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동구 만석동 괭이부리마을과 부평구 십정2지구. 이 두 곳은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꼽혀 수 년 전 주거환경 개선 사업지역으로 선정됐다.
만석동 쪽방촌은 지난 2011년부터 새로운 형태의 원도심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진행해 활기를 찾고 있다.
마을 전체를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해 마을의 문화와 공동체를 살리면서 주거 환경을 탈바꿈시키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인천의 원도심 저층주거지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10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십정 2지구는 지난 2004년 주거환경개선 사업지구로 지정됐으나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시행자인 LH(한국토지공사)는 278억원의 국고보조금까지 받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사업성 악화 등을 이유로 손을 놓고 있어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주거환경정비사업
지난 9일 오후 2시쯤. 만석동 괭이부리말에서는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하나인 이 마을은 도시재생사업으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이 마을은 2011년 5월부터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시작됐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포크레인과 작업 인부들이 보였다.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주차장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차들이 도로를 대부분 점거하고 있다.

그 맞은편에는 주위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희망키움터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건물은 지난해 6월에 준공돼 괭이부리마을 주민의 지속적인 소득원과 편익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1층에는 북카페 '콩이네' 2호점이 개장돼 전문 바리스타 양성교육과 커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인근 주민에게 휴식과 문화를 제공하고 있다. 2층에는 지역자활센터의 자활공동작업장으로 사용되고 3층은 노인들이 모여 부업을 할 수 있는 공동작업장, 4층은 쪽방상담소와 주민을 위한 운동기구와 샤워시설이 마련돼 있다.

괭이부리마을 주거환경정비사업은 인천 원도심 활성화의 대표적인 성공 전략으로 꼽힌다.
원주민 100% 정착을 목표로 마을에 임대주택을 짓고, 동네 곳곳에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마을회관과 공동작업장 등을 만들어 주민들이 동네를 떠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얼마전 새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밑으로 내려가니 주차장 공사와는 규모가 다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김치공장이 들어서는 자리다. 이 김치공장은 주민들의 일자리 제공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 지어진다.
하지만 해썹(HACCP) 인증도 받아야 하고 공장이 안정화될 때까지는 주민들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치공장 옆 사잇길로 들어가니 포격을 맞은 듯 보이는 집이 숨어 있었다. 건물을 철거하고 마을 공동창고가 들어선다고 한다.
곳곳에 작은 공원도 2곳이 들어서는 등 이 마을은 과거의 달동네에서 벗어나려는 듯 했다.
그러나 여전히 쪽방촌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집에 화장실이 없어 공동화장실을 이용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집에 화장실 없는 게 굉장히 불편해요. 밤에도 멀리까지 가야 되고…."
쪽방촌에 사는 사람 중에는 그나마 젊은 층에 속했던 한 주민이 말했지만 대부분은 어르신들이었다.
"저번에도 어떤 사람들이 찾아와서 재개발 뭐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우리는 이제 얼마 안남았고 이 집이 내가 쭉 살아온 집이고 내 땅이고 하니까 사는 거야."
대부분의 노인들은 남은 여생을 자신의 집에서 보내고 싶어했다.
다시 오던 길로 희망키움터를 지나 언덕길을 쭉 올라가다 보니 마을 공동작업장이 보였고 조금 더 오르니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4층짜리 아파트 2동이 보였다. 이 역시 주변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 건물은 시와 동구가 2011년 5월 괭이부리마을 주거환경 개선 사업에 나선 일환으로 지어진 보금자리 임대주택이다.

당시 시와 동구는 100% 주민 재정착을 목표로 마을의 15%에는 임대주택을 짓고 나머지 85%는 기존 주택을 개량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이 임대주택은 2012년 10월 착공해 지난해 11월 입주가 시작됐다. 현재 임대주택이 들어선 자리에 살았던 주민들은 보상금을 받고 잠시 떠났다가 임대주택에 입주시 보상금을 반납하고 들어오기로 돼있었다.
관계자 말로는 보상금을 반납하는 게 아까워서 임대주택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 빈자리에는 쪽방촌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여유가 조금 있는 사람이나 다른 마을 사람들이 입주했다.
"우리는 못 들어가요. 돈이 조금 있는 사람들이나 들어가지…. 구에서 보상을 해줘야 들어가요."
임대주택 바로 옆에 살지만 재개발지역에 속하지 못해 보상금을 못 받은 한 주민이 답답함을 표했다.
이 임대주택은 보증금과 월세가 매우 싸고 여전히 분양되지 않은 세대가 있지만 아직 쪽방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 보상금을 받지 않는 이상 임대주택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 십정2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
반면에 10일 오전에 찾은 십정2지구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좁은 골목을 따라 멋대로 지어진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많은 집들이 거의 허물어져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과 빈 집을 구별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조금 둘러보니 구별하는 요령이 생겼다. 빨래가 널어져 있거나, 도어락이나 방범창이 있는 집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반대로 집 주위를 둘러 봤을 때 침입 흔적이 보인 곳은 빈 집이었다.

