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에 몸을 담은 사람들에게 '남재희'라는 이름은 각별하다. 박정희 시대부터 주류의 일원으로 살면서 민정당 국회의원, 문민정부 노동부장관 등의 직책을 거친 경력은 진보정치에 우호적인 사람들로서는 좋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남재희 전 장관은 지면 등을 통해서는 진보정치가 추구하는 가치와 공유할 수 있는 생각을 내놓았고, 그 덕분에 '비판적 보수주의자'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들로서는 일단의 고마움 같은 감정도 나름대로는 갖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언론에서는 남재희 전 장관이 동향이라는 이유로 신장식 전 진보신당(지금은 노동당이 됐다) 대변인을 아낀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같이 독서 모임을 하며 책을 추천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진보라면 무조건 때려잡고 보자는 게 시대정신처럼 돼버린 사회에서 이런 건 상당히 희한한 행보다.
▲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남재희 지음, 리더스하우스 펴냄). ⓒ리더스하우스
남재희 전 장관은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진보신당 공동대표이던 시절에 낸 자서전인 <당당한 아름다움>(레디앙 펴냄)이란 책에도 인평을 썼다. 지지율 3%를 못 받는 군소 진보정당의 대표를 '한국 진보진영의 잔다르크'라며 추켜세운 것이다. 나 역시 그 책을 바로 그 시절에 보았는데 '도대체 이 양반은 왜 이러나'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남재희 전 장관이 최근 출판한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리더스하우스 펴냄)을 보면 이런 기행(?)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이라는 책은 남재희 전 장관이 긴 공직생활을 통해 겪은 사람들에 대한 인물 평가를 모은 것이다. 평가의 대상이 된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뛰어난 기량과 큰 배포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제목에 '통 큰 사람들'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은 아무래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 그 통이 아주 큰 사람들보다는 그들에 비해 좀 보잘 것이 없는 인물로 묘사되는 남재희 전 장관 본인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의 남에 대한 평가는 결국 평가를 하는 사람의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남재희 본인의 존재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책을 통해 느낀 남재희 전 장관은 참 무던한 사람이다. 본인은 박정희 대통령 등 권력자들에게 쓴소리를 건넨 일 등을 소개하고 있지만 어쨌든 나라와 정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심층적으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일부의 서술에서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상대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면 <소설 알렉산드리아>로 유명한 이병주 작가의 낭비벽과 여성편력을 묘사하는 부분이 그렇다. 이 부분은 마치 그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태를 두고 <한겨레>에 특별기고 했던 글(☞'역사는 되풀이 되는가')을 연상하게 한다. 이 글에서 남재희 전 장관은 이해가 되지 않는 소위 '이석기 그룹'을 어떻게든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나 결국은 이해에 실패한다. 그래도 그들을 비난하기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눈물이 글썽여지기도 한다. 이병주 작가의 기벽에 대해서도 남재희 전 장관은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 즉, 이런 경우 남재희 전 장관이 취하는 태도는 그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마는 것인데, 아마 이런 삶의 태도가 주류 사회에 몸담고 있었으면서도 진보정치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격려를 보낼 수 있도록 한 게 아닌가 싶다.
남재희 전 장관과 같은 사람들은 아마 사회적으로 소중한 인재일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본 바, 남재희 전 장관은 무슨 역할을 맡겨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충실히 하고 낼 수 있는 최선의 의견을 내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위의 사례도 그런 개인적 특성의 반영에서 도출된 것일 게다.
l▲ 남재희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진보주의자의 입장에서야 그의 이런 스탠스를 비난거리로 삼고 싶겠지만 좀 관점을 달리해보면 이런 태도가 그 시대에는 현실주의적 미덕을 갖춘 것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이상을 말하면 무시당하거나 죽는 시대에는 차라리 좀 답답하더라도 남의 집 대문 앞에 아스팔트라도 깔아줄 수 있는 권력이라도 쟁취하는 게 세계에 기여하는 현실적 방안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가 그런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시대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좀 달랐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남재희 전 장관이 여당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독재자에게 충언을 해 조금이라도 세상에 기여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쨌든 그 세계를 독재자가 떡 주무르듯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재희 전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인척관계에 있는 사람이 국회에 너무 많으니 그 숫자를 좀 줄이라고 간언하였다는데, 요즘 세상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최고통치자가 아무리 선한 의지를 가졌어도 예측할 수 없는 욕망의 폭풍과도 같은 대중의 여론에 따라 할 수 있는 일도 못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무슨 비난을 하자는 게 아니라, 남재희 전 장관의 정치적 행보와 오늘날의 입지에서 얻을 수 있는 시대적 통찰이라는 게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소위 '삼김시대'라는 것은 나름의 낭만주의 정치가 가능한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위 상도동의 맏형 쯤 되는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0월 경기 화성시 갑 선거구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서청원 의원을 두고 "낭만주의 정치시대의 막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민주정부 시대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세대의 입장에서는 그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확실히 삼김시대에는 낭만주의적인 정치 문화가 있었던 것 같다.
