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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버리고, 서구의 눈을 넘어 북극의 속살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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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버리고, 서구의 눈을 넘어 북극의 속살을 마주하다!

[프레시안 books] 배리 로페즈의 <북극을 꿈꾸다>

지도를 펴고 북반구를 바라보면 꽤 넓은 여백을 발견할 수 있다. 시베리아의 광활한 대지, 캐나다 북쪽의 큼지막한 섬들, 그린란드, 북극해 그리고 지도적 상징이 채 들어서진 못한 북극의 공백들.

미국의 논픽션 작가 배리 로페즈의 <빛과 얼음의 땅, 북극을 꿈꾸다>(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펴냄)는 바로 이 공백을 연구하고 수집하고 여행한 기록이다. 1986년 영어로 쓰인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북극의 꿈(Arctic Dreams)'. 로페즈를 당대 최고의 자연주의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 <북극을 꿈꾸다>(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펴냄). ⓒ봄날의책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10여 년 전부터 북극을 여행하면서 이 책을 수없이 만났다. 낯선 곳에 가면 서점을 들르곤 하는데, 북극의 도시와 마을 어느 곳에서건 '북극의 꿈'은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북극곰이 얼음을 기다리던 10월의 캐나다 허드슨만 처칠의 어느 기념품 가게에서도, 활엽수의 붉은 단풍이 땅에 꺼지던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의 대학서점에서도, 에스키모보다 더 북극을 사랑했다던 일본인 사진가 호시노 미치오(그는 캄차카에서 불곰의 습격을 받고 숨졌다)가 단골로 들른 알래스카 인사이드 패시지의 소도시 싯카의 작은 서점에서도 나는 이 책을 꺼내 살까 말까 고민하며 들춰보곤 했다. 헌책방에도 항상 두어 권 꽂혀 있던 영어권을 풍미했던 베스트셀러, 30년 가까이 늦었지만 번역돼 나와 반가울 뿐이었다.

배리 로페즈는 책보다 먼저 이곳 도시와 마을을 드나들었다.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고리무늬물범에 사냥총을 겨누는 에스키모의 마을들, 매년 가을이면 북극곰 1만 여 마리가 지나가는 허드슨만, 사람이라곤 과학자들이 몇 년에 한 번씩 상륙하는 캐나다 북극권의 섬들. "클리블랜드 시만 한 빙산들 사이로 비행기가 지나가고 별에서 북극곰이 날아와 내리는 곳"이자 서구문명이 침범해 '성직자의 아들들섬'과 '왕립천문학회섬'(영국의 탐험가들이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였다) 같은 이름을 가진 곳. 대개는 북극곰과 물범, 카리부(북극에 사는 순록의 일종)를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함께 그는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길고도 방대한 여정을 4~5년 동안 완수했다. <북극을 꿈꾸다>는 18세기 이래 영미권 '북극 문학'의 전통을 이어받는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저널리스트의 꼼꼼한 감각으로 북극의 자연과 에스키모의 문화를 관찰했다. 일견 북극을 여행한 저널리스트의 르포에 가깝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삶의 모순과 설명 불가능성을 북극에서 잡아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이상이다.

<북극을 꿈꾸다>는 크게 북극의 세 가지를 다룬다. 전반부에서는 사향소, 북극곰, 카리부, 일각고래 등 동물들을 다루고 중반부에서는 북극의 대지와 바다, 얼음을, 마지막에는 북극에 도전한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래 되긴 했지만 적어도 한국에 출판된 그 어느 책보다) 많은 생물학적, 물리학적 사실을 소개하고, 에스키모의 구전 설화를 들려주고, 18~19세기의 탐험가와 포경선의 문헌들을 꺼내, 그 어느 북극 문학보다 입체적으로 북극을 조명한다.

미려한 문장으로 책을 통과하는 하나의 질문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사유 그 자체다. 북극의 자연 - 북극곰, 사향소 그리고 에스키모- 는 근대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나? 북극의 자연 파괴와 원주민 문화의 붕괴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는가? 근대 과학과 과학적 방법론, 반대로 자연의 가치를 강조하는 생태주의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가?

몇 년 전, 알래스카 카크토비크에서 밤을 새어 북극고래(Bowhead whale, 책은 '활머리 고래'로 번역했다)를 잡으러 바다에 나간 사냥꾼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희뿌연 안개가 번지더니 하늘이 조금씩 푸르게 붉게 물들어갔다. 오로라는 그렇게 인구 200명 남짓의 북극해 에스키모 마을의 하늘을 둘러쌌다. 그때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낀 나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몸이 시공간을 초월해 깊게 연결돼 있을 거라고 어렴풋이 직관했다.

