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이제 여섯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새로운 약속'들을 발표하고, 언론들은 이를 부지런히 기사로 실어 나릅니다. 그런데 이들 '새로운 약속'에 대한 관심 속에서, 정작 현직 대통령이 5년 전에 어떤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에 대한 관심은 묻히고 있지 않은지요?
대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는 얘기는,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임기 5년차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이행률은 5분의 1이 되지 않습니다.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약 이행률 42%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물론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대통령의 어떤 약속인가입니다. 몸과 마음이 상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도 치솟는 주거비와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지키지 말아야 할 약속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은 많은 사람들에게 달라 보였고, 달라야 했습니다.
대표적인 약속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였습니다. 문제인 대통령은 당선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했고, 이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약속을 재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의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코로나로 인해 공공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공공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들이 안정되고 안전한 조건 속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전 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의 약속이 단지 노동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중요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94%가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발표했습니다만, 애초 정부의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르더라도, 정규직 전환비율은 이보다 훨씬 낮습니다.
자회사 정규직이라는 편법이 아닌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기준을 적용한다면, 37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중 실제로 정규직으로 전환된 수는 5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달리 말해 5분의 4에 달하는 29만 명의 노동자는 여전히 파견, 용역, 자회사, 민간위탁 등 다양한 형태의 간접고용 또는 비정규직 상태입니다.
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 대다수도 직접고용 정규직이 아닌 자회사의 간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정규직이라고 하지만 모회사 정규직에 비해 1년에 두 달을 더 일하고도 3분의 1 수준의 임금만 받습니다. 용역회사에서 자회사로 바뀌었을 뿐, 직접고용이 아닌 간접고용 노동자로서 받는 차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노동자와 서민의 고통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만, 코로나 이전에 이미 우리 일상은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그리고 중간착취로 인해 곳곳이 파괴되고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는 그 동안 묻혀 있던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착취라는 오래된 기저질환을 표면화하고 심화시켰을 따름입니다.
우리 사회가 요즘 회자되는 대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면, 국가는 시장부문에 만연해 있는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그리고 용역 및 자회사들의 중간착취를 마땅히 없애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는 못할망정, 한국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공공부문에서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그리고 중간착취를 확대하고 지속하고 있습니다.
공항공사만이 아닙니다.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한국서부발전의 외주회사 한국발전기술에서 일했던 故 김용균의 동료들 역시 여전히 비정규직입니다. 한국가스공사와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대통령의 약속에 희망을 품었으나 변함없는 공공부문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약속을 지키라는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것마저 코로나를 빌미로 불허해 왔습니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선언과 함께 시작한 광장의 투쟁 덕에 집권한 정권이, 헌법을 침해하며 광장에 다시 차벽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제금융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확산시킨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그리고 중간착취가 지금 위기의 근원임을 기억합니다. 해서 우리는, 코로나 위기에서 이대로 물러선다면, 설령 코로나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짐승의 생존을 넘은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입니다. 택시노동자가 망루에 올라 석 달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버스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려 보름이 넘도록 곡기를 끊고 있습니다. 가스공사 노동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행진을 합니다. 건강보험센터 상담노동자들이 발이 부르트도록 세종에서 서울까지 걷고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들의 거대한 약속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더 늦기 전에 지켜지지 않은 대통령의 약속을 확인하고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이러스 때문에라도, 무너진 우리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모아 내야하기 때문입니다.
노동당은 이를 위해 9월 4일 토요일 정당연설회를 개최하여 작은 광장을 엽니다. 오후 2시 세종대로사거리 동화면세점 앞입니다. 공공부문 직접고용과 원직복직, 그리고 비정규직 철폐를 통해 오래된 한국의 차별과 착취체제를 바꿔 나가는 길에 함께해 주시길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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