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많아졌지만, 책 읽기는 줄고, 정보는 넘쳐나지만 마음을 기울이고 생각이 흐르는 읽기는 사라진 시절, 2월 시샘달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자연의 음과 짓에 맞춰 자신을 읽어내는 '다르게 읽기'를 제안합니다. 말길조차 사라져 버린 '실어증의 시대'에 읽는 감각을 되찾고 소리를 '회복하는 읽기', 무언가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만들고 변화를 일구는 '다르게 읽기'를 전합니다.
읽고 쓰는 게 권력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옮겨 적고, 해석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던 중세가 그랬습니다. 공인된 교회만이 그 권한이 있었고, 해석된 범위 안에서 읽거나 전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려 목숨까지 내놔야 했습니다. 읽는 자는 권력이었고, 듣는 자는 순종하며 따라야만 했습니다. 이 시절은 주로 소리 내 읽는 '음독(音讀)' 형태였습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명 뒤 책은 '필사'가 아닌 '인쇄'를 기반으로 대량 유통이 가능해졌습니다. 텍스트 유통이 빈번해지고, 누구나 읽게 되자 음독은 눈으로 읽는 '묵독(黙讀)'으로 빠르게 변해갔습니다. 혼자 읽기는 다독(多讀)은 물론 해석의 다양성과 함께 은밀한 독서도 가능해졌습니다. '포르노그래피'는 이런 은밀함에 기대어 유행을 타기도 했습니다. 강창래 선생은 시대 분위기를 '혁명'으로 이끌었던 급진 정치사상조차 에로틱한 예술 형식에 담겨 담장과 골목을 분주하게 넘나들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 혁명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이 <사회계약론> 같은 시대를 대표하는 책이 아니라 <신(新) 엘로이즈> 같은 포르노그래피였으니까요. 또한, 읽는 행위가 개인화하면서 출판시장 규모도 커졌고, 무엇보다 자본주의 욕망에 맞춘 독서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하지만 20세기와 21세기를 지나면서 인류는 뿌리 깊은 자기부정과 반성에 마주했습니다. 자원의 유한함을 걱정하면서도 20세기에 화석자원 대부분을 써버렸습니다. 자본시장 규모를 키우려고 다양성을 헤치면서까지 단일한 생활 패턴을 속속들이 받아들인 것도 21세기 일입니다. 그 결과 인류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환경문제뿐 아니라, 끝없이 확장될 것 같았던 소비구조조차 자원과 인구와 분배 문제에 부닥치면서 겪어보지 못한 두려움을 만들고 있습니다.
▲ '책과아이들'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우리 신화와 옛이야기' 모임을 진행합니다. 신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 함께 읽는 것만으로도 세대 소통은 물론 오래된 지혜를 몸에 익힐 수 있습니다. ⓒ책과 아이들
다행히도 인류는 이런 총체적 난국에 놓이자 사회 곳곳 다른 리듬과 다른 박자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속도를 제어하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경쟁이 아닌 상생, 혼자가 아닌 여럿이 머리를 맞대야 생존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자각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읽기' 영역에서도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부산의 서점 '책과아이들'의 '신화 읽기'가 그렇고, 충주 '하늘문고-소박한 책장'에서 열리는 '금요북클럽'이 그렇고, 괴산 '숲속의 작은책방'에서 긴긴밤 독자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책과아이들' 강정아 대표는 "아이를 키우는 일 가운데 자기 삶의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도움을 주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 과제 앞에서 당황하고 있을 때 발견하게 된 것이 바로 '우리 신화와 옛이야기'였답니다. '옛이야기와 신화'는 '오래됨' 뿐 아니라 '신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 함께 읽는 것만으로도 세대 소통은 물론 오래된 지혜를 몸에 익힐 수 있습니다. 서로가 '오직 모름'으로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하는 동반자이기에 각별하다 여겨집니다.
▲ 지난 10년 동안에 3000여 지역 서점이 잇따라 문을 닫았지만, 작은 지역 책방에서 다른 리듬과 다른 박자의 삶에 귀 기울이며 다르게 읽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진은 '하늘문고-소박한 책장' 책 모임. ⓒ이연호
충주 작은 소읍에 자리한 '하늘문고-소박한 책장'의 '금요북클럽'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아니라 모여서 함께 읽고 생각을 서로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다양함을 배웁니다. 주제는 '연애소설'인데, 누구에게나 매력 있게 다가서려는 것입니다. 둘째 주 금요일 저녁이면 '연애소설' 한 편씩 들고 모여드는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괴산의 '숲속 작은 책방' 이야기는 밤새도록 이어진답니다. 괴산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숙박이 가능한 책방을 만납니다. 하룻밤 지내면 새로운 책 세상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숲속 작은 책방'의 자랑입니다. 이곳에서 함께 읽기는 텍스트를 넘어섭니다. 첫 시작이야 책장 어디쯤에서 출발하지만 몇 번 눈 마주침 뒤에는 이야기가 어느 틈에 나를 넘어 후미진 삶, 어딘가를 더듬고 있기 일쑤입니다. 새벽 어스름이 밝아올 무렵이면 몸도 마음도 한결 자유롭고 평화로워집니다.
'읽기'가 변하고 '책방'이 변하고 있습니다. '책방'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 가운데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환경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생활문화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종이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 <작은것이 아름답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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