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연구자로서 처음 호르헤 볼피의 <세계 아닌 세계>(조혜진 옮김, 천권의책 펴냄)를 읽고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멕시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70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소설에서 멕시코 혹은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페인어로 쓴 '러시아소설', ‘미국소설' 혹은 ‘세계소설'로 명명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단지 멕시코 소설가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과연 이 작품을 분석하거나 안내해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 <세계 아닌 세계>(호르헤 볼피 지음, 조혜진 옮김, 천권의책 펴냄). ⓒ천권의책
그러던 중 문득 보르헤스가 떠올랐다. 이 아르헨티나 작가는 '시간'이라는 주제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가 언급하지 않는, 그러나 그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유추해내야 하는 단어가 바로 '시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아포리아를 따르자면 볼피는 멕시코에 대해 말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 아닌 세계>는 스탈린 체제 이후의 소비에트 연방과 비슷한 시기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이렇게 20세기 두 초강대국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변 국가인 멕시코는 직간접적으로 이 두 나라가 주도하는 세계 질서 아래 놓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정치‧경제‧ 군사적 사건이 때로는 나비효과와도 같이 이 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주변부 국가의 지식인들은 중심국의 상황과 정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동시대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이 두 나라는 당시 멕시코의 좌,우파 모두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와도 같았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소련의 지난 세기를 뒤돌아보는 것은 현재의 멕시코의 모습을 성찰하는 문학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와 체제 측면에서는 정반대를 지향했지만, 볼피가 보기에 소비에트연방과 미합중국은 모두 근대의 '돌연변이'였다. <세계 아닌 세계>의 한 축은 생물학자 아르카디와 그의 아내 이리나를 중심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소연방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기술한다. 약간의 출세욕과 공명심을 가지고 있던 이 과학자는 정부가 비밀리에 진행하는 생화학 폭탄 제조 계획에 동원되어 연구를 하던 중, 탄저균이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사건을 겪으며 죄책감을 느낀 그는 이 프로젝트에서 발을 빼려하지만 오히려 체제의 배신자로 몰리면서 직업을 박탈당하고 수용소로 보내진다.
이로 인해 평범한 생물학자의 삶은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수용소에서 정신병원을 거치는 동안 고르바초프가 실권을 잡고 개방, 개혁정책을 펼치면서 아르카디는 복권이 되고 모스크바에 정착한다. 우연한 기회에 보리스 옐친을 알게 되고 그와 정치적 행보를 같이 하는 과정에서 당시 사회주의의 붕괴와 그 '이후'를 묘사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 이후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한 권력투쟁, 민족주의의 발흥에 인한 분리, 그리고 보호 장치가 갖춰지지 않는 무한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탄생이었다.
아르카디와 이리나의 인생 역정은 미국의 유력한 상원의원 무어가의 자매인 제니퍼와 앨리슨의 이야기와 병치된다. 훌륭한 가문을 배경으로 엘리트 교육의 코스를 거친 제니퍼는 IMF(국제통화기금)의 행정 간부로 일하면서 제3세계 국가들에 관한 원조 문제를 담당한다. 반면, 집안의 반항아였던 동생 앨리슨은 상류 가문의 위선과 특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히피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반핵과 환경 운동에 투신한다. 워싱턴과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미국 주류의 삶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반대하고 대안을 꿈꾸는 삶을 대립시킴으로써 볼피는 미국이라는 사회가 작동하는 원리와 그 균열지점을 드러낸다.
스페인어에서 historia라는 단어는 '역사'(History)와 '이야기'(Story)라는 두 가지 뜻을 모두 포함한다. 소설 속의 허구적 주인공들을 역사적 사건‧인물들과 결합하면서 볼피는 실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역사적 진실을 부여하고자 한다. 이 서사전략은 또한 독자에게 생생한 역사적 현장을 경험하게 하면서 박진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1990년 이후 라틴아메리카 소설의 두드러진 경향 중 하나인 신역사주의와 맥락을 함께 하며 기존의 역사를 다르게 읽고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다.
▲ <역사의 종말>(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이상훈 옮김, 한마음사 펴냄). ⓒ한마음사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상훈 옮김, 한마음사 펴냄)을 통해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세계 역사가 비로소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수렴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그 후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구체제는 소비에트 연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도산으로 파생된 미국발 세계경제의 위기는 금융자본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세계체제의 균열을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팍스아메리카나가 몰락하는 시발점이었다.
