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딸이 용돈을 모아서 걸그룹 '소녀시대' 콘서트를 보러 갔다. 딸아이는 초등 저학년 때부터 소녀시대 팬이었는데 이참에 콘서트까지 진출한 것이다. 콘서트 일정을 챙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서 표를 구하느라 며칠 내내 분주했다. 콘서트 당일에는 좋은 자리를 맡겠다며 일찌감치 집을 나서는 딸아이는 뒷모습으로도 웃고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은 선물 받은 국화화분에 온 마음을 다 쏟으면서 올가을을 보냈다. 시간에 맞춰서 물을 주고, 더 튼튼하게 자라라며 달걀 껍데기를 콩콩 빻아서 화분에 뿌려 주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식물이 음악을 좋아한다며 생전 틀어볼 일 없는 클래식 CD를 화분 앞에 틀어 준다며 부산을 떨어댄다. 공부할 시간에 연예인이나 좋아하면 '빠순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아니니 그냥 예쁘다. 구구단은 종종 헷갈리지만, 꽃에 들려주는 클래식 음악은 겹치지 않게 잘 골라내는 아들에게 구구단을 제대로 외우라고 다그치고 싶지 않다.
이 와중에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11월 14일 토요일, 서울 광장에 10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노동개악 반대,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치기 위해서였다. 오랜 가뭄 끝이긴 하지만 올해 쌀은 대풍작이다. 하지만 풍년이라고 해서 농민들이 기뻐할 수 없고 오히려 더 깊은 시름에 빠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농업 공약 중 하나였던 쌀값 21만 원 보장은커녕 오히려 밥쌀 수입의 빗장이 열어젖혀 졌다. GM쌀 재배를 하겠다는 소식도 들려오니, 농민들도 서울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가 채 닿기도 전에 우리를 기다린 것은 촘촘한 경찰 차벽과 10기압이 넘는 물대포였을 뿐. 말이 물대포이지 사실 사람들에게 직접 분사하면 그냥 대포다.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밀 파종을 끝내고 올라온 보성의 농민 백남기 님이 물대포의 포화를 맞고 크게 다치고 말았다. 오래도록 농민운동을 해 온 백남기 님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서울대병원에는 농민들의 농성장이 차려지고 백남기 님의 회생을 위한 천주교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위대함을 배우고 연습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백남기 농민의 인생을 나누었다. 백남기 님은 청년 시절 박정희 독재 정권 아래에서 맨몸으로 맞서 싸운 분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그 아버지인 박정희가, 이제 그 딸이 목숨을 위협하고 있으니 대를 이은 악연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고향 전남 보성에서 농사를 짓던 백남기 님이 살아온 역사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역사 자체였다. 우리가 처음으로 본 그분의 얼굴은 정신을 잃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진이었지만 평소의 얼굴은 보통 할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어린 손자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동영상에 보이는 '손자 바보'의 얼굴.
'죽음연습'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인생을 더욱 뜻깊게 살기 위해 미리 자신의 죽음을 연습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미리 유서를 쓰고 관에 들어가 누워 보기도 한다. 그렇게 죽음을 미리 가체험해서 현재의 삶을 더욱 잘 살아 보자는 그런 뜻인가 보다. 그런데 연습까지 해서 맞이할 '아름다운 죽음'을 기다려 줄 세상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죽음이 연습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온다. 테러의 이름으로, 시위 진압의 이름으로 생명을 너무 손쉽게 앗아간다.
그래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생명연습'이지 않을까.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배우고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백남기 농민이 살아온 시간들은 오로지 생명을 향해 나아간 길이었다. 정치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살과 피를 만드는 농업을 지켜오면서 위대한 생명을 연습하고 생명 자체를 살아온 길이었다. 이제 그 연습의 결실을 보고 싶다. 기적 같은 회복이라는, 백남기 님이 평생 이어온 '생명연습'의 결실을 말이다. 오랜 연습은 꼭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