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났지만
2017년 2월 6일 오전 11시, 찬바람이 세차게 부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세종로출장소(글로벌센터) 앞에 수십여 명의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이주활동가들이 모였다. 한쪽 편에는 검은 천이 덮인 휴대용 테이블 위에 열 분의 성함이 적혀있는 영정 피켓과 국화꽃 수십 송이가 놓여 있었다. 인근 경찰서에서 수십여 명의 경찰들이 출동하여 혹시나 있을지 모를 항의행동을 원천적으로 차단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글로벌센터 앞을 에워쌌다. 글로벌센터를 방문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는 가운데 '여수참사의 원인이었던 단속추방 정책을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민을 합법화하라'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주간 공동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이주노조 위원장부터 여수참사 당시 한 달간 내려가서 투쟁했던 노동조합, 사회단체, 이주인권단체 활동가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한국에 일을 하러 온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 등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피켓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기자회견 말미에는 조촐하게 차려진 영정 피켓 앞에 차례대로 헌화를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다시 여수참사를 기억하자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 2월 11일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가 발생하였다. 이중으로 된 쇠창살 안에 갇혀 있던 이주노동자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소방대원들이 뒤늦게 구출에 나섰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후였다. 그렇게 10명의 이주노동자가 불에 타거나 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고 17명이 중상을 당했다. 그 이후로 10년이 지났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가고 있다.

경제위기와 장기실업의 희생양이 된 이주노동자
시야를 조금 넓혀보자면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점점 노골화 되어가고 있다. 특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반(反)이민, 반(反)무슬림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무슬림과 이주민 들을 공격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경제위기와 실업의 책임을 이주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들의 저임금 일자리를 뺏는다며, 일자리를 위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단속‧추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을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더 내몰고, 열악한 최저임금마저 차별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인 노동자들을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고, 일자리에서 내쫓아 온 것은 바로 한국 정부와 자본가들이다. 그런데 터무니없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7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외국인 불법고용 방지 등)저소득 근로자 임금·일자리 구축 차단'을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외국인 불법고용 단속역량을 강화하고 관계부처 합동 집중단속 실시 및 신고포상금제 운영, 위반사업주 처벌 강화'를 들고 있으며, 실제로 광역단속팀을 수도권, 영남권에서 호남권, 중부권까지 추가한다고 밝혔다. 이는 심각한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과 노동조건 공격에 대한 불만을 이주노동자에게 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016년 통과된 테러방지법처럼 테러 위험이나 외국인 범죄 등을 이유로 인종차별적인 법제도 개정, 편견 조장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희생양 삼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
구체적으로 현실을 살펴보면 성실·특별근로자재입국제도에 따라 9년 8개월 동안 근무한 이주노동자들의 체류기간이 2017년 중순에 만료된다. 이들이 얼마나 귀국하는지가 고용허가제의 단기순환 원칙이 지켜지는지를 확인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강력한 통제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사회적 비용을 부과하는 세금을 신설하려고 하는데 이럴 경우 대부분 이주노동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어 실질임금이 하락할 위험이 크다. 게다가 새누리당과 사업주들은 매년 최저임금의 업종별, 지역별, 국적별 차등화를 주장하면서 전체적인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꾀하고 있다.

일터에서도 노골화되는 차별과 배제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문제가 비단 정부와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월 22일 건설노조 경기남부 타워크레인지부는 동탄2신도시 건설현장에서 '불법외국인 체류자 근절 및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에 돌입하였다. 구체적인 투쟁계획을 보자면, 건설현장의 모든 정문을 봉쇄하고 출근을 저지하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현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1월 22일 새벽 5시 30분 동탄2지구 A블록에서 건설노조 경기남부 타워크레인지부 조합원 300여 명이 현대건설 현장취업활동을 시작했다. 현장에서는 실제로 일을 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해서 미등록 외국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가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진행되었다. 이는 작년 11월 25일 전북지역 건설현장에서 건설노조 건설전북지부의 요청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출입국단속이 벌어지고, 5명의 이주노동자가 강제출국 당한 사건과 같은 맥락이다.
건설현장에서 이미 상당수의 이주노동자가 내국인노동자와 삶과 노동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런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연대의 손을 내밀기는커녕 오히려 배척과 차별을 앞세운다면 결국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바로 건설자본가일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노동조합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건설자본가들은 가장 약한 고리인 이주노동자를 이용하여 전체 건설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킬 것이다. 당장 눈앞의 일자리 갈등으로 이주노동자를 내쫓는다면, 이주노동자들은 더욱 음지로 숨어서 일할 수밖에 없고 또 다른 건설현장에서 착취와 불법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건설현장에 만연한 불법다단계 하도급, 임금체불, 산재사망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문제가 건설현장에만 있지는 않다. 크고 작은 공장과 농장, 식당, 여관, 어선 등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이주노동자와 내국인노동자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서로간의 갈등으로 내국인노동자가 이주노동자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하는 일도 있고 이주노동자 사이에서도 종교, 국적, 지역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여수참사의 교훈으로 미래를 준비하자
그래서 차별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배척이 아닌 단결을 지향하며, '불법' 가르기를 넘어 동지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주노동자와 내국인노동자 사이에 국적과 피부색이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다양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무조건적인 배제가 아니라 '노동자는 하나,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원칙으로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주민 200만 시대, 이주노동자 100만 시대이다. 농축산어업, 건설업, 제조업 등의 가장 밑바닥을 이주노동자가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미 저출산 고령화로 인하여 한국 사회의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이주노동자들이 3D산업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는 움직이지 않는다. 유럽과 미국을 보면 이미 이주노동자 문제로 인하여 사회가 많은 갈등과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통합해서 살아갈 수 있는 논의와 노력들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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