이 멕시코 작가에게 구체제란 냉전체제라는 틀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성장해 온 20세기의 두 헤게모니 국가를 함께 지칭한다. 성장과 번영이라는 구체제의 이데올로기 뒤에는 건강한 경쟁과 시민의 참여가 아닌 사회지도집단과 지식인 엘리트들에 의한 통제와 독점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그 아래서는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지키기 위한 기만과 속임수, 권모술수가 판치게 되며, 이로 인해 아무런 제어장치도 없이 분출되는 욕망이 '인간의 본성'이 되어버렸다고 볼피는 냉소적으로 진단한다. 새로운 밀레니엄에서 바라본 20세기 체제와 제도적 장치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아비규환의 혼란을 가리기 위한 외피이지 보호막에 불과했던 것으로 판명된다. 따라서 볼피에게 20세기를 사로잡았던 사상은 최소한의 의미도, 진정성도 갖지 못한다.
멕시코는 19세기 독립 이래 자본주의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초강대국 미국의 개입과 영향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1994년에 추진된 북미자유무역협정은 국가경제와 사회근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린 계기가 되며 멕시코의 탈국가화와 현재의 위기를 앞당겼다. 한편, 20세기 일어난 최초의 혁명을 통해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은 혁명을 완수한다는 명목으로 이후 60여 년간 정치와 권력을 독점해왔다.
이렇듯 20세기 체제의 양대 산맥이었던 미합중국과 소비에트연방은 멕시코의 이상적 모델이자 자신들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는 방향타 역할을 해왔다. 이 두 구체제의 모순을 해부하고 있는 볼피는 이를 통해 두 나라의 근대화 전략을 뒤쫓기에 급급했던 주변국 멕시코의 지나온 운명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비판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세기의 노력들이 그저 허상에 대한 모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뼈아픈 사실을 말이다.
▲ 2011년 경, 소설가 호르헤 볼피. ⓒRodrigo Fernández (출처 Wikimedia Commons)
볼피는 1990년대부터 멕시코 문단에 소용돌이를 일으킨 크랙(Crack) 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다. 기존 세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동명의 선언문을 통해 이 젊은 작가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기존 문단 체제의 의식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면서, 라틴아메리카 기존 문단의 정전을 거부하고 지리적 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서구의 세계주의적 전통과 제휴하겠다고 밝혔다. 볼피 역시 굳이 라틴아메리카라는 지역적 현실을 경유하지 않고, 근대 체제를 주도적으로 이끈 서구의 체제‧구조‧사상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은 단순히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중심부에 대한 성찰을 통한 전략적 접근이라고 읽히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피의 소설은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줄 수 있겠다. 우리 역시 중심부 강대국의 논리에 휘둘리며 지난 세기를 살아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 생각하고 중심부를 모방하고 따르고자 하진 않았던가? 이 '아류'의 대상이었던 중심부 강대국들의 논리와 실체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소설 <세계 아닌 세계>는 우리의 근대화 과정과 현재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우리가 믿고 따르고자 했던 '그들의' 세계가 진정한 '세계'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 허상을 좇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던 주변부 국가는 어떻게 21세기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새로운 길은 과연 있을까? 여기에 바로 멕시코 작가 볼피와 우리의 고민이 맞닿아 있다.
소설을 다시 읽는 동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고는 차마 믿기 힘든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세계 아닌 세계>에서 볼피가 반복적으로 던지는 질문과 이 사건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근대라고 굳게 믿던 현실이 또 하나의 돌연변이였음을. 참담한 심정으로 그러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볼피는 말한다.
"우리를 괴멸시키는 데에는 적의 침입이나 특별한 무기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큰 재난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한 방울의 부주의, 다른 한 방울의 즉흥, 그리고 극소량의 오만함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이 붕괴의 시작이었고, 상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신호였으며, 우리가 무기력하게 뒤쳐진 채 살고 있다는 신호였다. 말과 사실 사이의 심연이 너무나 깊어졌고, 가장 미련한 이들만이 그 현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그때 우리는 이미 패배했다는 것을." (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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