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벅찬 출발이었고 대담한 기획이었으며 도처에서 도발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뜻밖의 종국을 맞게 된, 따라서 그만큼 한스럽게 교육감 직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되었던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얼마 전 책 한 권을 펴냈다. <징검다리 교육감>, 묘한 뉴앙스를 풍기는 이 책은 서울교육감 시절에 대한 회고록이지만, 앞날을 개혁적으로 선취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표출된 하나의 자성록(自省錄)적인 정책 제안서이자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개혁동학(dynamics)에 관한 시론’이다. 그 시절에 대한 자신의 시도와 성취는 물론 실패와 한계를 정직하게 돌이켜보며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교훈을 간추려내고자 했기 때문이라 한다.
한마디로 곽노현은 소위 ‘교육불가능의 시대’에서 서울 교육을 올바른 궤적 위에 올려놓고자 했고, 그 의지는 ‘공교육의 새 표준’이라는 화두로 지속적으로 표출되었다. 그는 희망과 열정으로 거대한 선단을 이끌고 망망한 대해로 나갔으나, 초기 단계에서는 교육계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터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오류와 한계를 피할 수 없었다. 허나 시간이 차츰 지남에 따라 구름은 걷히기 시작했고 지향점은 선명하게 나타났으며 그 의도는 빠른 시간 내에 가시화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정도와 폭은 가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당시 서울교육연수원장으로 같이 일했던 나는 현장에서 그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것이었던지, 또 얼마나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들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는지에 대해 분명히 증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뜻하지 않은 단절은 우리들에게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 <징검다리 교육감>(곽노현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메디치미디어
책은 모두 4부로 되어 있다. 1부는 중병을 앓고 있는 교육현실, 즉 상처뿐인 영광, PISA 1등, 만악을 산출하는 인성 없는 교육, 교실까지 옥죄고 있는 관료제의 폐해, 이렇게 세 가지에 대한 신랄한 문제인식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2부와 3부에는 그렇게 물려받은 현실에 맞서, 하고자 했던 일들이 낱낱이 열거되어 있다. 2부에서 다룬 주제들은 문·예·체 교육, 체벌금지, 학생인권, 학교폭력, 친환경무상급식, 혁신학교, 중학생직업체험교육, 제길 찾은 특성화고, 소규모 테마 수학여행, 방과후 학교, 제철학습, 장애학생 통합교육 등 등 모두 12가지로 한결같이 신선하고 도전적이다. 이 주제들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이 바로‘공교육의 새 표준’이다.
3부는 행정의 변화가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또 그러한 변화가 얼마나 우리의 교육적 삶을 신나고 힘차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여실한 경험보고서이다. 중식지원비율, 정책사업감축, 교원업무정상화, 민주적 리더심, 학생행복지수, 민관거버넌스, 500인 원탁회의, 학생에게 귀를 여는 교육행정, 참여하고 공부하는 학부모, 원칙있는 인사행정, 사학비리와의 전면적, 시설민주주의, 책임적 조달행정, 대외협력, 교육자치를 위한 존중과 소통, 교육청과 지자체, 서울교육희망공동선언, 혁신교육지구, 교육감 직선제 등 모두 13개의 주제들은 그 어느 것 하나 건너뛸 수 없이 중요한, 하나하나 곱씹으며 버겁게 씨름해야 할 과제들이다.
마지막 4부는 최선을 다하고자 했으나 다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또 여기서 얻은 교훈을 교육개혁 10계명’이라는 형식으로 제언하고 있다.
① 교육기회의 실질적 균등화 ② 21세기에 걸맞는 교육과정의 개혁 ③ 학생인권과 자치를 최대화할 수 있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개발 ④ 교육부와 교육청에 만연되어 있는 고질적 관료주의 ⑤ 교원인사 ·승진제도의 개혁 ⑥ 교원업무정상화 ⑦ 개혁주체 세력의 구축과 확산을 위한 인사권과 협치과정의 활용 ⑧ 현장 교사를 개혁의 주체로 ⑨ 고도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교육청과 학교 개혁 ⑩ 지역사회와 학교간의 협치와 협력.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명료한 개혁의지를 가지고 교육감 직을 수행한 사람이 아니면 말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간추려 낸 명제들이다. 간명하고 폐부를 찌른다.
이 책은 비틀거리며 정의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던(리 호이나키) 한 사람의 ‘창조적인 생각들로 빼곡한 상자’ 같기도 하다. 때로는 문제의식으로, 때로는 실천의 결과에 대한 성찰의 형식으로, 때로는 향후 구상과 전망에 따라 표출된 것들이다. 그는 이 모든 일들이 함께 일한 동료들인 서울교육가족과 서울교육활동가들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멀리 동터 오는 지평을 바라보며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지은 책이다.
이 책은 내게 두 가지 인상을 각인시켰다. 하나는 생각을 하며 교육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왜 그것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 아무리 바른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정치적으로 구현되지 않으면 무력한 작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이 정치적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는 한 조촐한 학문적 대화의 자리에서 예컨대 이렇게 토로했다.
“우리는 정치 행위에 능해야겠지요. 각자 자리에서 분업과 협업을 유효하게 해 나가는 것이지요. 상대 진영에 맞서 동지를 규합하고 명백히 행동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처음 한 백여 명 정도 구축하고 다시 좀 더 넓은 지형에서 구조를 확장해 가고요. 이런 식으로 직선교육감은 계속되어야 하고, 이 체제를 통해 개혁을 추동해 내야 하겠지요.”
우리는 불행했던 과거에서 빠져나와 행복한 현재와 미래로 넘어가야 한다. 진보 교육감은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이어가도록 ‘징검다리’를 놓은 것이라 했다. 하지만 비틀거리면서 걸어간 만큼 징검다리도 비뚤비뚤 놓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 자신이 모아놓은 각각의 생각의 묶음들이 가지는 시대사적 의미를 가늠해 보기도 했다. 뒤를 이어갈 진보교육감들은 과연 이 길을 우회할 수 있을까?
이제 교육감 선거가 열흘도 안 남았다.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이 시대를 사는 서울시민들은 과연 진보교육감을 요구하고 있는가? 서울 시민들의 생각의 지향점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곽노현은 책 말미에서 소위 ‘사후 매수죄’라는 것 때문에 애매한 고초와 오해를 겪지 않을 수밖에 없었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해 못박아 말했다. “그것은 국가의 폭력이 아니었던가?”
허나 이제 그런 외적인 굴레는 이제 더 이상 그를 부자유하게 할 수 없게 되었다. 내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 있기때문이다. 그는 한동안 교육개혁을 위해 불었던 ‘바람’으로, 하지만 이제는 ‘바람 부는 길 끝에 서 있는’, 하지만 어딘가로 계속 불어가고픈 실존으로 의식하고 있다.
법학자로 평생 강단에서 가르쳤으며 또한 우리 시대의 인권의 전사였던 곽노현은 이제부터 교육도 여생을 바쳐 몰두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고 했다. 그를 만날 때면 늘 상쾌한 바람을 느낀다. 그 상쾌함은 이번에는 연하늘색 바탕의 흰 글씨로 된 책의 디자인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희망과 절망, 실패와 성공, 좌절과 초월의 상반된 모티브가 대위법적으로 긴장넘치게 교차하고 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선물이다. 숨막히는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는 모든 분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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