에스키모의 전설은 누군가 죽었을 때 그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자취가 오로라라고 알려준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에스키모의 삶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고대인들의 사상 그리고 자연과의 합일과 조화를 찾으려고 애쓴다. 현대 문명의 잔혹함과 물질주의 그리고 자연 파괴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문명이 자연과 하나가 된 에스키모의 원시적 삶을 착취하고 무너뜨렸으며, 우리는 그들이 한때 살아온 자연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우리의 살 길이다. 그러니까 우리 관념 속의 '생태주의'나 '자연주의' 등이 이런 인식에 기대어 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한가? 에스키모의 삶은 우리가 되찾아야 할 '오래된 미래'인가? 로페즈의 방대한 문헌 조사와 취재를 읽어보면,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게 운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과 인간의 역사는 하나의 사상이나 법칙으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모순을 가지고 있다.

19세기 후반 캐나다 북극권 뱅크스섬의 사향소가 절멸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851년 9월 영국 해군의 인베스티게이터호가 캐나다 북극권 뱅크스섬의 북쪽 해안을 항해하다가 얼음에 갇히고 만다(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겨울이 되기 전에 빠져나오지 못한 북극의 선박들은 얼기 시작하는 바다에 갇히는 경우가 많았고 곧잘 탐험가와 선원들의 비운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두해 동안 겨울을 난 뒤에야 인베스티게이터호의 선원들은 구조대에 발견됐고, 450톤짜리 구리선을 버리고 멜빌섬으로 퇴각했다.

얼마 안 돼, 에스키모들이 버려진 배에 대해 알게 됐다. 그들은 아직 백인과 접촉해 교역을 하지 않은, '서구문명에 때 묻지 않은' 순수의 자연이었다. 배는 마치 외계에서 떨어진 우주선 같았고, 배에는 '보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물품들을 가져오기 위해 몇 번의 보급부대를 조직했다. 배는 그들이 사는 빅토리아섬에서는 320킬로미터 떨어진 먼 거리에 있었다. 에스키모는 오가는 길 사향소를 사냥해 먹으며 보급품을 가져왔고, 그 사이 사향소는 절멸했다(이 길을 따라 발견된 야영지에는 약 3000마리분의 해체된 사향소 유골이 출토됐다고 한다). 1906년 이들과 처음 조우한 백인들은 그들이 구리를 쓰는 걸 보고선 '코퍼 에스키모'라고 이름 붙였다.

동물의 멸종, 자연의 파괴는 인간이 좁은 공간에 밀집하거나 특정 자원을 끊임없이 착취할 때 발생한다. 약 1000년 전, 에스키모들은 고래 사냥을 중심으로 경제생활을 영위하며 '툴레 문화'를 형성했는데, 포경 경제는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존속하다가 붕괴하는 경향을 보였다. 사냥으로 인한 고래 개체 수의 감소(자원의 착취라는 점에서 근대 문명과 다를 바 없다) 혹은 고래 이동 패턴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캐나다 북극권 서머싯섬 등 과거 에스키모 주거지 주변의 호수에서는 고래 생산물로 오염된 흔적이 발견된 적도 있는데, 이런 주거지의 오염이 에스키모의 지속적인 이주 문화의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가설도 있다.

상품 교역을 하고나서부터는 자연 파괴가 가속화된다. 에스키모들이 무역의 의미를 깨닫고 나서, 즉 그들이 북극여우의 모피를 백인에게 건네주면 사냥에 유용한 장총과 위스키를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 그들은 자급자족 경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940~50년대 뱅크스섬의 에스키모들은 북극여우의 덫을 놓으면서 잡은 동물을 뺏기지 않도록 섬 남단의 늑대를 모조리 쓸어버렸다. 북극 원주민의 세계 경제로의 편입은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

에스키모를 비난하거나 그들이 백인과 똑같다는 주장이 아니다. 에스키모는 확실히 덜 파괴적이었다. 아니, 포경선 주변 얼음판에 물범의 살점을 뜯어다 놓고 북극곰을 유인하고선, 새끼에게 고기를 물어 가져다준 어미 북극곰을 대상으로 심심풀이 사격놀이를 했던 백인들과 같은 위치에 북극 원주민을 올려놓을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주민 문화의 고결함에 대한 환상 그리고 인간에 대한 냉소주의를 걷어내는 것이라고 로페즈는 말한다.