이 쪽방촌은 높은 경사로 쭉 이어져 있었는데 차로 갈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었다. 차를 세워 놓고 가파른 경사를 따라 올라가 보니 아주머니 몇 분이 보였다.
"개발이 된다고 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거야 지금. 애초에 개발이 된다는 말을 안했으면 돈을 들여 집을 수리를 하거나 개량을 할텐데…. 개발이 되면 된다고 확실하게 약속을 해줬으면 좋겠어. 오죽하면 집을 버리고 나가는 사람이 수두룩하겠어."
한 할머니는 언성을 높였다. 2004년 이 마을이 주거환경 개선사업 지구로 지정돼 주민들은 보상금을 받고 새 집에 입주하는 꿈을 꾸며 기다렸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함흥차사다. LH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부채와 부동산 경기 불황 등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쪽방촌에 살다가 나간 사람들은 자식들이 데려간 사람도 있고 그냥 집을 버리고 간 사람도 있어. 그런데 이 빈 집에 도둑이 많이 들어서 무서워. 수도꼭지고 뭐고 돈 되는 거면 다 집어가 버려. 심지어 이것도 가져가 버린대잖어."
한 아주머니가 발로 맨홀 뚜껑을 두들기며 말했다. 빈 집에는 고물장수가 와서 돈 될만한 것들은 전부 가져간다. 집에 살던 사람이 나가면서 세를 놓고 가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서 거의 빈 집으로 남아 있다. 겨울이 되면 노숙인들이 몰래 들어가서 지내기도 한다.

청소년들의 비행도 심각하다.
"주변에 중학교가 하나, 고등학교가 두 곳이 있는데 학생들이 남녀할 것 없이 몰려다니며 빈 집에 들어와 뭐 사다가 먹고, 담배 피고, 또 거기에 침대가 있으니까 옷 벗어진 것도 있고, 또 본드를 흡입하고 버리고 간 것까지 봤다니깐."
동네 슈퍼를 운영하며 십정2구역 주거환경 개선사업 주민대표위원회의 감사로 있는 홍모씨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또 많은 슈퍼들이 문을 닫았다.
"이 근처에 슈퍼, 마트, 문방구가 많았는데 지금 전부 문닫고 저 혼자만 남았어요. 사람이 없어서 장사가 안돼요. 저는 그나마 관리비만 내고 월세를 안내니까 버티고 있는 거에요."
홍씨의 이야기를 듣는 한 시간 동안 가게를 찾은 손님은 2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한 명은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돌아갔다.
"한때는 대부분 석유를 쓰다가 10년 전쯤에 연탄이 무료로 지원되기 시작해 80%가 다시 연탄으로 바꿨어요. 석유 드럼 한 통에 28만원이나 하니까 너무 비싸서 못버텨요. 연탄의 지원이 부족해서 더 사야 되는데 골목에 차가 못 들어오니까 배달을 안해줘요. 도시가스는 위험지역이라고 안해줘요. 그래서 연탄도 아껴써요. 또 겨울에는 푸세식 화장실도 안퍼줘요. 그래서 겨울이 되기 전에 예약해야 돼요. 예약을 해도 한 달 걸리니까 뭐가 안맞아서 다음에 다시 온다고 하면 또 한 달이 걸리고 결국 겨울되면 못하는 거에요"
홍씨는 쉬지 않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제는 오기가 생겨서 버티고 있지만 LH만 쳐다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LH가 사업성이 안된다고 하는데 이해를 못 하겠어요. 여기는 기존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분양이 안 될리가 없어요. 외곽에만 신도시 만든다고 아파트를 잔뜩 지어놓고 분양이 안된다는 것은 말이 안되거든요. 또 분양을 하면 그동안 이자 다 받아가면서 전세금도 돌려 받기 때문에 문제가 없잖아요."
홍씨는 "지장물 조사를 하다가 사업을 방치 하고 있는 LH의 속셈이 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프레시안=인천뉴스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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