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부림이다. 몸의 언어는 말과 달라서 그 진실함이 다른 사람에게도 깊게 각인된다. 더구나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인정받는 바탕은 다른 이유 없이 그/녀가 몸뚱어리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2005년 문자해고 통보 이후 10년의 싸움에서 공장점거, 삭발, 두 차례의 고공농성, 94일간의 단식 등 몸부림을 쳤다. 여러 몸의 언어를 사용했다. 이제 그/녀들이 오체투지라는 새로운 몸의 언어로, 땅에 기대어 비정규직 싸움을 새롭게 써나가고 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1895일 투쟁으로, 2010년 11월1일 정규직화와 원직복직을 이뤄냈다. 사법부의 힘이 아닌 조합원들과 시민들의 연대로, 싸움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낸 것이기에 더 값졌다. 그러나 지난해 5월1일, 10명의 조합원이 복직했지만 회사는 일도 시키지 않고 임금도 주지 않았다. 최동렬 회장은 공장을 팔아넘겼고 건물주도 바꿔 지난해 12월30일 텅 빈 사무실만 남긴 채 도망갔다. 1000억 원대의 회사는 6000만 원대의 유령회사가 됐다.
그 후 시작된 농성 358일째 되던 날,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최동렬 회장을 쫓아다니고 형사 처벌하라는 것으로 이 싸움이 끝날 수 없다고 보았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10년 투쟁은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설움과 질김을 상징했듯이, 이제 기륭전자 사업주만을 상대로 싸워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비정규직이라는 노예제도를 끝내지 않고서는 이 땅 곳곳에서 비정규직 아픔과 설움이, 죽음이 지속될 것이기에….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12월22일 국회와 청와대로 오체투지로 행진하며 선언했다. "우리는 진정한 빈곤의 뿌리 차별과 설움의 원흉인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야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비정규직을 옹호하는 정치세력과 정면 대결을 하고 비정규직 법 제도 자체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 일보 전진 투쟁을 하자."
▲지난 22일 5일간의 오체투지를 시작한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 ⓒ정택용
오체투지는 신체 다섯 곳을 땅에 대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아지는 자세를 통해 마음을 비우고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는 염원이라고 한다. 오체투지를 하며 땅에 이마와 양 팔꿈치, 양 무릎이 닿을 때 생각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땅에 기대어 다시 인간으로 오르려는 거구나! 비정규직 제도 폐기 투쟁은 풀처럼 땅에서부터, 근본부터 바꾸는 싸움이 아닌가. 이른바 IMF 이후 본격화된 노동 유연화의 상징인 1997년 체제는 곧 비정규직 체제이다. 1998년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 임금도 싸고 손쉽게 해고가 가능한 간접고용 노동자는 늘어갔다. 불법파견이 횡행했다. 2005년 당시 기륭전자에는 정규직 16명, 계약직 40명, 파견직 240여 명이 있었던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 19일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며 1987년 민주항쟁으로 이뤄낸 87년 헌법이, 87년 체제가 뒤로 무너졌다고 했다. 정권이 무너뜨린 87년 체제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도 '97년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 자본의 무한한 탐욕만 위해 애쓰는 정권과 싸우지 않고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7,8,9 노동자 대투쟁이 이어졌다면, 이제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새로운 정치의 판, 새로운 민주주의 판을 짜야 하는 때이다.
새로운 정치, 비정규직 없는 평등한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은 기륭전자 노동자들과 함께 12월 26일까지 5일간 국회를 지나 청와대까지 오체투지 행진에 함께 하자. 지나가는 길에 응원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정의한 사회에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비정규직법 폐기를 위한 싸움에 함께 마음과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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