에스키모들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은 서구 문명과 달랐다. 인간/자연의 이분법 속에서 동물을 이용 대상으로 보는 데카르트적인 개념 그리고 최근의 동물보호 운동에서 나타나는 시각(동물에 대한 '동정적 존중')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넘어서는 거대한 대지의 힘에 가깝고 북극의 자연과 인간이 맺는 복잡한 관계망 속에 존재한다. 언제나 실패했지만 "동물의 역할을 해명하려는 우리의 편협함"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다. 어쩌면 인간과 자연, 정신과 몸 등 모든 것을 주체와 객체로 이분하는 현대인들의 눈으로는 북극의 원주민과 자연이 맺는 복잡한 관계망, 내가 자연 속에 깃들어 있다는 자연스러운 체감을 터득할 수 없다.

로페즈는 북극을 걸으면서 '대지의 힘'을 느낀다. 마치 하나의 생물체가 이동하는 것처럼 점묘화처럼 흩여졌다가 다시 모이고 흐르는 수만 마리의 카리부와 귀신고래, 북극고래, 에스키모 등 북극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동에 대해 사유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이 오고 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땅이 그들을 만나러 부풀어 오르고 또 동물들이 떠난 뒤 가라앉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이동을 숨쉬기로, 땅의 호흡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북극의 대지는 봄에 빛과 동물들을 크게 들이마신다. 여름에는 오래 숨을 참는다. 그리고 가을에 숨을 내쉬면서 그 모든 것을 남쪽으로 몰아냈다."

에스키모의 사냥은 마치 북극곰이 물범을 향해 몸을 엎드리고 다가가는 것이나 사향소가 늑대의 습격을 받고 원형으로 대열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에스키모의 사냥은 "그 땅의 완전한 일부가 되려는 노력에 한 사람의 모든 능력이 동원되는 것"이자 "주변의 땅을 옷처럼 두른다는 것" 그리고 "그 땅과의 말없는 대화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그들은 황량한 북극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대지는 '객체'가 아니다. 그러기에 (문명인들이 흔히 '위대한 자연'이라고 표현하듯) 경외의 대상도 아니다. 그저 에스키모는 자연 안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왔을 뿐이다.

로페즈는 자신의 에스키모에 대한 외경심의 근거는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사는 문화'가 아니라 척박한 자연에서 도드라지는 삶, 살아 있음 그 자체라고 말한다. 에스키모들은 끝없이 펼쳐진 땅에서 미세한 생명의 떨림을 알아채는 사람들이다. 아주 작은 흔적에도 포식자의 기민함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현대인은 그런 '고유한 눈'을 잃었다.

ⓒ남종영

ⓒ남종영

▲ 에스키모들이 잡은 북극고래를 뭍에 끌어올려 해체하고 있다. ⓒ남종영


몇 년 전, 알래스카 배로에서 에스키모들의 물범사냥을 따라갔다. 바다에 점점이 흩어진 빙산들, 하얗고 푸르고 노랗게 발산하던 얼음의 색깔들, 그리고 빛깔을 전하던 빛의 감촉을 나는 잊지 못한다. 빛과 물의 향연에 황홀해 하던 즈음, 갑자기 '땅' 소리와 함께 물범의 사체가 떠올랐다. 푸른 바다에 빨간 피가 번졌다. 텅 비어 보였던 고리무늬물범의 검은 눈동자. 내가 쌓아온 추상적인 지식, 사상이 떨어져나가고, 그 안에 파묻혀 있었던 '삶의 덩어리'를 직면한 순간이었다. 에스키모는 동물을 사냥하면서 매순간 직면하지만, 현대인들은 노동의 추상성 때문에 잊고 사는, 어쩌면 삶의 진리인지도 몰랐다. 나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떤 생명은 희생당하고 때론 죽는 자연사적인 사실들. 나의 밥상에도 있고 나의 옷에도 있는 진실들.

