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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명의 사채 피해자 구제, 어떻게 가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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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1005명의 사채 피해자 구제, 어떻게 가능했나

[기고] 최재천의 민생정치 실험이 남긴 것

‘최재천의 민생정치 실험’은 끝났다. 실험은 국회의원이 의원실에서 주요한 민생현안을 직접 챙기는 새로운 형태로 전개되었다. 나는 ‘최재천의 민생정치 실험’을 위한 보좌관으로 채용되었고, 신용불량ㆍ대부업(사채) 문제를 전담하게 되었다. 보좌관 신분임에도 의원의 바쁜 의정 활동 등을 직접 보좌하지 않아도 되는 특례를 누렸고, 법 개정 문제까지 자유재량에 따라 행동할 수 있었다. 몇몇 국회 출입기자들은 이런 나를 두고 ‘스페셜 보좌관’, ‘국회의원급 보좌관’이라 부를 만큼 최재천 의원의 지원과 배려는 파격적이었다. 

‘최재천의 민생정치 실험’에서 의원의 바람은 한 가지뿐이었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 자살하려는 사람, 삶에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 딱 한 사람만 살리면 그것으로 만족한다.”(최재천의 ‘여의도 일기’ 중에서) 

물론 의원이 원했던 사정은 충족되었다. 보좌관 한 명을 채용하는 것만으로도 2년간 대부업(사채) 피해자 1005명을 구제하는 구체적인 성과를 남겼으며, 그이들 중에는 최재천 의원의 원했던 것처럼 실제로 죽음의 경계선에서 벗어나 삶의 희망을 찾은 이들도 여럿이 있다. 

다른 한편 천명이 넘는 피해구제 수치는 실험의 실무 당사자였던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일이다. 마치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엉켜 있는 대부업(사채) 채무의 특성상 단지 몇 명의 문제를 풀어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최재천 의원이 처음 제안을 했을 때의 최대 예상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피해구제 성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대출천국의 비밀](개마고원 출판사, 2011년)에서 상세히 밝혔듯이, 대부업(사채) 피해 영역은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이 고리대의 탐욕을 위해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러시앤캐시나 산와머니 같은 대형대부업체 등 소수의 대부업자를 제외하면, 채권자가 불분명한 것은 기본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돈에 급한 채무자들을 상대로 온갖 형태의 황당무계한 서류들을 작성하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고리대 자본의 탐욕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모든 유형의 기발한 수단과 방법들이 동원된다. 심지어 채무자들 중에는 누구에게 언제 얼마를 받고 어떻게 갚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악성채무 돌려막기가 수년 또는 수 십 년에 걸쳐 여러 대부업자들과 진행되는 경우, 거래관계와 권리관계는 복잡하게 뒤엉켜 있게 되는데, 이를 파악해서 구체적인 대처방법을 찾아주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고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사정이 이와 같기에, 전문성을 최대한 살리고 어느 정도의 과로를 감내한다면 1년에 최대 200명까지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2년의 실험결과는 최대 예상기대치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피해구제를 위해 찾아온 이렇듯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좀 더 집중하고 어느 정도 과로를 감내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2년의 실험결과는 집중과 과로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회의원 보좌관 신분(이것도 국회의원을 대리하는 하나의 정치권력이다!)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하다못해 돈을 빌려준 업자가 ‘등록 대부업자인가 아닌가’(형사처벌 규정이 다르고, 적용되는 법령 최고이자율이 다르므로 피해구제에 앞서 꼭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를 확인하는 일도 시민단체 이름으로는 쉽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런 행정적인 걸림돌은 전화 한 통만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익명으로 대포폰과 대포통장 등으로 거래하는 불법 대부업자나 대출사기꾼(이들은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종종 수사기피 대상이 되기도 한다!)에 대한 수사협조 요청도 간단히 끌어낼 수 있었으며, 법률적으로 매우 난해한 문제들(예: ‘추완항소’만 하면 되는지, 청구이의의 소송을 같이 해야 하는지 등)이 있는 경우에도 법률구조공단이나 법원 등 가능한 모든 공간을 통해 손쉽게 정보를 얻어 어렵지 않게 풀어 갈 수 있었다.