남재희 전 장관이 이 책에서 김상현 전 의원이나 전옥숙 여사, 김정례 여사 등을 묘사하는 부분 등에서 이런 감성이 두드러진다. 말을 잘 한다거나, 교양 수준이 높다거나, 의리를 과시해 신뢰를 안겨주는 능력이 탁월하다거나, 재치가 있어 유머를 잘 구사한다거나 하는 이유로 한 개인이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이 된다는 건 그야말로 낭만적인 일이다(심지어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전옥숙 여사의 교양에 매혹됐다는 묘사가 등장한다). 그 외에 남재희 전 장관이 군부 인사들이나 정치인들을 양산박이니 협객이니 하는 비유로 설명하는 것도 어떤 낭만주의 정치시대의 일면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굳이 개념어를 빌어 설명하자면 낭만적 엘리트주의쯤 될 것이다.
이 낭만주의 정치시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탄생하고 과거와 같은 강력한 보스정치가 점차 퇴화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은 그것 자체는 낭만적인 사건이긴 했지만 정치사에 있어서는 낭만적 엘리트주의가 아니라 냉혹한 민중주의가 대세가 되는 계기가 됐다. 배포가 크고 재치 있는 사람이 정치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게 아니라 대중이 선택하는 사람이 중요한 정치적 존재로 성장하는 게 이 시대의 규칙이다. 참여정부 시절 남재희 전 장관이 이 책을 통해 입이 마르게 칭찬한 김상현 의원 등 소위 동교동계가 열린우리당 창당 국면에서 순식간에 구태정치인이 돼 쇄신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사례나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정치권에서 별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던 인사들이 대거 의회에 진출해 '탄돌이'라는 별명이 생긴 사례 등이 냉혹한 민중주의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연합뉴스
정치 환경이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낭만적 엘리트주의가 가능했던 시대적 상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은 그와는 다른 시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낭만적 엘리트주의 시대의 어떤 초상들을 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탐독한다는 것은 그저 시대착오적인 행위에 불과할 뿐인가? 이 책의 출간은 종편에 환호하는 노인세대를 겨냥한 기획 상품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일단 서평을 이렇게 끝맺으면 여러 곳에서 항의를 받을 것이다. 물론 꼭 그래서 하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건 박근혜 시대에 이 낭만적 엘리트주의자들의 시대로부터 갑자기 나타난 인사들이 중요한 포스트의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60년대 검사를 시작으로 70년대 중앙정보부 국장, 80년대에 검찰총장, 90년대에 법무부 장관, 2000년대에 국회의원으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냥 나이가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주류로서 자기 역할을 다 한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멘토 그룹으로 불리는 소위 7인회가 대부분 이 시기에 활약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건 청와대나 여당에만 국한된 흐름이 아니다. (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됐지만) 얼마 전 민주당 지도부는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정균환 전 의원을 지명했다. 정균환 전 의원이라고 하면 역시 동교동계로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등을 맡으며 활약했던 인물이다. 안철수 의원 측의 새정치연합 의장을 맡기도 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같은 경우는 너무 유명해서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들 중 양식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윤여준 전 장관이 <대통령의 자격>(메디치미디어 펴냄)과 같은 책을 펴낸 것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새 시대에 맞는 통치의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통치의 주요한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다수의 인사들은 과거의 방식으로 현대의 정치를 움직여보려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새로운 시대의 정치 문화에 적응해온 시민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박근혜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부담이라는 것이 어느 시기에 어떤 형태로 제기될 지 장담할 수는 없다.
▲ 윤여준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그래서 우리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과거보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고자 한다면, 이 정권의 낭만적 엘리트주의자들을 막무가내로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이 과거에 활약하던 시기에 나름 양식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파에 몸을 맡기고 살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물론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작은 한 발자국의 진보가 또 다른 한 발을 내딛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마 남재희 전 장관과 같은 인물이 이 시기에 사회적으로 호출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거다. 그의 경험과 방법론이 모두 필요한 시기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남재희의 책을 읽는 것이 남재희다운 해법에 속한다는 점은 이 책에 관한 최대의 아이러니로 여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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