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예산안을 설명하는 국회 시정연설을 했다. 내년 예산안 규모는 555조 8000억 원으로, 본 예산 기준으로 금년보다 8.5% 늘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빚더미 슈퍼팽창 예산'이라며, 삭감을 요구했다. 특히 한국판 뉴딜 예산은 50% 이상 삭감을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확장 재정에는 반대하면서도 정작 경제위기 극복 방안이나 중장기 성장을 위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코로나19 사태는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극복해야 할 위기이다. 원안대로 예산을 집행할 경우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채무비율은 46.7%로 전망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양호한 수준이다. IMF(국제통화기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주요 기구들도 한국은 '재정확대 여력'이 충분하며, 경기부양을 위한 확대 재정을 권고하고 있다. 예산의 세부적인 쓰임새가 타당한지는 충분히 토론되어야 하지만, 국민의힘은 무슨 근거로 확대재정 자체를 반대하는지 묻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555조원 규모의 확대 재정이 필요한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을 완화하고, 경제회복을 위해서다.
유럽, 미국 등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오는 12월 최고치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글로벌 수요 회복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3분기 한국경제가 전기 대비 1.9%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수요 회복에 따른 수출 증가가 밑바탕이 됐다.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의 증가로, 산업 수출은 15%이상 증가했다. 물론 3분기 성장률 반등에는 재난지원금 투입에 따른 6월~7월 소비도 한몫했다.
하지만, 아직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코로나19 발생 전 지난해 4분기 GDP를 100으로 볼 때, 3분기 GDP는 97.4% 수준이다. 다른 나라보다는 낫지만 (미국 95.9%, 일본 95%, 유로존 92.8%), 여전히 경기가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경제가 2021년 상반기에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예측하는 기관도 있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2차 대유행, 미중 갈등 등을 감안하면 지속적인 확대 재정은 필요해 보인다.

둘째, 경제가 불황일수록 '생산성 향상'을 위한 미래 투자가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는 경제학적으로 보면 '경제 쇼크'다.
3분기 한국경제가 반등한 원인으로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가 움이 됐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증가하는 모든 산업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로 비(非)대면 IT 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의 비대면 서비스 산업은 제조업보다 약해 수출 증가로 연결되지 못했다.
제조업과 저부가가치 서비스업 비중이 큰 한국 경제는 다른 OECD국가들보다 생산성이 낮다.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전환과 혁신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 산업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판 뉴딜' 예산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셋째, 심화되는 불평등 완화를 위해 확장재정은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 국가 간, 계층 간, 세대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주 발간된 IMF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는 1990년대 이후 불평등이 가장 심화된 나라 중 하나로 한국을 꼽혔다. 우리나라의 분배 상황은 꾸준히 악화돼 사회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코로나19 발병 전에도 기술발달, 슈퍼스타 기업의 독점력 강화와 노동시장에서 기업의 협상력 증가, 세금 정책의 변화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는 세계적 추세였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취약계층과 경쟁력이 취약한 산업 부문은 지금보다 더 불안한 상황을 맞게 될 전망이다. 이 경우 불평등의 심화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코로나19의로 인한 피해 정도는 산업별로 달랐다. 대면이 불가피한 음식업, 숙박업, 운수업, 유통업, 여행업 등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분야는 비정규직 및 저임금 노동자가 집중돼 있다. 결과적으로 저소득, 비정규직, 청년, 여성 등 취약계층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는 뜻이다.
한국의 경우, 정부 정책에 힘입어 지난 2분기 분배 지표는 소폭이나마 하지만 장기적으로 분배지표가 개선되려는 보다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고용 안전망과 사회 안전망을 강화를 위한 과감한 사회투자에 나서야 한다.
현재 세계경제는 '미중 갈등'이라는 또 다른 변수를 가지고 있다. 2018년 시작된 미중 통상 갈등은 이제 안보, 기술 패권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미중 갈등은 한국 경제에 위협과 기회를 함께 제공한다. 정부는 신남방, 신북방 정책을 통해 '무역시장 다변화'에 주력해야 한다. 또한 국제 통상에서 다자주의 회복을 위한 노력과 중소기업 수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자본주의의 거대한 변화와 코로나19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확장 재정은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최소한 방어 수단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야는 정쟁에서 벗어나 확장재정이 경제위기 극복에 필요한 마중물이라는 생각으로, 가장 효율적인 예산안 수립을 위해 지혜를 모아가길 바란다.
필자 : 최지은 더불어민주당 국제대변인(전 세계은행 시니어 이코노미스트)
최지은 박사는 세계은행과 아프리카개발은행에서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11년 동안 동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 거시, 재정, 통상, 일자리, 제도개혁 분야 정책 자문 및 차관 사업을 지휘하였다. 저서로는 미래의 일자리 보고서(영문)가 있다. 북한 개발에 대한 관심으로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에서 행정학과 국제개발 석사,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국제개발 박사를 취득했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꿈을 가지고 민주당에 입당, 21대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현재 민주당의 국제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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