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은 무너지는데 새로운 것이 등장하지 않은 이 상태가 진정한 위기"라는 그람시 언명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위기를 넘어 상시적인 위험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마찬가지로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김남주의 절규는 "세월호 참극은 진도 앞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닌 철탑으로 오르고, 땅에 배밀이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절규로 이어지고 있다.
죽어야 할 이유가 없는 아이들은 미래의 노동자이고, 하늘나라로 간 죽은 자와 죽지 않기 위해 하늘 가까이 올라간 산자는 지금의 노동자이고, 영세상인 절반은 구조조정 된 과거의 노동자였다. 일부 상인들이 보수언론의 주술에 걸려 노동자 투쟁을 적대시할 때, 직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는 고객에서 경쟁 상대가 되어 시장으로 내몰린다. 감세와 규제 완화라는 특혜로 사내 유보금을 주체 못 하는 재벌들은 동네상권까지 접수한다. 그래서 일하는 우리, 임금노동자와 영세상인은 "함께 살자"를 외쳤다.
무너져 내려야 하는 낡은 것은 무엇인가. 전쟁 불사를 외치는 분단 냉전체제이고, 고용 없는 성장을 주도하는 재벌 중심 경제체제이고, 땀 흘려 일하는 우리 모두를 보호하지 못하는 정치체제이다. 기실 따지고 보면 낡은 것은 무너져 내리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저들의 동맹체제는 굳건하다. 그 중심에 보수 독점 양당체제가 있다. 아니 정확히 현 상황은 양당제조차 유지하기 힘든, 무얼 해도 선거에서 이기는 여당과 아무것도 안 해도 제1야당을 유지하는 1.5당 체제일지 모른다. 정치가 바뀐다고 모든 게 바뀌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는 하늘로 오르고 땅에 몸을 밀어야 할 것이다. 내가 새로운 정치세력을 갈망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진 자들의 동맹을 동결시켰으며 무엇으로 동맹은 유지되는가. 다시 말해 낡은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들은 무엇을 고리로 낡은 것에 균열을 만들 것인가. 저들의 동맹은 분단 냉전체제라는 구조적 한계와 나를 비롯한 행위자의 오류들이 겹쳐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 기제는 현 정치세력이 조장하는 '반정치 의식'과 기형적이고 예외적인 정치 제도에 있다고 나는 본다. 이 둘은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정치 축소'로 귀결된다.
가진 자들의 동맹은 끊임없이 추문과 부패를 양산하며 한편으로는 대중들에게 정치 불신, 반정치 의식을 유포하고, 선거 때마다 투표율 낮추기와 거짓 언술로 스스로 생존방식을 터득했다. 반 정치를 기획한 기존 정치세력들이 반 정치의식의 최대수혜자라면 스스로 몸을 해하여 돈을 버는 자해공갈단과 유사할 것이다. 자신들이 정치권력을 대체하기 원하는 언론권력은 시장권력을 위해 "경제 활성화 발목 잡는 정치"라는 거짓을 앞세우고, 더는 무고한 국민들을 죽이지 말라고 투쟁하는 진보정당에는 "제발 싸우지 말라"는 반 정치의식을 확산시킨다. 급기야 국회의원 정수 줄이기가 정치개혁의 핵심의제로 나타났듯이 여야를 막론하고 반 정치에 기대어 보수혁신이나, 새 정치를 주장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란 알량한 혜택 몇 개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특별한 권력으로 고삐 풀린 시장권력과 무능한 국가권력을 통제하는 것이다.
특권을 사용하지도 못하는 정치축소의 결과, 법에 의한 집행과 기존 법률 해석을 담당하는 행정부와 사법부는 '법을 만드는 행위'로 스스로 정치를 대신하고 있다. 국민의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도 자신들의 법률 해석만으로 그 자격을 박탈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크고 일상적인 균열이 노동과 자본과의 갈등이라고 할 때 이를 조정하고 타협해야 하는 정치는 실종되고 언론에 의해 '사전 단죄된' 정치적 갈등은 사법부에 의해 결론 난다. 통상임금 소송, 정리해고 소송, 불법파견 소송, 손해배상 소송에 부당노동행위 소송까지 일하는 우리는 모두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 생과 사를 넘나든다. 그 어디에도 노사자율교섭이나 의회차원의 진상조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법원과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어도 기업인들은 의회 출석요구를 쉽게 거부한다.
국민의 재산이자 생명과 직결된 철도와 의료 등 공공부문 민영화도 의회에서 다루지 않고 행정부 지침만으로 추진한다. 민영화에 저항하는 노동자 파업에는 "정치 파업"으로 규정하고 야당에는 "정치 공세"를 중단하라고 겁박한다. 민영화가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서 논의해야 하는 정치영역이 아니면 대체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가 보호하지 못하는 파업 노동자들의 운명은 경찰과 검찰, 사법부가 쥐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직접 여당과 특별법 협상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 촛불 소녀가 그러했듯이 기존 정치세력이 대변하지 못해 눈물 흘렸던 우리가 스스로 살려고 발버둥 친 모든 행위가 정치였다. 그럼에도 낡은 것은 무너지지 않고 새로운 것이 나오지 못한 현실은 운동만으로 정치를 대신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눈물을 흘리는 모든 우리를 대변할 '좋은 정당'을 갈망한다.
그런데 '좋은 정당'만들기는 너무 어렵다. 특히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들은 진보정당운동을 성공하지 못한 상처를 안고 있기에 마음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염치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지난 2013년 겨울 철도노조 파업을 통해 마지막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불편해도 괜찮아, 힘내라 철도파업"을 외쳤고, 철밥통, 노조이기주의라는 대통령의 주장에 청년들은 "미래의 내 일터를 빼앗지 마라"고 우리와 연대했다. 파업노동자들은 정부·여당의 반정치 소동에 "우리의 삶에 정치와 무관한 것이 과연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회의적이라고 해도 가만히 있지마라는 죽어 간 아이들의 교훈과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우리에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조건은 마련됐다고 호소하고 싶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가장 악명 높은 노동악법은 '노동조합의 정치참여 금지'와 연대 자체를 불법화했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아니었던가.
* 2편으로 '새로운 정당 건설에 나서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제안'이 이어집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