들어낸 불쌍한 사람들의 도피처라는 시선이다. 전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후자 쪽은 사회가 이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두 시선에는 공통점이 있다. 쪽방촌 사람들이 일반인과 크게 다르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게으름이나 무능 때문이건, 세상의 부조리 때문이건 이들이 평범하지 못한 부류라는 인식은 비슷하다. 그들을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들로 규정한다. 특수성을 부인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필요 이상의 편견이 발생하고, 이러한 편견이 결국 이들을 여기로 몰아 넣은 원인이 돼 왔다는 점이다.


쪽방촌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가정에서 버려지고, 사회에서 배제되며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다. 영등포 쪽방도 그런 사람들로 채워져 왔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 아니다. 자신이 사회에서 쓸모 없고 세상과 섞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다리가 불편하고 행색이 초라하면 정신 상태까지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리는 순간이다. 그것은 '버려졌다'는 말로 표현되곤 한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더 이상 사회에 적응하지 않으려는 반발로 이어지고 악순환된다.

이곳 사람들의 상당수는 기초 수급을 받으며 생활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고용되지 않은 채 저마다의 방법으로 생계를 꾸린다. 절망에 빠진 알콜 중독자가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등진 채 조용히 살아간다.

한 사진가가 지난 겨울 쪽방촌에 방을 잡았다. 4달 동안 이들의 생활을 지켜봤다. 사진가 역시 처음엔 이 공간의 특수성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들에게서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했다. 그는 쪽방촌 사람들을 위험하거나 비천한 사람들로 보지 않았다. 주어진 여건이 열악했지만 인간의 희로애락이 거기 고스란히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하고 웃고 울며 때로는 싸우고 좌절하는...


사진가는 '차별'이 아니더라도 '구분'이라는 명분으로 그들의 존재와 공간을 구획 지으려는 우리의 인식에 폭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들의 비루한 생활이 아닌 이들의 감정 상태를 주목하며 사랑과 우정 얘기를 기록하려 한 것도 그 때문이다. <편집자>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