로페즈는 유픽에스키모들과 베링해로 바다코끼리 사냥을 나가 겪었던 질문을 떠올린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베링해는 한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어 옛날의 에스키모들은 걸어서 건너기도 했던 좁은 바다다. 로페즈의 배는 사냥에 열중하다가 그만 날짜변경선을 넘어 구소련의 바다에 진입한 듯 했다. 일행 한 명이 얼어붙은 해빙 위에서 길 잃은 개 두 마리를 데려왔다. 털이 짧고 체구가 작은 걸 봐선 전형적인 러시아 썰매개였다. 그리고 다시 바다코끼리 사냥에 열중했다. 피가 튀고 호흡이 격해지고 물이 텀벙거리는 그 순간, 바다에서 끌려나온 바다코끼리는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동물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삶은 모순에 가득 차 있다. 그들이 구조한 썰매개는 누구이며 바다코끼리는 누구인가?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에스키모들은 왜 긴 사냥여행을 가서는 뒤처지는 썰매개의 사체를 잘라 동료 개에게 먹이는가? 왜 몇몇 동물을 멸종에 이르게 했나? 인간은 동물을 사랑하지만 동물을 먹는다. 이런 모순적 상황에 우리는 대답하려고 하지만 대답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근대 자연과학의 방법론이나 사회과학의 일관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아직까지 어떤 문화도 의식이 성장하면서 직면하게 된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했다. 피, 모든 생명에 내재된 그 공포를 번연히 알면서,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는 물론이고 자기 안에 있는 어둠을 목도하면서, 어떻게 도덕적이고 자비로운 존재로 살 수 있는가? 한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단계에 있다면, 삶이 이어진다는 사실 속에 존재하는 역설을 파악하고 그런 모순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때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서구의 몰지각'과 '북극의 자연'의 대립항으로 읽고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은 로페즈의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긴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독서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책은 북극에 투사된 우리 삶의 역설과 모순을 응시하고 있다. 혁명가에 의해 해결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두어서도 안 된다고 로페즈는 말한다. "우리를 짓누르는 중요한 질문 중 몇 개는, 그냥 답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왔던 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빛에 다가가려 했다는 하나의 값진 표현이 되도록 애쓰면서."

ⓒ남종영
▲ 카크토비크에서 만난 북극곰. ⓒ남종영

북극은 근대 초기 탐험가들의 도전과 실패의 상징적 공간이었고, 지금은 기후변화 시대의 가장 약한 고리로 관심을 끌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영미권에서는 북극이 논픽션 문학의 주요 소재가 되어왔다. 과거에는 포경과 탐험 기록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환경 저널리즘의 논픽션이 북극을 다룬다. 윌리엄 스코스비나 멜빌 스캠몬 등이 남긴 17~19세기의 방대한 포경기록은 그 자체로 북극 문학의 귀중한 보물창고로서, <북극을 꿈꾸다>에서 보이듯 현대 문학의 참고문헌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북극 문학에서는 극지 탐험가와 포경선원, 덫 사냥꾼, 모피거래상, 부시파일럿(알래스카 오지로 승객을 실어 나르는 비행기) 그리고 이들과 교류하는 에스키모와 인디언이 등장한다. 특히 20세기 초반까지의 작품에서는 문명과 비문명이 부딪히는 곳에서의 삽화, 개척자들의 도전과 실패 그리고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 등이 비친다.

북극 문학을 작품에 따라 자연에 대한 도전과 극복 등 자연을 객체로 대하는 시각과 자연과 원주민 문화를 경외하는 '낭만주의적 경향'으로 거칠게나마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난센, 피어리 등 전통적인 탐험기가 전자에 속한다면,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끈 일본인 사진가 호시노 미치오의 글이 대표적으로 후자에 가까울 것 같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여행하는 나무>(김욱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등 우리나라에서만 일곱 권의 책이 번역된 호시노 미치오는 알래스카로 이주해 원주민 마을을 여행하면서 북극의 자연과 원주민의 삶과 사상을 담백한 글과 사진으로 담아냈다.

▲ <잊혀진 미래>(팔리 모왓 지음, 장석봉 옮김, 달팽이 펴냄). ⓒ달팽이
반면 로페즈의 <북극을 꿈꾸다>는 원주민의 삶에 가깝게 접근하면서도 저널리스트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근대 과학과 전통 사상의 토대 위에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사유하는 편에 가깝다. 이와 비슷한 혜안과 성찰을 주는 책이라면, 역시 오래되긴 했지만, 환경운동가이자 가장 저명한 북극 저술가인 팔리 모왓의 <잊혀진 미래: 사슴부족 이누이트들과 함께 한 나날들>(장석봉 옮김, 달팽이 펴냄)을 추천한다. 1980년대 이후 시사적인 상황까지 곁들어 북극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키어런 멀바니의 <땅끝에서: 알려지지 않는 남극과 북극의 역사>(이상헌 옮김, 솔출판사 펴냄)도 괜찮은 책이다. 미국인 작가 벨마 웰리스의 소설 <가장 따뜻한 집>(이은선 옮김, 홍익출판사 펴냄)은 북극 원주민이 척박한 대지에서 얼마나 힘들게 힘겹게 삶을 꾸려나가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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