의원이 자유재량에 맡겨준 덕분이기도 하지만,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신분은 분명한 정치권력으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내게는 전화 한 통 등에 불과했지만, 담당 공무원이나 수사관에게는 국회의 요청에 따라 반드시 처리해 줘야 할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국회의원 보좌관 신분을 최대한 활용한 결과 피해구제 지원과정은 훨씬 더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고, 시민단체 이름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피해구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신용불량ㆍ대부업(사채) 문제 해결에 필요한 법 개정 작업도 비교적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 이미 민주당 의원 126명은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인 법령 최고이자율 인하를 위한 대부업법 개정안(등록 연30% 이하, 미등록 연20% 이하)을 19대 국회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의 1호 민생법안으로 발의한 상태였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우선 시급하게 마련한 개정안은 파렴치한 빚 독촉을 조장하는 현행 법률의 독소조항 “반복적으로”를 삭제하는 개정안이었다. 즉, 현재의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은 법률 이름과는 딴판으로 전혀 공정치 못하게 과거 법률에는 없던 “반복적으로”라는 조항이 은근슬쩍 삽입되어 있다. 주간에 채무자나 배우자 또는 기타 가족이나 친구나 직장동료의 집이나 사무실로 막무가내로 찾아가 빚 독촉을 해도 그것이 한 두 번이거나 가끔이거나 두어 번으로 “비연속적인 행위”(대법원 판례)라면 그것은 “반복적으로”가 아니므로 불법이 아니다. 수시로 전화해서 사생활을 침해해도 그것이 야간(오후 9시 이후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비연속적인 행위”라면 “반복적으로”가 아니므로 그것은 불법이 아니다. 돈을 갚아야할 의무가 전혀 없는 배우자나 자식이나 부모나 친구나 직장동료에게 대신 갚으라고 한 두 번이거나 가끔 요구해도 “반복적으로”에 속하지 않으므로 불법이 아니다(갚을 의무가 없는 사람에게 빚 독촉을 해대는 경우에 한해 최근 법 개정과정에서 “반복적으로라는 조항이 삭제되었다!). 더구나 채무자 등은 “반복적”임을 입증해야 되는 문제까지 있다. 한 마디로, 파렴치한 빚 독촉을 합법적으로 조장하는 채권추심법의 독소조항 “반복적으로”라는 문구는 무엇보다도 시급히 삭제될 필요가 있었고, 이와 관련된 채권추심법 개정안(서영교 의원 대표발의)을 참여연대 이헌욱 변호사와 함께 만들었다.

미성년자나 금치산자가 아닌 자 등 기본적인 조건만 충족되고 10만 원의 등록 수수료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대부업 등록을 허용한 부분에 대한 법 개정안도 시급했다. 일본의 대금업제도 선례를 참조할 때, 신뢰할 수 없는 대부업자들의 팽창 난립을 막는데 가장 효과적인 제도는  ‘순자산액제도’였고, 국회 입법조사처의 도움을 받아 관련 대부업법 개정안(심상정 의원 대표발의)을 만드는 동시에 대부업 현장 점검업무를 하면서 누구보다도 ‘순자산액제도’의 필요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를 설득해 제도개선의 공감대를 넓힐 수도 있었다.

민생연대에 있는 동안에는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어 해묵은 과제로 남겨뒀던 문제들에 대한 법개정 작업도 일부 진전시킬 수 있었는데, “휴대전화 대출사기 예방법안”(전기통신사업법 등 개정안)과 “대포차 방지법안”(자동차등 특정동산 저당법 개정안)은 그렇게 탄생한 법안들이었다.

그러나 ‘최재천의 민생정치 실험’이 피해구제의 측면에서 아무리 놀라운 성과를 냈다고 해도, 여기에 덧붙여 민생연대에 있을 때는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어 과제로만 남겨뒀던 법 개정안 작업을 틈틈이 해내는 부수적인 성과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험’의 한계는 명백했다. 아주 사소한 제도적 변화를 제외하면, 신용불량ㆍ대부업(사채) 피해자를 대규모로 양산하고 있는 법률적ㆍ제도적 환경의 개선문제, 즉 ‘최재천의 민생정치 실험’에서 핵심에 해당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거의 무기력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몇몇 기자들이 나를 ‘스페셜 보좌관’, ‘국회의원급 보좌관’이라고 불러도, 법제화 과정에서만큼은 국회의원 보좌관 600명 중의 한명에 지나지 않았고, 사소한 개선으로 끝난 법제화 과정은 국회의원들의 논의 과정을 그저 막연히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법ㆍ제도 개선문제는 진보정당운동 영역을 떠나면서까지 내가 하고자 했던 일로, 신용불량ㆍ대부업(사채) 영역에서 한 달에 두어 번 꼴로 주검을 목도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나로서는 그만큼 절박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관련 법제화 논의 과정에 참여한 국회의원 어느 누구도 노동자 서민들의 절박한 삶의 문제를 자신의 절박한 문제로 느끼고 논의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 과정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과정은 속 쓰림 그 자체였다.

