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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를 기다리며"

[기고] 수필가 김영일

서양사에서 말하는 중세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세기 말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되던 14, 15세기까지를 말하며 교회 중심사회라고 보면 된다.

그때는 교황의 권한이 막강해 나라를 통치하는 왕도 교황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당시는 왕과 성직자, 귀족 등 일부 지배 계급을 제외한 대부분의 피지배 계층은 고달픈 삶을 살았다.

찬란한 문명을 구가하던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게르만족의 리더들은 배우지 못해 무식하고 싸움질만 잘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따라서 성직자로부터 지혜를 구하는 대신, 그들을 힘으로 보호하며 상생했다. 즉, 왕은 봉건 제후를 다스리고 왕위를 수호하기 위해선 교황의 머리를 빌려야 했고, 교황 또한 이슬람으로부터 교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왕의 군사력이 필요했다.

ⓒ김영일

교황과 왕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상호 협력했다. 둘 사이에 힘의 균형이 깨질 때는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1천 년 이상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은 이슬람이 점령하고 있어서 성지순례를 할 때마다 왕의 군대가 동행해 경호해야 했다.

성지 수복을 원하는 교황과 영토확장을 노리는 왕은 서로 동상이몽을 꿈꾸며, 단지, 성지순례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고토를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 원정을 감행하였다.

셀주크 튀르크(돌궐족)가 점령하고 있던 기독교 성지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장정을 전장으로 내몰았고 그들을 희생시켰다. 중세는 신권사회라 인간은 한낱 절대자의 도구에 불과했다.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무려 200여 년 동안 7차례나 실시한 십자군 원정길에 수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흑사병까지 창궐, 인구의 1/3이 숨졌다.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교권마저 붕괴하고 말았다. 이 시기를 후세 사학자들은 '중세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중세가 무너질 조짐이 보이자 피렌체공화국을 비롯한 이탈리아반도의 도시국가들은 앞다투어 문예 부흥을 전개했다.

문인과 예술인을 키우고 사람 중심사회를 이룩하겠다는 르네상스 운동이 본격화한 것이다. 이 같은 시대정신은 알프스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 시민혁명의 촉매제가 되었다. 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양으로 진출,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 개척에 눈을 떴다.

반면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오는 2천 년을 왕조만 달리했을 뿐 전제국가로 남아 큰 변화나 발전이 없었다. 가끔 고려 문종과 세종대왕 같은 탁월한 지도자가 나타나 통치할 때는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며 수동적으로 살았다.

삼국시대에는 정복 군주를 만나 한평생 전쟁에만 동원된 백성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편하게 지낸 시절도 있었다. 신라 통일 이후에는 중국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느라 목숨을 잃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설상가상 권문세족과 사대부의 수탈로 평민의 삶은 금수(禽獸)나 다름없었던 때도 있었다. 조선 후기 위정자들은 명분 싸움에 빠져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둔감해 결국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우리는 단 한 번도 밖으로 눈을 돌려본 적이 없다.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광개토대왕의 기개와 세계경영을 꿈꿨던 해상왕 장보고의 웅지는 기억조차 하지 못한 채 좁은 반도 안에서 아귀다툼만 벌였다.

게다가 이웃을 잘못 만난 탓에 걸핏하면 전쟁터에 끌려나가 그들과 싸워야 했다. 거란과 여진, 왜구의 침입이 그렇고 원나라 식민지가 되어 비참하게 산 백 년이 그렇다.

조선 중엽에는 왜(倭)와 청(淸)의 침략으로 온 나라가 오랑캐의 발굽에 짓밟히기도 했다. 그뿐인가 열강의 식민지 개척이 한창이던 19세기 말은 미국, 러시아, 청, 일본 등 강대국들의 등쌀에 눈치만 살피다가 나라를 송두리째 넘겨주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은 됐지만 이 또한 스스로 쟁취한 독립이 아니어서 미소 양국의 밀약에 국토의 절반이 잘려 나가고 동족상쟁까지 치러야 했다.

지금까지 분단국으로 남아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도 서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닌데 정치꾼들은 허구한 날 실없는 당파싸움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 한심하다. 더구나 지역색에 색깔론까지 덧칠해져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갈 길을 잃은 청년들은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시험에 목을 매고, 약삭빠른 인간들은 외국으로 줄행랑치기에 바쁘다. 노령사회에 접어들어 일할 사람은 줄고 인구절벽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버리고 절망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100만 군사를 앞세우고 고구려를 침략한 수(隋) 양제와 당 태종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을지문덕과 양만춘, 거란을 무찌른 강감찬과 윤관, 12척 남은 판옥선으로 왜군을 무찌른 충무공의 기상에서 희망의 DNA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명하고 유능한 리더를 반드시 선출해야 한다. 국가관이 투철하고 국제 감각이 뛰어난 배려와 상생의 정치를 펼칠 참신한 리더를 발굴해야 할 것이다. 군림하고 권위적인 보스나, 편견을 가진 외골수를 뽑아선 안 된다. 정당과 정파, 이념을 넘어 오직 국가와 국민만 바라보고 일할 참 일꾼을 찾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 두 눈 부릅뜨고 잘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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