예를 들면, 신용불량ㆍ대부업(사채) 문제의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인 법령 최고이자율은 제대로 인하되지 못했다. 법령 최고이자율 인하를 위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의 19대 국회 1호 민생법안(대부업법 개정안, 등록 연30% 이하, 미등록 연20% 이하)은 그 상징성에 걸맞게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법안은 1년 반 가량을 표류했고, “(저신용ㆍ저소득층 서민들을 위해) 금리 상한을 현행대로 유지”(금융위, 특히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의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발언)해야 한다는 정부의 완강한 반대 입장과 ‘부자들을 위한 정당’ 새누리당의 소극적 태도에 막혀 제한된 범위(법 시행 후 체결되는 계약부터만 적용)에서 2014년 4월 2일부터 연39%를 연34.9% 인하하는 것으로 정리 되었다.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의 고리대 연34.9%를 그것도 ‘서민들을 위해’라는 궤변을 동원해 허용했고,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자신들의 19대 국회 1호 민생법안이 누더기가 되는 상황임에도 그 상징성에 걸 맞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어렵게 마련한 ‘휴대전화 대출사기 예방법안’(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 최재천 의원 대표발의)의 좌초는 개인적으로 큰 충격이기도 했다.

‘휴대전화 대출사기’ 또는 ‘휴대전화 개통사기’는 이동통신회사들이 본인 신원을 부실하게 확인하거나 또는 대리인 신원을 확인하지 않거나 또는 공인인증서만으로도 개통 가능하다는 사실 등을 악용해서 발생하는 데, 그 직접적인 피해자만 해도 매년 5만 명 이상에 달한다. 또한 이를 통해 매해 약 15만대 이상의 ‘대포폰’이 양산되고 있고, 이렇게 양산된 ‘대포폰’이 다시 악성 스팸이나 전자상거래 사기나 기타 범죄 등에 악용되면서 제2, 제3의 피해로 이어진다.

이런 이유로 휴대전화 개통 시점에서 “본인ㆍ대리인 확인 강화”와 “위험성 고지의무 및 이동통신회사들의 손해배상 책임제 도입”은 매우 절박하고 시급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휴대전화 대출사기 예방법안’은 매우 역설적이게도 진보넷ㆍ경실련ㆍ녹색소비자연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의 정보인권 단체들(단, 참여연대는 제외, 참여연대는 중립이었음)의 법안 철회 압력에 밀려 좌초되었는데, 이들은 후불제 요금제도에서의 개인정보 수집의 불가피성 및 이와 관련된 제도의 필요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휴대전화 대출사기 예방법안’의 철회 압력을 강력하게 행사한 진보넷등 시민단체는 본인 대리인 확인이 불필요한 영역과 불가피한 영역을 전혀 구분하지 않았다. 

우선 새우깡 사고 냉장고 사는데 본인이나 대리인을 확인해야 할 이유란 전혀 없다. 트위터에 글 쓰는 데도 본인인지 대리인인지를 확인해야 할 이유도 물론 없고, 홈페이지에 회원 가입에서 주민번호 등의 수집행위도 물론 부당한 것이다. 그런데 사기꾼이 작성한 서류나 정보통신망에서의 공인인증만 진실이라 믿고 엉뚱한 사람에게 빚 독촉하고, 잡아 가두고, 독박 쓰라 할 수 있는 영역은 다르다. 이런 영역은 본인ㆍ대리인 확인 등에 더 엄격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조금의 실수만 있어도 사업자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휴대전화 대출사기 예방법안’은 서민들의 절박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로 이렇게 하자는 것이었고, 따라서 진보넷등 시민단체들이 현실의 사실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반대할 이유란 전혀 없었다.

어쨌든 ‘휴대전화 대출사기 예방법안’은 진보넷 등의 사실무시ㆍ사실오인에 기초한 법안 철회 압력에 밀려 결국 철회되었고, 이는 두 가지 지점에서 충격과 좌절이었다. 

충격은 ‘민생실종’이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확인한 부분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휴대전화 대출사기 예방법안’ 논란에서 민생의 절박한 요구를 좌초시킨 장본인들은 정치권이 아니라 민생문제에 대해 더욱 섬세하게 귀 기울이고 이를 대변해야할 일부 메이저 시민단체들이었다. 좌절은 신용불량ㆍ대부업(사채)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서 할 수 있는 한계를 그때 분명히 느꼈다는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고, 이런 부분들까지 어느 정도 감안하며 진보정당 운동영역을 떠나 ‘최재천의 민생정치 실험’의 실무당사자가 되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느꼈을 때의 좌절감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컸던 듯하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국회의원이 의원실에서 주요한 민생현안을 직접 챙기는 새로운 형태로 전개 되었던 ‘최재천의 민생정치 실험’은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고 생각된다. 비록 ‘실험’은 가장 중요한 제도개선 문제에서 사소한 성과를 내는 것에 그쳤으나, 그것은 분명히 정치권력이 민생을 위해 제대로 작동될 수만 있다면 놀라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보좌관 한 명을 채용하는 것만으로도 무려 1005명의 대부업(사채) 피해자를 구제하는 구체적인 성과를 남겼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물이다!

(추신: 최재천 의원의 상임위 재편과정에서 보좌진 전원 교체와 맞물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최재천의 민생정치 실험’을 끝내고 지금은 민생연대로 복귀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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